2016년 4월 2일 토요일

55. 부처가 되어야 하느님을 만난다.




55. 부처가 되어야 하느님을 만난다.


부처가 되지 않고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
예외 없는 법은 없으니까,
일만년 만에 한번쯤은 그런 예외는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회는 사부대중들을 위한 장소 이기 때문에
그런 특별한 사항 전개가 우선이 아닐것 같다.
그러나 닭이 먼저냐 닭알이 먼저냐 하듯이
순서에 중점을 두는 분들을 위해서는
그런 지면이 별도로 소개될 것이다.
부처가 대웅전 한 가운데 앉아 있다.
대웅전은 환인 상제(上帝)의 후손 환웅천왕이
정사하든 대궐이었다.
환인 상제로 부터 내려오는 하느님의 근본을
척도로 정사를 했기 때문에 고 신도(古 神道) 즉
하느님의 정사를 한 것이다.
환(桓)께서 한(一)과 인연(因)이 있었기에
환인(桓因)이라 한 것이다.
환(桓)자를 자세히 살펴보라.
나무를 젖히면 천지 사이에 태양이,
천인 합발하여 사람의 하늘을 감쌓네
나무를 젖힐때,
태양이 나타나기 전에
거기에 부처가 되는 두 활이 있었다.
올바른 정사는
무념무상의 흔들리지 않는 정사라야한다.
무가 출현하는 자리로 가기위한 것이
부처의 여망이고 성불의 길이다.
무가 출현한 자리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하나가 출현하게 된다.
하나가 출현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어떻게 잘 지켜냐가느냐가
중요하고 반복적 복본이 계속되는 것이다.
부처가 되지않고는 하나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처가 되는 것은 이제 도의 관문에 들어온 것이다.
대웅전에 앉아있는 금불상은
사부대중들이 자신처럼이렇게 수련하라고 일러 주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하여
사부대중들이 다 이해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언제가 될지 어떻한 계기에서
아! 그것이 었구나 하며
무릎을 칠날이 있을 것이다.

2006년 12월 16일 14시 43분

 한림도

54. 하느님과 부처님은 확실히 다르다.

부처란 사람의 "두 활(兩 弓)" 이라고 하엿다.
하느님은 분명 "한 일(一)" 즉 하나라고 했다.
여기서 유심히 살펴보면,
부처는 활이란 형상체가 있고, 둘이라는 숫자가 있다.
하느님은 형상체가 없다. 또한 하나라는 숫자만 있다.
이것이 부처와 하느님과의 차이점이다.
그래서 부처는 부처이고 하느님은 하느님이다.
우리민족의 경전 천부경을 보면,
부처가 먼저인지 하느님이 먼저인지 알 수 있다.
일시 무시(一始無始) 즉,
하나의 시작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작된다.
일석삼(一析三) 즉
하나를 셋으로 쪼개는데
천일일(天一一), 지일이(地一二), 인일삼(人一三) 즉
하늘 한 쪼각은 일
땅 한 쪼각은 이
사람 한 쪼각은 삼, 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나라는 존재는
하늘과 땅과 사람 셋으로 나누어졌다.
부처란 분명 사람이다.
사람 속에서 숨은 그림찾기 두 활이 부처이다.
형상체인 사람 부처와 무상체인 하느님과 다른 점이다.
어느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것도 없다.
어느것이 위고 어느것이 아래라는 것도 없다.
어느것이 위고 어느것이 아래라는 것도 없다.
서로 나온 자리가 다른것 뿐이다.
하느님을 믿는 종교나 부처님을 믿는 종교나
모두다 한가지 이다.
이것을 증명해야 할 때인가 보다.

2006년 12월 16일 11시 11분

 한림도

53. 하느님과 부처님 무엇이 달라?


53. 하느님과 부처님 무엇이 달라?


하느님 또는 하나님이라고 한다.
같은 말이다.
하느님은 한님에서,
한은 한 일(一)에서
하나는 역시 하나 일(一)에서
그 어원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같은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하느님을
한문으로는 상제(上帝)라고 한다.
고서 환단고기에서 환인상제(桓因上帝)라고 햐였다.
그리고 옥황상제 역시 상제라는 칭호가 확실하다.
제일 위에 계시는 임금님을 상제, 하느님이라고 한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하느님이다.
그런데 부처님도 있다.
오늘날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불을 부처라고 한다.
그러나, 불교의 절에 가보면,
사찰 경내의 한 중앙에 "대웅전"이 있다.
겉으로 보면,
이건 분명히 우리 민족의 임금님 대궐이다.
왜냐하면, '웅'자를 쓰고 '대궐 전'자를 쓰는것은
환웅천왕님께서 집전하는 대궐이기 때문이다.
환웅전이 맞다.
그러나 대일여래라고 하였기 때문에
대일여래의 "대(大)"자와 환웅천왕의 "웅(雄)자를 합하여
대웅전(大雄殿)이라 하였을 것이다.
현재 현판되어 있는 "대웅전(大雄殿)"과 똑 같다.
하느님과 부처님도 아직까지 이해가 잘 안되는데,
대웅전까지 겹치니까 더 어렵다.
그럴 것이다. 한꺼번에 다 되려니까 어렵다.
2006년 12월 15일 20시 14분

 한림도

52. "너 활 가죽 힘" 미륵, 다물활아 어딧니?


52. "너 활 가죽 힘" 미륵, 다물활아 어딧니?


이제 사부대중들은 무언가 느낌이 와야할 시간이다.
그런데도 조금도 느낌이 없다면
그건 상당히 안타까운 말이된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 절대라는 것은 없기에,
그 시기를 조절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예외는 있다.
무얼 보고 그러실까 하겠지만
그게 그렇다.
왜냐하면, 예외없는 법은 없으니까.
삼풍에서 이르기를
"후우 육축(후牛六畜)'이란 말이 있는데,
원숭이 '후'자가 엠파스 한자전에 없으므로
원숭이 후자 대신 원숭이 신(申)자를 넣어,
"신우육축"이라 한다면,
'원숭이'에서 '소'에 이르기까지
여섯가지 짐승들로서,
원숭이,닭,개,돼지,쥐,소이다.
즉, 신(申)년에서 소(牛) 즉 축(丑)년까지
6년간을 말한다.
손오공의 원숭이 신(申)년에서 시작하여
저팔게의 돼지 해(亥)년까지가
무를 쓰면서 나오는 지혜로운 장군의
치세라고 하였었다.
그러나 저팔계의 돼지 해(亥)년에
끝이나지 않고 2년을 더 연장해 놓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3년 공부 무문도통이란 말이 있던가?
그래서 내년 정해년에 전수받은 법이라 하더라도
수행을 쌓아야 할 시간이 있어야 성불을 할것이기 때문에
예외의 기간 2년을 더 추가 하였던것으로 보인다.
자연한 법은 이렇게 영원히 흐른다.

2006년 12월 13일 14시 21분

 한림도

51. 다물활(多勿弓)의 부활은 "눈을 뜨고 봐"?


51. 다물활(多勿弓)의 부활은 "눈을 뜨고 봐"?


"눈을 떠 보면"
다물활이 보일까?
다물활의 부활이 마고성의 복원일까
마고성의 복원은
만년전 우리 민족의 태고조
황궁씨가 마고성의 성주 마고님 앞에서
백모의 띠로 당신 자신을 묶은체
폐허로 변한 마고성을 다시 복원할것을
마고님앞에 나아가
맹서의 언약을 하였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어언 벌써 일만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그당시 황궁씨가 복원하고자
한 그 약속을 지키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후손들에게
굴래(勒)로 남아
오늘날까지 내려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상낙원 마고성이 다시 올까?
극낙이고 천당이고 말은 좋게 하지만.
그게 그리 쉽게 이루어질까?
눈을 크게 뜨고 보면 보일까?
마음속에 극낙이 되기 어려운데
지상낙원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할까?
다물활(多勿弓)이 나와서
"너 활 가죽 힘" 미륵(彌勒)을
인도 할려나?

2006년 12월 13일 12시 1분

 한림도


50. "다물활"의 후손들이 미륵불이 되는 시기는 바로 지금?


50. "다물활"의 후손들이 미륵불이 되는 시기는 바로 지금?


다물(多勿)이란,
북송대 사가 사마광(司馬光)이
자치통감(自治通監)에서
"여어위복구 토위다물(麗語謂復舊 土爲多勿)"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말은
"고구려의 말로 옛땅을 다시 찾는 것을 다물이라고 한다.
"는데서 기원한다고 하였다.
우리민족의 옛 조상님인 다물군의 병사들이
왜 지금 드라마로 제조명되고 있을까?
단군님 시대때의 옛영토를 다시 회복하자는
뜻도 있겠지만, 어디 그것 뿐이랴!
그 당시만도 신시를 열어 세계만민들의
"마고성 복본"에 대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었다.
오늘날의 국제적 환경을 두루 본다면
이렇게 참담할 때가 다시 더 없다 싶을 정도이다.
세계는 무릇 종교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이래서 되겠는가? 이건 분명코 아니다.
그래서 우리민족의 "다물(多勿)활(弓)"이
오늘날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아닐까?
우리민족의 다물활은 바로
태고 인류가 잃어버린 태고의 고토
마고성(麻姑城)을 회복하는데 있으리라
옛날사람들의 전쟁 무기로 쓰였던
활에 비유한
"다물활(多勿弓)"
이것은 인류 구원의 활이다.
바로 이것이 다른 말로 한다면
"태고로부터 굴래가 되어 오늘날까지 내려온
두활(兩弓)" 즉 미륵불이다.
이것이 진정한 다물활(多勿弓)이다.
다물활의 후손들이 바로 미륵불,
다물활도 미륵불도 지금 잘 모르는것 뿐,
다물활이 미륵불이요,
미륵불이 다물활일까?
우리는 이제 미륵불 다물활이 되는것만 남았다.
바로 그렇게 되는 시기는 지금이다.
앞장에서 말했지만, 미륵불 무궁화가
만개하는 그시기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꽃도 꽃이 피는 시기가 있듯이
미륵의 무궁화도 피는시기가
일만년을 기다렸다가
잠시 잠간 만개 한 후
다시 일만년을 기다려야 할까?.
이 글을 읽게 되는 사부대중들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부디
미륵불로 성불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2006년 12월 12일 14시 19분

 한림도



49. 미륵불의 무궁화 만개 시기는 언재쯤일까?

손오공과 저팔계를
미륵불 무궁화의 만개 시기로?
왜일까?
그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
손오공의 원숭이 신(申)과
저팔계의 되지 해(亥)는
신(申)년에서 해(亥)년까지를!
그렇다면 이게 어디서 어디까지란 말인가?
1994 1995년 양년간에 미륵이 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1992 임신(申)~1995 을해(亥)는 아니야.
왜냐하면,92,93년은 미륵이 오기 전해이니까?
12년 후인
2004 갑신(申)~2007 정해(亥)까지 4년간일까?
그런대 이걸 어쩌나,
2007년 한 해 밖에 안남았잖아.
또다시 12년 후 였으면 좋겠는데,
어쩌나,
삼풍 상권의 무용출세지장에서는
인부(仁富)지간에서 성인이 나온다는데
십승(十勝)으로 들어갈
세번의 진사(辰巳)가 있는 기간이래
그 기간은 출세전 출세당시 출세후의
세때로 구분이 된다나,
출세당시로 12년을 본다면,
그가운데 신~해에 해당하는 년도는
2004 갑신년~2007 정해년이 된다나 어쩐다나.
만개가 되었기에 세계로 세계로 가겠지,
만개 기간이 1년 밖에 안 남았나?
그럼 그 후에는 어떻게 되냐?
미륵부처님 대답 좀 해보셔요?

2006년 12월 11일 20시 7분

 한림도

48. 미륵불(彌勒佛)의 꽃 무궁화(無窮花)가 눈에 비네.


48. 미륵불(彌勒佛)의 꽃 무궁화(無窮花)가 눈에 비네.


식물의 꽃 무궁화는 우리나라꽃이다.

그러나,
일월오봉에 피는 꽃 무궁화는
미륵불의 꽃이다.

태고의 굴래를 짊어지고 오면서
수많은 날들을 복본하고 또 복본을 거듭하면서,
오늘날까지 도착했건만,
그런 미륵을 아는 사람은 하나 없는데
어찌하여 미륵의 꽃을 알아볼까?
일만년만에 피는꽃 미륵의 무궁화를
일월오봉에 피웠다네
이 꽃을 처음 피우려 할때
전주곡으로 아시아 인들의 잔치마당이 벌어지고,
본연주가 시작되니 전세계인들의 축제 마당이었던가?
누가 알아주기를 기대 했지만, 헛수고 였던가.
이 지구상에 미륵과 미륵의 꽃을 누가 알까?
삼장법사가 나타나서,
손오공과 저팔계에게 미륵불의 꽃 무궁화의
만개 시기를 알렸건만 그것을 알아볼리 만무일까?
삼장법사가 역(譯)한 미륵하생경을?
원효가 찬(撰)한 미륵상생경을?
모르는 것인가, 알려하지 않는 것인가?
찬,역이 그렇다 치고
세월이 이만하니 우리 사부대중 불제자님들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줄은 알아야 할 것이다.
3계가 한마당 안에 있는데 거기가 거기인데
바로 거기가 부처요 바로 거기가 영원낙인데
거기서 왔다가 거기로 가건만
어찌이리 답답할꼬,
미륵의 꽃 무궁화의 만개 시기가
손오공과 저팔계임을 퍼뜩 알아차리고
남녀노소 할것없이 너도나도 얼른얼른 닦아보세
그렇게 되면,
미륵불의 꽃 무궁화가 눈에 비네.......

2006년 12월 11일 13시 30분

 한림도

47. 무궁화(無窮花) 꽃을 피우렵니다.



47. 무궁화(無窮花) 꽃을 피우렵니다.


두 활과 두 새를 아는 사람이 말을 하였는데,
말을 한 이 사람을 찾으려고 쫓아가니 그곳은
무궁화(無窮花) 꽃이 피어나는 대한민국 이었다.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 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 꽃"
이라고 하였다.
무궁화는 오랫동안 핀다고 하여 무궁화라!
그러나, 그야말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영원히 피는 꽃이 있다면, 그 꽃은 어디에?
우리민족의 영원한 한이 서린 꽃
우리겨래의 영원한 굴레의 꽃
삼천리가 아니라 아시아 전역으로
오대양 육대주로 지구촌 전체로
영원히 피어나갈 꽃인가?
이렇게 우리의 봉황미륵은
일월의 무궁화 꽃을 피우려 하지않을까!
일월오봉의 봉황미륵불은,
무궁화꽃을 우쨌던지 피우려고
몸부림을.........
그래도 그 무궁화는 피는지 마는지
세상사람들이 알기라도 할까요?
알아준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부처가 되지않고 부처를 알리 만무,
그러나 없을 무(無)자의 무궁화의 무(無)를
쓰면서 나온다고, 삼풍 상권(307쪽)에는
"무를 쓰면서 출세하는 지혜로운 장군"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몸의 무궁화를 먼저 피우고
이나라 이백성들의 무궁화를 피우고
지구촌 인류가족들의 무궁화까지 피우게 될까요?
사부대중 여러분들의 무궁화는 어떻게 필까요?

2006년 12월 9일 21시 47분

 한림도

46. 제아무리 손오공이라 해도 삼장(三藏)법사 앞에서는 꼼짝을 못해?


46. 제아무리 손오공이라 해도 삼장(三藏)법사 앞에서는 꼼짝을 못해?


      머릿띠를 둘렀으니 손오공이 꼼짝을 못한다.
      그래도 그렇겠지만,
      또다른 이유가 있다면,
      삼장(三藏)이 무엇이 건데,
      재줏군 손오공이
      꼼짝모하는 이유가 분명 무엇인가 있을것 같다.
      삼(三)이란,
      숫자로 헤아릴때 셋이란 뜻도 있지만,
      천부경(天符)에서는,
      일(一)을 하늘(天)로, 이(二)를 땅(地)으로,
      삼(三)을 사람 인(人)으로 표현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삼장(三藏)이란 뜻은,
      삼이란는 숫자에 또는 사람이라는
      데 무엇을 숨겨 감추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렇지
      손과 손가락 다섯개가 제아무리 잘났다
      하더라도
      역시 사람을 벗어날 수 가 없다는 엄연한
      진리가
      보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람의 두 손과 두 손의 손가락 다섯개들은
      두 활이 있는 장소로,
      이역시 사람 몸의 일부가 아닐까?

      2006년  12월  6일  23시  15분.

                 한림도

45. "손 오공"이 뛰어 봤자 부처님 손바닥



45. "손 오공"이 뛰어 봤자 부처님 손바닥


"손 오공"이란 서유기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게 무슨 뜻일까? 그저 이름에 불과한 것일까?
'손'은 손이지 발이 아닐것이다. 오공은 손에서 5개라,
그것은 손에 달린 다섯 손가락? 그렇다. 다섯개의 손가락.
그런데 왜 부처님이래, 두활이 부처인데, 손바닥이
두 활에 붙었다는 것인가? 그래서 부처님 손바닥.
어렵다. 그러나 분명 한 것은 손 오공은 손가락 5개가 맞다.
부처님 손바닥 위에 손 오공이가 올라가 있었다. 그래서
손 오공이는 손가락 5개가 확실하다. 그런데 손 오공이는
새처럼 날아 다닌다. 구름을 타고 다니기도 하고 그렇다.
그래서 역시 손은 새처럼 날아가서 두 활이 있는 장소에
가서 내려 앉는다. 활은 당길때 좀더 많이 굽혀지지만,
당기지 않을 때는 그렇게 많이 굽혀지지는 않는다.
활그림,
숨은 그림 찾기다. 어디있을까? 숙제다.

2006년 12월 5일 20시 16분

한림도


44. 깨달음 뒤에 오는 건 절이다. (26)

원래 없는 깨달음 이지만
이제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깨달았다.
깨달음으로 일어나는
환희심 그래서 감사의
절을 했다.
왜 그럴까?
그것은
막연한 고마움 뿐 만은 아니다.
절을 해야하는 장소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이다.
절은 반드시
머리를 숙여야 한다.
어디에 머리를 숙일까?
자신의 머리가
제일 처음으로
숙여지는 장소는
자신이 절하는 두 손이다.
일만년 동안
절을 열심히 한 덕분인지
이사람의 손이
절값을 주고 받게 되었구
아!
그래서 복본이 되었구나!
매사가 그냥 거저 되는건
하나도 없구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태고적에 환(桓)께서
인(因)을 쓰신 이유를
이제야 아는듯 하구나

2006년 12월 4일 20시 28분

한림도

43. 본래 없는 깨달음 이렇게 깨달아. (25)-2


43. 본래 없는 깨달음 이렇게 깨달아. (25)-2


깨달을 각(覺)지에게 물었더니,
"이사람의 다섯과,
이사람의 다섯으로
사람의 눈을 덮어라."
고 했다.
그리고 또
"각오해라'고 했으니까?
깨달을 오(悟)자
에게도
물어봐
그러면 뭐라고 할거여.
"다섯으로 감싸 둘러야
날 마음이 있어,"
라고 할 것이다.
두 문장을 하나로 합한다면,
"이사람의 다섯과 다섯으로
감싸서 사람의 눈을 덥어라."
이다.
이것이 어디 본래 없던것도 아닌데,
본래 있었던 것인데
오랜 세월을 지나오다 보니
낡고 변하여 원래의 모양이 없어졌던것 뿐인데
깨달을 일이 무에 있느냐고?
그래서 본래 없는 깨달음 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동양에서는 복본(復本)이라 하여,
근본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고,
서양에서는 부활(復活)이라 하여,
없어진 것을 다시 살아나게 한다.
이런 말이다.
사부대중들이여
조금은 도움이 되었는가?

2006년 12월 4일 20시 3분

한림도

42. 본래 없는 깨달음을 어떻게 깨달아? (25)-1


42. 본래 없는 깨달음을 어떻게 깨달아? (25)-1


이랬더니 글세,
"니, 각오 단디 하거래이"
라고 말을 한다.
각오란, 각오(覺悟)라
어찌됐던 각오하라면,
해야지, 그런데 뭘 알아야
각오를 하던지 말던지 할거아니야?
그렇다.
각오(覺悟)를 알려면,
일단은
각오(覺悟)에게 물어봐?
깨닫고 깨닫는게 각오래
뭘 깨달아 뭘?
알아야 깨닫던지 말던지 하지
응 그래
깨닫는 것, 자체를 모른다는 거지,
바로 그거야!
그러니 뭘 깨닫는 다고
난리는 난리냐고!
"이사람의 다섯과
이사람의 다섯으로
사람의 눈을 덮어라"
이다.
그런데 뭘 깨닫기는 깨닫는다고,
본래부터 있었던 것을!
본래의 심성(心性)으로 돌아가면 될것을,
심성이란,
마음이 살아서 나오는 것이라.
마음을 열어 보자.
마음을 열어 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 건지
여보시오 벗님네야,
말씀일랑 하여 보소.

2006년 12월 4일 15시 55분

한림도

41. 절 부처, 두 활 두 새를 아는 사람 말은? (24)-2


41. 절 부처, 두 활 두 새를 아는 사람 말은? (24)-2


어찌하여 그사람으로 정했을까?
하여, 정하게된 이유를 말하라 하니,
정할 정(精)자의 우측
푸를 청(靑)자를 버리면
쌀 미(米)자가 남는다.
그래 이게 도대체 무슨?
왜 쌀까지 등장했느냐 이거지?
쌀이 왜,
정기(精氣) 정력(精力)을 만드는지
이제 알게 되는가? 이거지.
그런데 쌀밥을 한그릇 먹고나면
힘이 불끈 솟아나지?
왜그럴까? 왜 그럴까 요?
쌀(米)에게 물어봐?
물어보면, 물어보면,
쌀밥을 먹고나면
온전신 사방팔방으로
힘이 불끈불끈 솟아나듯이
팔 힘이 불끈 솟아난데나?
쌀 미(米)자를 가만히 봐봐,
열 십(十)자가 사방으로 뻗혀 나가고 있잖아.
그런데 상하 좌우에서 봐봐
이리도 팔(八) 저리도 팔(八)자 잖아,
그래서 팔(八)로 십(十)자가를
열었다나 어쨌다나
그래서 예수님의 팔이 십자가에 못박혔다나?
어쨌던 팔은 팔(八)이야.
팔 힘이야
팔 힘으로 십자를 열(十)어
십자는 사형수의 형틀이 아니야,
두 산이야,
두 산(山)이 합쳐져 양측 날개를 펴면,
십자가 나오지
아무튼
"산위에 떠있는달을 이사람의 두 팔 힘으로 열어"
이사람이 이걸 찾았더란 말이지?
찾은 뒤에 이걸 이렇게 말했다고?
이게 두 활 두새를 아는 사람의 말이야?
그래 맞어
한국 사람이 한국 말 알아야지.
이 모든 것은 비유로 한 말들이다.
사부 대중들을 이곳까지 안내하게 되었다.
격암유록 해설서 "삼풍"은 이렇게 시작된다.
해설 그 자체 또한 신령한 힘으로 된 것이다.

2006년 12월 4일 14시 27분

한림도

39. "절 부처"란 "새가 활을 잡는 것이다". (23


39. "절 부처"란 "새가 활을 잡는 것이다". (23)


활로 화살을 쏘아
새를 잡는 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새로서
활을 잡는다고?
그래
새가 활을 잡아서 어쩐다니?
말이되는 소리라야지,
그럴 것이여,
고정관념이란게
바로 그런거여
그렇지만
이런일이 일어나고 있어.
아니 그런 일이 어디에
일어난다니?
그런 일이 일어나는 장소를
꼭 말을 해야 안다니.
그래도 모른다니
알도록 노력해보아.
분명한 것은 새가 활을 잡아.
그래 그렇다 치자.
새가 활을 잡아서 어쩐다니?
새가 활을 잡지 않고는
천없어도 부처가 되지 않는다나
어쩐다나?
그러니 부처되기 위해서는
어차피 새가 활을 잡아야지,
그래서 절 부처란
새가 활을 잡는 것이다.

2006년 12월 3일 14시 33분

한림도



38. 절에서 도(道) 닦는 숨은 그림 찾기? (22)

절에서 도(道) 닦는
숨은 그림 찾기
찾았냐?
못찾았다.
찾았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알면서 숨겼나?
모르니까 숨겨졌나?
대웅전 한 가운데
점잔게 앉은 불상
자비로움을 간직한체
웃는듯 마는듯한
미소
그것은 무엇을 말할까?
반쯤뜬 눈
왜 그랬을까?
피다가 중지한 연꽃
눈을 뜨다가 중지한 눈
일부러 맞추려 해도
아니되려나?
그래서,
두 활 시위를
당기려다
말았나?
숨은 그림찾기
숙제다.

2006년 12월 2일 20시 36분

한림도



37. 삼천년을,구도자가 절을찾아 승님이 되었나? (21)

대웅전에 앉아있는 금불상 부처님,
당신의 제자들이 삼천년을
닦아온 도(道)를
불도라 한답니까?
절 도(寺 道)라 한답니까?
도(道)를 구하는
구도자(求道者)로서,
절을 찾았습니까?
불(佛)을 찾았습니까?
그래서 승(僧)이
되었습니다?
삼천년의 숨길이 배인
이 도량에서
진정한
도(道)를
구하려 왔습니다.
그러나 빛바랜
구슬 처럼
영롱하던
모양은
간데 없군요?
세월이 약이 었습니까?
세월이 독이 었습니까?
그나마도 남은 세월이 안스러워
여기 이렇게 왔답니다.
승으로서
중(僧)으로서
중중(中中)하기를 바란답니다.

2006년 12월 2일 20시 12분

한림도

36. 두 새가 모이 쪼듯, 손마디로 토 다는 것이 절이다. (20)



36. 두 새가 모이 쪼듯, 손마디로 토 다는 것이 절이다. (20)


이제 확실히 절을 찾았다.
그러나,
이 말이 얼마나 사부대중들에게
납득이 될지 그건 생각도 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자기 스타일이 이것 이니까?
다른 어떤 방식과도
거래를 하지 않았다.
정보를 주고 받자고
제의를 해 왔지만,
정보를 제공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에
혼자서 내스타일대로
이렇게 해 온것이다.
절이란 바로 이러한 것이다.
이 말은 도(道)를 전수하는
방법과 같기때문에
절을찾아
도를 닦는
승님이 된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지 않는가?
도(道)를 만나야
도(道)를 알아야
도(道)를 전수 받아야,
도(道)를 닦지?
바로 그런 도(道)가
절(拜,卍,寺)이니,
절 찾아 도(道)를 구하려 왔니?

2006년 12월 2일 14시 23분

한림도

35. 절절절(拜卍寺), 절을 다시 복본 하니, (19)

 

35, 절절절(拜卍寺), 절을 다시 복본 하니, (19)


두 손이 새가 날아 오르듯이
나란히 같이 올라가,
모이를 쪼듯이,
굽혔다 폇다 하는 모양으로,
손마디로 토를 다네.

일만년을 내려오는 동안
수 없이 변화한 모습을
그나마도 제대로
복본을 하였다고나 할까?

관심있는 사부대중들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만천년의 세월로
다시 돌아가는
순환의 노정에 들어보자!

누가 등떠밀어서
억지로 하는 일도 아니다.
그저 산이 좋아서
산에 산다 하듯이
그저 이일이 좋아서
한갑자의 인생이
여기에 머물렀다오
그 설은 세월들이
유수와 같이 흘러 갔건만,
오로지 외길을
고집하면서
잡으면 꺼질세라
놓으면 날아갈세라
이걱정 저걱정들을
지지리도 하면서
힘든 노정들을 .........
이것이 미륵금성생불의
절 짓는 불사라면?

2006년 12월 2일 11시 49분

한림도

34. 일만년의 절(拜), 삼천년의 절절(卍寺)은 동반자? (18)


34. 일만년의 절(拜), 삼천년의 절절(卍寺)은 동반자? (18)


마고성 지상낙원이 폐쇠된 이래
7대 7천년간의 마고성 복본을 위한
천부의 법이 존속되다가
그것마저 다시 폐쇠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겨래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마고성 지상낙원의 복본에 대한
노력은 쉬지않고 끈임없이
계속 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절(拜)이다.
왜 그랬을까?
서양 사람들 처럼 포옹을 한다던지
입마춤을 한다던지 하는데,
우리민족은 절을 한다.
서양 종교가 들어오더니
우리의 절이 우상숭배라나
어쨌다나,
그래도 우리민족은
꿋꿋이 절을 하고
불교의 대웅전에서도
역시 절을 한다.
오랜세월 내려오는 동안
절(拜)도 복본하고자
노력하던 나머지
절(卍)과 절(寺)로
변천을 거듭 했으려나?

2006년 11월 30일 22시 6분

한림도

33. 절 값, 세배(歲拜)돈은 왜 설날(立日)만 줄까? (17)



33. 절 값, 세배(歲拜)돈은 왜 설날(立日)만 줄까? (17)


해(歲) 보고
절(拜)하라고 주는돈이
세배돈,
원 살다가 별말을 다듣는군,
어쨌던,
해(日)가 서는(립) 날,
또는
해(日)를 세우는(立) 날
이라서
설날(立日)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할까?
옛날 우리네 엄마들이 하신 말씀
그것도 설날 늦은 저녁에,
"설날 밤에 잠자면,
눈섭이 하얗게 센단다."
라고 하시던 말씀이
귀에 선 합니다.
어머니!
평생을 염불하며,
자식 잘되라
빌고 또 빌던 어머니,
61세의 이 불효자식이
이제는 정말 눈섭도 세었습니다.
설날(立日) 세배(歲拜)하면 덕담해 주시던,
우리 어머니
하얗게 센 눈섭의 눈에도
어머니의 모습이 선 합니다.

2006년 11월 30일 18시 19분

한림도

32. 부처님 절값 3천배(三千拜)하면, 주어? (16)


32. 부처님 절값 3천배(三千拜)하면, 주어? (16)


3천배(三千拜)하면,
절값 받은 거야?
어째서 그런거야?
그런건 그냥 알아야지?
3천배를 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냐?
그게 아니잖아,
3천배 한 사람들에게
물어봐, 물어봐.
그냥 그랬대,
나중에는 엄청난 절도 했대나?
그래도 그냥 그랬대 글세.
그러면 뭐야
그것도 아니잖아?
정말 그럴까?
여기에는 깨달음의 순간이
절을 하여 힘이 들어서 깨닫게 되던
아니면 순간적으로 "필"이 지나가던지.
그도 저도 아니면,
아이고 답답해!
빨리 빨리 하라고.
답은 바로 "3천배(三千拜)"
"사람의 두 손으로 별을 열어라."

2006년 11월 30일 17시 30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교

31. 부처님아! 이제 진짜 절을 찾았다. (15)


31. 부처님아! 이제 진짜 절을 찾았다. (15)


대웅전 절 속에 있는
금불상 부처님아!
너는 수 천년을 내려오며,
엄청난 절을 받았다.
절 값을 한번이나 주어봤니?
절 값 주었다면,
주었다고 말해봐?
아직 못주었지 그지,
절값 그거 언제쯤 줄건데?
설날에 세배하면,
반드시 절값을 주고 받았지.
왜 그럴까요?
모르지 모르지?
그건 쉬워,
설날이니까 주지,
설날 아닌데도 주어
예외도 있겠지만,

2006년 11월 29일 17시 13분

한림도

30. 절(卍), 절(寺)에 가면 반드시 절(拜)을 한다. (14)


30. 절(卍), 절(寺)에 가면 반드시 절(拜)을 한다. (14)

절(卍)도 절하는 것이오,
절(寺)도 절하는 것이오,
절(拜)도 절하는 것이다.

여러 대중들은 반드시
절을 찾아 규명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절을 찾아야 부처가 있기 때문에?
어쨌던 절이 3개나 나왔으니
이제 해결되겠지?

절(卍), 절(寺), 절(拜)

3가지 절을 한문장으로 만들면,
두 손을 절하듯이 모아서(拜)
새가 모이를 쪼듯이(卍)
손마디로 토를 다는 것(寺)
이것이 진짜 절이다.

2006년 11월 29일 16시 48분

한림도

29. 두 새 손마디 토를 달면, 진짜 절 맞어? (13)



29. 두 새 손마디 토를 달면, 진짜 절 맞어? (13)


금불상이 있는 대웅전 건물이 절이 아니래,
왜?
"두 새 손마디로 토"를 다는게 절이잖아?
여태 그걸 몰랐대 글세,
몰랐으면,
지금이라도 바로하면 되지,
그게 그리 잘 될까?
그나 저나,
손하고, 새하고, 절하고,
이게 도대체 무슨 연관이래?
절하는 손이 새가 되었다나 어쨌다나.
그래서 토를 달았다나?
그것이 진짜 절이래
이게 무슨 낯 도깨비 같은 소리람?

2006년 11월 29일 12시 16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

28.두 새(卍),손마디토(寺)를 달아야 절이지! (12)


28.두 새(卍),손마디토(寺)를 달아야 절이지! (12)


왜그럴까요?
절 절하니 절 절한다는 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절 왜 할까?
동방예의 지국 이라서,
삼강오륜에 군신유의까지,
그것하고 절하고 무슨 연관이라도?
없다 없어,
그래도 절은 한다.
불교에서 3천배를 한다지?
여기 이 법회도 불교인데,
그런 절할까?
말 할 수 없다.
답답하면, 와서 보면 되지?
절(卍)하니 절(拜)하고,
절(寺)하니 절(拜)하고,
그러니까,
절절하니 절절한다 라고 했을까?

2006년 11월 29일 11시 50분

한림도

27. 절 부처를 찾아가서 도(道) 닦는거 맞니? (11)


27. 절 부처를 찾아가서 도(道) 닦는거 맞니? (11)


절 부처를 찾아와서
승님이 된 후에
도(道)닦는거 맞지?
아니라고,
맞잖아,
그 도 닦으면, 옳게 닦아진다나?
남여 동권 시대에
아직도
여자는 남자로 태어나야
도 닦아 성불한다나 어짼다나,
그래 닦는 도 반쪽 도인데,
반쪽 도라도 옳게 닦아진담?

2006년 11월 28일 14시 20분

한림도

26. 절 부처,"양궁쌍을지우마"가 있는 "삼풍 양백"에 (10)


26. 절 부처,"양궁쌍을지우마"가 있는 "삼풍 양백"에 (10)


그렇다.

격암유록의 해설서 "삼풍 양백"에는
분명,
"양궁쌍을 지우마"를
"아는 사람 열 말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진정한 절 부처가 있는 곳을 안다네.
절 부처가 두 새와 두 활인데,
절은 두 새, 부처는 두 활인데,
바로 이것이 절 부처인데,
건축물인 절에
수 천년을
금불상으로 앉아 있었으니
원래의 절 부처를
모를 수 밖에 없었구나.
그럼 이제 우린 어떻게 해,
그건 간단해
왜냐하면,
절 부처가 있는 곳을 안내할
"삼풍 양백" 격암유록을
읽으러 가세!
그러면 절 부처 만난다 잖아?

2006년 11월 28일 11시

한림도 미륵금성생불


25. 양궁쌍을 지우마(兩弓雙乙 知牛馬)란 무엇인가? (9)

두 활인 "양궁(兩弓)"과,
두 새인 "쌍을(雙乙)을,
마소(馬牛)도 알(知)아,
그러나 사람들은 몰라.
이게 진짜 절 부처인걸,
그러나 사람들은 몰라.
그래서 아는 사람이 아니면,
이 말을 열지 못한다고 한 말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마소는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어,
그래서
마소(馬牛)에게 물었더니
그게 글쎄,
그걸 속 시원하게 가르쳐주지 않겠어?
마소에게 물어봐?
미소에게 물어봐?
"우이독경"이라 고라.
천만에 만만에 말씀이셔!
왜냐하면,
"안다는 마소" "지우마(知牛馬)가
글세,
"아는(知) 사람(人) 열(十) 말(馬)이라 잖니!
"마소도 안다는 절 부처를,
사람들은 모르니,
아는 사람만이 이글 즉 "격암유록"을 해석하여 열어 쓸 수가 있다고 한 말이다.
(삼풍을 보면 격암유록을 알 수 있다.)

2006년 11워28일 11시 20분

한림도


24. 진정한 부처(佛)님아! 지금 어디에 있니? (8)

진정한 부처(佛)님인 두 활(兩 弓)님아!
너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마소(馬牛)도 안다(知)는데
왜, 왜,
우리네 인간들은 모르는 거니?
재발 부처님아
너를
찾을 수 있도록 해 주려무나.
두 새 쌍을(雙 乙)을 찾으려고,
물어 물어,
새가 모이를 쪼듯하는
절(卍)을 찾고,
손마디(寸)로 토(土)를 다는
절(寺)을 찾았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구나!
여명이 아직 걷히지 않아서 인가,
그래도 이제는 찾아야 하는 시간인데
두 활과 두 새를 마 소도 안다하는,
양궁쌍을(兩弓雙乙) 지우마(地牛馬)를
사람들이 알도록 가르쳐 주렴?
세상에 그냥 알려고
말도 안되, 말도 안되?
그러니 어떻게 하니,
너의 말이 열리기를
일만년을 기다렸단다.
이제는 아는 사람이 잖니
그러니 어서 말을 열어다오
저기 저 어린 중생들이
너의 말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니?
두 활과 두 새를
아는 사람이 아니고는
말을 열지 못하는 거니? 응!

2006년 11월 28일 10시 25분

한림도

23. 절(卍)이라고 하는데, 절(寺)이 아니네! (7)


23. 절(卍)이라고 하는데, 절(寺)이 아니네! (7)


두 새가 모이를 쪼듯 하는 것이 절(卍)이면,
손 마디(寸)로 토(土)를 다는 것이 절(寺)이라네,
이 절(卍)이나,
저 절(寺)이나,
그런 절이 없으니
어느 곳에 가야 절을 찾을 런지?
절이 이러하니,
부처를 어디가야 찾으려나?
진정한 부처님아!
어디에 있느냐?
그곳의 절은
정말로 "새가 모이를 쪼듯하여",
정말로 "손마디로 토를 다는가"?

2006년 11월 27일 22시

한림도

22. "절 부처"의 본래 뜻은 신(神)이 전수한 "격암유록" 만이 안다. (6)

 

22. "절 부처"의 본래 뜻은 신(神)이 전수한 "격암유록" 만이 안다. (6)


물론 어느 정도의 번역은 누구라도 가능한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서문에서 부터 시작하여 거의 모든 분야에 이르기까지
격암유록의 본뜻을 파악 하기는 거의 불가능 하다.
그런데도 수 많은 사람들이 격암유록을 인용하여,
자신이 정도령이다 미륵이다.
주장하다가 결국은 잘못되는 경우가 많다.
격암유록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오직 한사람 뿐이기 때문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 하듯이
세상끝이자 시작인 이 과도기 시대를
짊어지고 가야할 사람은 오직 한사람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할 이유라도 있는가?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봉황은 천마리 닭 가운데 딱 한마리 이기 때문이다.
이 봉황 미륵에게 격암유록이 제대로 전수 되었다는 것이다.
절 부처를 찾는데 웬 격암유록인가 하겠지만,
그 이유는
절 부처를 아는데 격암유록 만한 서책이 없기 때문이다.
(너무 극단적인 표현이라면 양해를 바란다.)

2006년 11월 27일 17시 25분

한림도

2016년 4월 1일 금요일

21. 부처를 찾아 절에 왔건만 부처는 없네? (5)

 

21. 부처를 찾아 절에 왔건만 부처는 없네? (5)


절을 찾지 못하는데 부처를 찾는다고?
마소도 안다고 하는 절 부처를,
사람들은 모른다고 하니,
어이가 없군,

서남아 해일에서 온갖 동물들은
모두다 피했는데
사람만이 해일을 피하지 못해
얼마나 참담한 일이 있었던가?
마소도 안다고 하는 절 부처를
사람들은 몰랐기 때문에
그러한 불상사를 당하였지!

믿거나 말거나 하겠지만
어디 뾰족한 대안이 있남?
있다면, 말해보지?
절(寺)을 모르는데,
절(卍)을 안다고라.
"절 모르고 시주한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구만,
절을 모르는데
어디가서 부처를 찾는담?
요즘 절이라고 하는 곳에 가면,
부처를 찾을 수 있남?
부처가 부처가 아니라고?
그럼 진짜 부처는 어디에???

2006년 11월 27일 11시 40분

한림도

20. 절은 절 만(卍)자로 푼다.(4)


20. 절은 절 만(卍)자로 푼다.(4)


앞장에서 "두 새 을 을(乙 乙)"은
절 만(卍)자라고 했다.
그것은 새 을(乙)자 두자를 뜻한다.
맞다.
그러나, 乙자 두자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잘 살펴 보면, 그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생각들을 해 보았는지?
새가 앉은 모양과,
모이를 쪼는 한 모양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두개의 모양은 일점 중앙에서 연결되어 있다.
왜 그렇게 했을까?
그것은 흐트러지지 않는 반복 동작을 ..........
아마도 그럴 것이다.
좀더 진행해 보면 알게 될것이다.
이게 절(寺)이라고?
절(卍)이냐, 절(寺)이냐, 어느 쪽이냐?
아니면 다 같은 것이냐?

2006년 11월 27일 11시 20분

한림도

19. 부처(佛)란 무엇인가? (3)


19. 부처(佛)란 무엇인가? (3)


(1)에서 부처란 "사람의 두 활"이라고 했다.
(2)에서 부처란 사람의 두 활로서 과녁을 향해
관중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어찌되었던, 부처란 반드시 활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하나도 아닌 두개씩이나?
그래서 격암유록 남사고 비결 서문(삼풍 서두)에,
양궁쌍을 지우마(兩弓雙乙 之牛馬)라고 하였다.
이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우선 직역하여 보면,
"마소(馬牛)도 안다고 하는 두활과 두새를,"
그개 어쨌다는건가?
똑똑한 사람들은 모른다는 말이 생략 되었을까?
사람(人)에 대입한 두활 (弓弓)이라면,
그건 부처 불(佛)자가 된다.
또한 두새 을을(乙乙)은 절 만(卍)자가 된다.
이렇게 하여 다시 해석해보면,
"마소(馬牛)도 안다고 하는 절 부처를"
사람들은 어찌 모르고 있는걸까?
라고 비웃는 듯한 어조로 "격암유록"의 서문이 시작 된다.
여기서 좀 묘한 것을 느끼게 될것이다.
왜냐하면,
"두 활과, 두 새"가 "절에 있는 부처"로 되었다는 것이다.
분명히 절에 가면,
절 건물의 외벽에 절 만(卍)자가 있다.
그리고,
절 건물의 내부 대웅전에 가면,
금불상이 있다.
이것을
불교 신도들은 "부처"님이라고 한다.

2006년 11월 26일 19시 30분

한림도

18. 부처(佛)란 무엇인가? (2)

 

18. 부처(佛)란 무엇인가? (2)


부처란 두 활 궁궁(弓弓)으로 쏘아야 부처가 될 수 있다.
그게 어디 말이 되는 소리냐고,
하지만,
사실이잖아!
잘 모르면서 활 두개로 동시에 쏘는 사람 봤다고라,
아니어라,
라고 일반적으로 그렇게 말들을 한다오.
그래 그럼 활 두개로 쏜다고 하자.
그러면 화살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라.
말하면 잔소리,
활 하나에 화살 몇개를 장전 하느냐라고 묻는건가?
그야 당연하지
뭐가 또 그리 당연할까?
주몽이도 활 하나에 화살 두개를 장전 했는데,
부처는,
어디 두개 뿐일 거냐고,
그럼 그게 어디 몇개인데,
수로 해아릴수 있남?
어쨌던 한꺼번에 날아가는 숫자가 한량없기도 하고!
몰라 몰라 몰라!
해보면 될걸 가지고 이리도 안달 복달이야 참!
그래 그럼 화살이 날아간다 하자.
어디로 날아갈거냐 이거지,
그야 과녁으로 반드시 날아가야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면,
다칠 수도 있잖아?
과녁 중앙에 맞게되면, "관중이요" 라고 깃발까지 흔들잖아!
알면서 자꾸물어?
이게 부처(佛)가 되는 길(道)이야?
그래 길(道)이야.

2006년 11월 25일 11시 56분

한림도

17. 부처(佛)란 무엇인가? (1)


17. 부처(佛)란 무엇인가? (1)


사전을 찾으면,

불교의 교조인 "석가모니",
또는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다.
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석가모니불 이전에도 수많은 부처가 있었고
미륵불 또한 올것이다.
또는 와 있다 라고 한다면.
부처에 대한 확실한 해석이 나와야 할것이다.
그러나 이부처이던 저부처이던,
흔히 절에 있는 불상을 보고 부처라고 한다.
그러나, 형상이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석불(石佛), 목불(木佛), 금불(金佛), 개금불(蓋金佛)이란
말들이 있구나!
그렇다면 살아있는 사람은 생불(生佛)이 맞고,
죽은 사람이면 사불(死佛)이 맞잖아?
살아 있는 사람으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일까"
깨달음이 어디 한가지 두가지 라야지 의문이 가지않지,
도대체 그 깨달음이란게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인가?
자신이 부처라면 부처를 깨달아야 하고,
자신이 학생이라면 학생이 무엇인지 깨달으면,
될게 아닌가?

부처가 무얼까?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는데,
이렇게 되면 다람쥐 채바퀴 돌리듯 하게 되지,
부처란, 부처 불(佛)자를 파자(破字)로 풀어보면.
사람인(人), 활궁(弓), 두이(二)자로 되어있다.
이 3글자를 합하여 읽으면, 사람의 두 활이다.
("파자"란 글자의 뜻대로 글자를 깨뜨려 부순다는 뜻)
그렇다. 그것은 무기로서 쏘는 활이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 신체의 일 부분"을 일컫는 말이다.
어떻게 그러냐고,
그게 그러니 또 다 증명이 될만한 일이 있지,
암 있고 말고지!
주몽이 활 하나에 화살 두개를 장전하여 쏘았다.
그러나 두개의 활로 동시에 쏘았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2)에서 계속.

2006년 11월 24일 14시 40분

한림도 미륵 금성생불


16. 어느 불자님이 "미륵과 일월오봉"의 관계를 질문했다.


16. 어느 불자님이 "미륵과 일월오봉"의 관계를 질문했다.


      당연히 답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게 단순 하지않다.
      왜냐하면,
      "미륵"이란 뜻이 무엇일까?
      일월은 무엇이고,
      오봉은 무엇인가?
      그리고 "부처(佛)"란 무엇인가?
      설명해야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2016년  11월  23일  17시  40분.

      한림도.

15. 봉황미륵이 소사(素沙)에 일월 오봉의 법을 펴는 이유는 뭘까?


15. 봉황미륵이 소사(素沙)에 일월 오봉의 법을 펴는 이유는 뭘까?


왜 그럴까?
왜 하필이면 일월 오봉의 법일까?
일월 오봉이 뭐길래 옛날에는 임금님 정사하는 뒷벽의 벽화로 있었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봉황미륵이 또한 그것으로 자신의 법을 편다고 할까?
분명히 뭐가 있기는 있는데?
알기가 어려운가?
"천붕지탹 소사립"이란 말에서 왜 하필이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터져 꺼지더라도 소사에 세운다."
이 말은 세상에 어떠한 일이 발생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소사(素沙)에 세운다 이다.
그렇다면, 뭔지 잘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분명한것은,
소사에 반드시 세우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 그렇다면, 이것이 일월 오봉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일월오봉의 법을 펴는 이유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소사에 세우기 위함일 것이다.

2006년 11월 23일 11시 45분

한림도

14. 봉황 미륵은 부천 소사에서 출현 하였는가?

 

14. 봉황 미륵은 부천 소사에서 출현 하였는가?


왜 하필 소사에서 출현 하였을 까?
그것은 격암유록에서 "천붕지탁 소사립(天崩地坼 素沙立)"
이라고 했기 때문일까?
그렇다. 오늘날에 있을 일들은 벌써 가마득한 옛날에,
이미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 하면된다.
그게 실지로 그럴까?
그렇다.
왜냐하면 옛 성현들은 천지자연의 섭리를 알았기 때문에,
후손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소상히 알고서 인도 하였던 것이다.
수많은 예언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러한 예언들이 간혹 그 시기가 맞지 않거나 오지 않을 수 도 있다고 했다.
이러한 예언들은 후손들을 위한 선대 조상님들의 배려 이기도 하고,
자연 조화의 섭리라고 하면 어떨까 한다.
오늘날에도 현세나 미래를 예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볼때,
봉황미륵이 부천 소사에서 출현 하였다는 말은 믿어도 될것이다.
믿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믿으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2006년 11월 23일 10시 30분

한림도


13. 진리(眞理)란, 무엇인가?

1) 진리란, 참(眞)을 이치로 표현한 것이다.
이치란, 알지 못하는 것을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참을 모든 사람들이 납득 할 수 있도록 설명한 것이 진리이다.
그래서 진리(眞理)를 삼풍(三豊) 양백(兩白) 이라고 하는 구나.

2) 진리란, 삼풍 양백(三豊 兩白)이다.
왜, 그럴까?
삼풍 양백을 찾아들어 가면, 참(眞)을 이치로 설명한다는 진리(眞理)가 있다.
당연히 삼풍 양백에 들어가면, 반드시 참을 찾아들어 갈 수 있도록 이치로
풀어서 잘 설명하여 놓았다.

3) 2006년 현재 이 시대가 왜 진리를 찾아야 하며, 진리로서 참을 회복해야 할까?
옳고 그른 잣대를 잊어 버렸는데 그 예날의 삼강 오륜이나."충효"가 어디에 있겠는가?
잘되고 잘못된 기준이 없어져 버렸는데 잃어버린 기준을 어디서 회복하겠는가?
이 사회 이대로 이렇게 가도록 내버려 두어도 좋은가?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는가?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가?

4) 답변하기 난처한 이런 물음들이 결국은 "참(眞)"을 불러오게 하였는가?
자연은 물이 흘러가듯이 흐른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방법이 병행하기 마련이다.
"궁 즉 통" 이라더니 결국은 참은 진리를 통하여 이세상을 치유하려 와 있겠구나!

5) 그래 "참(眞)" 은 진리 삽풍을 통하여 치유 불가능의 상황에 놓인 이세상을 구하러 왔다.
그렇다면, 이세상의 잘못된 기준은 참의 반대인 거짓에서 나왔겠구나!
바로 이것이지, 그렇지 않을까?
참이 거짓으로 병든 이세상을 구하러 온 것이지 그렇지!
그렇다면, 미륵이 참을 가지고 왔다는 거군?
암 그렇고 말고,그래야 하지.

6) 미륵은 당연히 참을 가지고 나오며,
참을 설명할 이치를 가지고 나와야 하니까 반드시 진리로 나오며,
진리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그 이름이 "삼풍 양백(三豊 兩白)"이다.
2006년 현재 오늘날을 살아가는 지구촌 인류에게 진리가 바로 삼풍 양백이다.
라고 단언 한다. 이렇게 말해도 될까?
물론 그 증거가 격암유록(삼풍)에 있기 때문이다.

2006년 11월 21일 22시 40분

한림도

12. 미륵은 참을 가지고 세상을 구하러 왔다.

1) 미륵이 참을 가지고 왔다는 증거가 있는가?
참을 가지고 온다는 증거가 격암유록에 있다.
삼풍 양백 진리라고 했기 때문에 반드시 미륵은 삼풍 양백으로 오며,
삼풍 양백은 진리이기 때문에 참을 구할 수 있는것이다.
고로 미륵은 참을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2) 참이 얼굴에 나타나면 얼굴이 붉어진다고 하였다.
물론 철면피의 경우에는 예외가 되겠지만,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직은 얼굴이 붉어질 수 있다.

3) 미륵은 반드시 참으로 오기 때문에 붉은 얼굴로 온다.
격암유록 궁을론(삼풍중권 28쪽)을 보면, "단동불출(木丹 東 人天 出)"
이란 말이있다. "단"자는 나무목 변에 붉을단 자이고,
"불"자는 사람인 변에 하늘 천자이다.
파자로 해석을 하면, 단(木丹)자의 동쪽은 붉을 단(丹)이기 때문에,
사람의 붉어진 얼굴로 나온다라는 뜻이다.
이해가 어려운 분들은 상단의 16초동영상이나, 삼풍을 보면 된다.
*단동불출의 단자와 불자의 표기가 이렇게 밖에 안된점을 양해 바란다.

2006년. 11월 17일 15시 20분

한림도

11. 참(眞)이란 무엇인가?



11. 참(眞)이란 무엇인가?


1) 세상에 참을 말한다는 것은 진정으로 곤혹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참이 이제는 이세상에 나와야 하겠기에 사실을 규명 해야할 때라고 본다.

2) 참이 세상에 나타나면,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 찬물을 끼얹기 때문에 거짓에게는 미안한 것이다.

3) 참은 참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답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답변인것 같아서,
참의 논리를 확실히 전개해야 할것이다.

4) 참의 실체에 대해서,
참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나타났을 당시에 확실하게 나꿔체야 잡을 수 있다.

5)참은 사람에게 나타나야 그 모습을 알 수가 있다.
참이 사람에게 나타나면 이것을 진인(眞人)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 참을 알아 볼려면 진인이 나타나야 한다.

6) 진인(眞人)이 나타나지 않고는 참을 알 수가 없다.
진인은 세상을 구한다 하여, 구세진인(求世眞人)이라고도 한다.

7) 구세진인(求世眞人)을 정도령, 미륵, 상제(上帝)라고도 한다.
격암유록에 미륵상제 정도령(彌勒上帝 鄭道令)이라고 하였다.

8) 이 말은 곧 참(眞)이 세상을 구한다는 말이다.

9) 참은,
수줍어서 붉어진 얼굴로 그모습을 잠시 드러냈다가 사라진다.
거짓이 탄로 났을때 그모습은 얼굴이 붉어짐으로 참이 드러난다.

10)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얼굴이 전혀 붉어지지 않는 것을 "철면피"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철면피 인간들은 참이 없어진 인간이다.

11) 철면피(鐵面皮)란,
글자그대로 낯 가죽이 쇠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쇠로된 낯 가죽이 어찌 붉어질 수 있겠는가?

2006년 11월 17일 13시

     한림도

10. 진심(眞心)이란 무엇인가?



10. 진심(眞心)이란 무엇인가?


1) 진심이란, 참이 마음애 들어 온 것을 말한다.
가심이란, 거짓이 마음에 들어 온 것을 말한다.

2) 참이 마음에 들어오면, 거짓된 마음이 숙으러 들고,
참 마음으로 변하게 되어있다.
사람들이 믿거나 말거나 하겠지만,
진심이란 이렇게 생겨나게 되어있는 것이다.

2006년 11월 16일 13시 20분

한림도

9. "삼풍 양백(三豊 兩白)"은 진리(眞理)이다.


9. "삼풍 양백(三豊 兩白)"은 진리(眞理)이다.


1) 이 세상이 수천 수만년을 지나오는 동안 진리(眞理)가 이것이다 라고 한 말이 있던가?
있다면 어디 한번 증거를 내어놓고 열띤 토론을 한번 해 보시구려 들!
아마도, 빗물이겠지, 아마도 눈물이겠지! 이걸 "화두(話頭)" 라고나 할까?

2) 이 세상에 진리가 없어진지 그 세월이 너무나 오래되어 언제쯤일까 알수가 없지!
진리가 이 세상에 없다고라, 이 세상에 진리가 있으면 어쩔테여 어쩔테여,

3) 이 세상에는 정말로 진리가 없다.
진리가 왜없냐 하면, 이 세상은 진리란 참 뜻 조차 모르기 때문에 한 말이다.

4) 진리가 무엇이란 것을 밝힌 것이 "삼풍 양백(三豊 兩白)"이다.
격암유록 남사고비결 서문을 보면, "삼풍 양백(三豊 兩白) 진리(眞理)" 라고 하였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삼풍 양백" 진리를  대중들이 보고 있다.
 "삼풍" "양백"이다. .

2006년 11월 15일 오전 11시.
한림도

8. 인도나라 석가모니불이 부러운 한국의 미륵불


8. 인도나라 석가모니불이 부러운 한국의 미륵불

 
승려의 복색이라면,굶어죽을 염려가 없어서 좋고,
노숙자가 되어서 다니더라도
우리나라 잠못이루는 여름밤 옥외에서 하룻밤 노숙하듯이 하니 집이 없어도 좋고
출가하였으니 책임져야할 처자식이 없어서 좋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태어난 미륵불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의 "제가자"라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과 자신의 가정도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민족과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불인 미륵불이라니 어림없는 소리이기때문이다
.
미륵불은 가정을 꾸려나갈 집도 있어야한다.
왜냐하면, 처자식을 길거리로 몰아낸다면,
자신과 가족들도 구하지 못하는 주제에 어찌하여 나라와 인류를 구하랴?
그래서 인도나라에 태어난 석가모니불이 비록 길거리에서 주면 먹고 안주면 굶고
하늘이 지붕이니 집이 없어도 적당한 온도라 죽지않고 살 수 있었으니 좋았다고?
좋게 말해서 부쳐다.
물질은 가난했어도 정신이 풍요로왔기에 부처가 되었을 것이다.
물질적으로만 따진다면 그당시 석가모니불은 노숙자요 거릉뱅이 신세였다.
그러나 누구도 그당시 상상할 수 없었던 깨달은 자의 삶을 살았으며,
오늘날까지, 수 많은 인류대중들에게 그의 깨달음이 깊은 가르침을 주어,
자비와 평안의 삶을 살아가는 길잡이 역할이 되고 있다.
우리네 미륵불은 지금 분명 와 있는가?
그래서 나라와 민족과 인류에게 어떤 구원의 가르침을 주고 있는가?
인도나라 석가모니불은 먹을 것이 없어도 걱정할 것이 없고,
집이 없어도 걱정할 것이 없으니 되었다.
그러나 우리네 미륵불은 무주택자라 해도 세입자는 되어야 하고,
구걸하여 가족을 부양하지 않을정도의 생계는 꾸려가야한다.
그래야만 국가와 민족과 인류를 구원할 것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미륵불이라 해도 우선은 자신과 가족을 먼저 구할수 있어야
나라와 민족과 인류를 구할 것이다.
2) 지금, 이나라에서는 부동산 정책이 잘못되어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다고 한다.
억은 옛말이고 십억 몇십억은 이제 보통이다.
어렇게 전국민들이 모두다 물질적으로 풍요롭다면,
미륵은 할 일이 뭘까?
미륵이 살고 있는 집도 억대나 몇십억대의 재산가일까?
아니면, 재개발 뉴타운 지역에서 그래도 빌라정도 살면서,
아파트 딱지등을 바라보고 있는 유주택자 일까?
미륵이 그런 넉넉한 생활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렵게 살아가는 무주택 세입자로서 이제 도시 전체가 재개발 뉴타운이 되면,
전세 대란으로 세집 조차도 구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
도시 서민이나 빈민들의 심정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집이있는 사람들을 구해야할 하등의 이유가 있을까?
집이 없는 무주택 세입자로 전세대란에 밀려 이 도시를 떠나야 하는
퇴출 주민이 되는 것이 시한부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서민과 빈민들의 입장과 심정을 안다면,
미륵 역시 이도시를 떠날 빈민층 무주택자일까?
아마도 인도나라 석가모니불이 노숙자라면, 미륵불 또한 무엇이 다를까?
"빈자생 부자사"라는 말이있다. 격암유록에 있는 이 말은,
현실적으로 볼때 절대로 아구가 맞지않는 말이다.
돈 없는 빈자는, 아무 죄가 없는데도 감옥에서 남의 죄를 덮어쓰고 사형을 당하고,
돈 없는 빈자는, 수술비가 없어서 그저 죽어야 했다.
어찌하여 빈자생이며, 부자사인가?
"빈자사 부자생"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말만 써놓은것 같다.
이시대의 진리를 삼풍이라 한다면, 삼풍(三豊)은 천(一),지(二),인(三)의
천부의 수리를 대입했을때, 그것은 사람의 풍년을 말한다.
그래서, 인종구어 삼풍(人種求於 三豊)이라고 하였다.
흉년에는 곡식 종자인들 성할려고!
그러하니 씨종자는 반드시 풍년이 들었을때 씨종자를 구한다는 말이다.
3) 이와같이 지금 대다수의 주민들이 집이 있고,
무주택 서민들은 집이 없어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
인간의 씨종자를 무주택 서민들에게서 구할 수 있을까?
인간 종자를 구한다는 "진리" "삼풍"을 이해 하려고 할까?
무주택 서민들은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다.
그래서 삼풍곡식을 구하기 어렵다.
물질적으로 풍족한자가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다.
이말이 우선은 맞다.
그러나 이제 서양 물질문명의 풍요가 첨단이란 상황에까지 오게된 말인것 처럼,
오늘날의 문명도 끊어진 끝 벼랑에 닿았다.
물질이 극도에 도달하니 환락의 극치로 말미암아 정신이 썩고 병들어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첨단의 문명까지 왔다.
그럳다. "빈자생 부자사"라는 말이 바로 이것을 두고하는 말이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살인자도 살아나고,
오히려 돈없으면 죄를 덮어쓰고 무죄한자가 죽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죽는 것이 육체는 죽어도 정신과 영혼마져 죽을소냐!
바로 그돈! 그 돈에 대하여,
격암유록 남사고비결 서문(삼풍 상권 20쪽)을 보면,
"삼풍양백 진리(三豊兩白 眞理)" "안적지화 인부도(眼赤紙貨 人不睹)" 즉
"종이돈에 눈이 시뻘것게 되어 삼풍양백이 진리인 것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도(道)를 닦는 것은 안중에도 없고 돈에 눈이 멀어, 돈 독에 눈이 시뻘걷게 되어있지 않는가?
이런 세상을 구하라는 말이다.
물질이 극에 도달하여 인륜이 무너지고, 인간 값어치가 금수만도 못한 상황에까지 와 버렸다.
이런 모든것을 미륵불이 떠안아야 할 숙제이다
.
미륵아! 미륵아! 이 도시의 퇴출자 무주택 서민층에 살고있는 미륵아!
이제 불원간 너는 "천붕지탁 소사립(天崩地坼 素沙立)"의 "소사"에서도 쫓겨나는
퇴출자 신세를 면치못하겠구나!
미륵아 그러고도 너가 소사를 고집 하느냐?
땅 소사를 찾았으니, 이제는 인(人) 소사를 찾으라고?
그렇다. "땅(地)" 소사에서 퇴출된다면 인 소사에서 살것이니,
인 소사에서는 퇴출되지 않고, 영원히 살수 있어서 좋겠구나!
4)"환웅"이 "불웅"으로 "불웅"이 "대웅"으로 "대웅"이 "대웅전"으로 되었다나 어쨌다나.
그런 대궐같은 대웅전이 엄청난 건물인데,그거로 줄잡아 몇십억은 되어야 될거야!
미륵이 대웅전에 들어갈 형편이라니,형편이라니,
몇천 정도의 빌라 한채라도 어림없어,
전세 정도나 월세정도의 세입자 주제에,
가당키나 한다나? 어쨋다나?
그런 대웅전이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럼 어디야! 갈 곳이 있냐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더라도 소사날 구멍이 있다는데?
소사날 구멍이 있긴 어디 있다고 그래? 없어, 없잖아?
땅 대웅전, 집 대웅전이 아니라고? 인 대웅전이라고,
그려, 인 소사라더니, 인 대웅전, 그거 말이 된다.
믿거나 말거나, 미륵이라면, 이 말을 믿을까?
도무지 오리무중이잖아! 이러지 않고 어떻게 자신을 구하랴!
물질의 풍요는 죽지 않을 만큼만 하면 되고,
이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고?
아니 지금 아무게 씨가 정도령이고 미륵이래,
아무게 씨는 작고 했지만, 미륵불이었데?
호화가 극치에 달한 분들이 미륵이라고라!
미륵이 보면 어떨까?
바깥 노지에서 풍한운우를 맞아가면서,
홀로 외롭게 수천년을 서있는 저 돌미륵!
보고도 느낀바가 있는지 없는지!
옆에 좌우에 보살 그림자 하나 없이, 적막 강산에 외롭게 서 있는 산중 마애석불 미륵을!
그 심중을 좀 해아려 보기나 하고 자칭 타칭 미륵이라 하는가?
그 미륵 절대 쉽지 않잖아!
우선 외로운 돌미륵을 현실로 조명해 보자.
혼자 외롭게, 따르는 사람 하나 없는 외톨이가 미륵이여!
미륵을 안다고 거기다 한술 더떠서 자칭 타칭 미륵이라고라.
그거 아무나 하는거 아니여!
석가모니불 영산회상은 길거리에서 사람들이라도 모여들지만,
미륵은 아니여!
혼자 홀홀단신이여!
알아주는 사람이 이세상에는 없어! 없어! 없어!
저세상으로 먼저 간 분들이 혹 글자 한자 남긴걸로 맟추면, 그래도 위안은 될까?
그런거여!
신도가 십만이고 백만이고, 하다못해 열명만 된다해도,
아니 하나라도 진정으로 미륵을 안다면!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세상에 진정으로 미륵을 아는 사람은 없다.
가족도,친척도, 친구도,왕래하는 수도인들까지도 진정으로 미륵불의 그심정을 해아려 알까?
미륵불은 그저 혼자여!
그러나 과거의 많은 부처님들이 알고,
과거의 많은 성현들이 조금 알기에 위안을 삼고 자신의 사명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이와같이,
미륵이 해야할 사명이 있다면,
그것은 수많은 대중들이 돈의 노예에서 벗어나,
"삼풍양백 진리"의 도(道)를 찾아 닦도록 하는 것이다.
오늘과 같이 찬비가 내리는 초겨울 새벽 외롭게 노지에 혼자 서있는 돌미륵은
가만히 지금 필자의 심정을 해아릴까?
어니, 해어리거나 말거나, 언제 해아린다고 글쓰고 해아리지 않는다고 글 않썼나!
비오는 날이다. 초겨울 새벽 7시가 가까운데도 여명은 아직 걷히지 않는구나!
2006년. 11월 14일 아침 7시
한림도

7. 예날 일은 잊어버렸나요?


 

7. 예날 일은 잊어버렸나요?

 
     아주 아주 오랜 태고적에 마고성이 있었고
     그런다음,
     허달성과 실달성이 함께 있었데요.
 
     그러나, 지금은
      옛날일은 잊어버렸나요?
 
      오호라, 통재라!
      우리네 님들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인(因)으로 맺은 언약은 뒤로 한체,
      오늘만 오늘만 하고 살았다오!
 
      그님이 오시기를 학수고대 하였건만,
      밤인지, 낮인지 알수없는 날들이 가고 또 가고,
 
      저물어간 날이 아주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하도 하도 날이 안세더니!
 
      닭 울고, 개 짖고, 도야지가 꿀꿀, 엄마 소가 음매하니,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라던 세월이었다오,
 
     삼가 아뢰오니,
     부디나 부디나 철이 없던 그시절을
 
     한없다 원망일랑 마라주오
     한없다 원망일랑 마라주오.........
 
 
               한림도

6. 봉황미륵은 민중들 속에서 "일월오봉(日月五峰)"의 법을 펴고있다.



6. 봉황미륵은  민중들 속에서
     "일월오봉(日月五峰)"의 법을 펴고있다.
 
 1) 민중들 속에서 묵묵히  "일월오봉(日月五峰)"의 법을 펴고있는 바로 그사람이
      우리가 찾고있는 이시대의 구세 진주 미륵 정도령이다.
 
  2) 구세 진주 미륵 정도령은 서로 자기라고 주장하니까 누가 진짜인지 알 수 없잖아?
      그래서 아무래도 "일월오봉(日月五峰)"을 찾는 것이 더 빠르고 확실하지 않을까?
 
  3) 어디를 찾아가면  "일월오봉(日月五峰)"의 법을 펴고있는
      이시대의 구세진인 정도령을 만날수 있을까?
 
  4) "하늘이 무너져도 소사날 구멍이 있다"고 했다면,
       그와 같은 말을 쓰는 장소가 있을런지!
 
  5) 격암유록 출장론에 보면"천붕지탁(天崩地坼) 소사립(素沙立)"이라고 한 말이있다.
      이말의 뜻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 하더라도 소사에 세우리라"고 한 말이다.
 
  6) 그렇다면 소사를 찾아가면 확실히  "일월오봉(日月五峰)"을 만나게 될까?
      소사가 어디 하나 둘 이라야지, 어디있는 소사말인가?
 
  7) 전 장에서 경기도와 서울이라고 했으니,
      경기도는 경기도인데 서울이 아주 가까운 곳일까?
      그렇다. "인부지간(仁富之間)" 즉 "인천 부천사이"라는 말처럼,
      그 장소를 격암유록 은비가에서
      "소사범박(素沙範朴) 천왕지(天旺地)" 즉 "하늘의 기운이 왕성한
      땅은 소사 범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곳은?
 
                                                                                2006년  11월 18일
 
                                                          한림도 

5. 봉황미륵은 일월오봉(日月五峰)과 연관성이 있는가?

 

5. 봉황미륵은 일월오봉(日月五峰)과 연관성이 있는가?



1) 일월(日月)은 해와 달인가? 오봉(五峰)은 다섯 산 봉우리인가?
하늘에 떠 있는 해와 달과 다섯 산봉우리가 "일월오봉(日月五峰)"이란 말인가?
2) 서울에 있는 경복궁 국립중앙 박물관에 가면 "일월오봉(日月五峰)"이 있다.
임금이 정사하는 뒷 벽에 벽화로 그려져 있다.
3) 일월오봉(日月五峰)"도(圖) 는 석가모니불 당시에도 있었을까?
그당시는 군주주의 시대였으므로 우리민족의 임금님이 정사하는 곳에는
벽화로 있었던지 아니면 그러한 뜻으로 백성들을 다스렸을 것이다.
4) 오늘날은 민주주의 시대이다.
그렇다면 일월오봉은 지금 만 백성들에게 내려와 있었야 할테인데,
그렇게 되었을까? 아니잖아? 그럼 어쩐담? 봉황미륵은 이것을 어떻게 풀어 갈 것인가?
5) 자연한 법은 절대 어김이 없건만 어찌하여,
민중들에게 "일월오봉(日月五峰)"은 아직 그 모습을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일까?
6) 봉황미륵이 "일월오봉(日月五峰)"과 연관이 있어야 할터인데 어찌할거나!
만일 봉황미륵이 민중들에게 "일월오봉(日月五峰)"의 일을 하지않고 있다면
그건 봉황미륵도 아니요 황궁씨의 후예도 아니다.
틀림없이 봉황미륵은 미륵의 시대에 출현함이 맞다면
민중들에게"일월오봉(日月五峰)"의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2006년 11월 11일 18시 11분

한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