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7일 수요일

200. "양백상권의 서설"(양백상권 5쪽~ 8쪽까지의 글이다.)


200. "양백상권의 서설"(양백상권 5쪽~ 8쪽까지의 글이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이사람 필자 한림 금홍수가 1981년 1월 1일 허공에 주제하시는
一神을 만나 한림道 천부금척(天符金尺)을 전수받고,
다시 1982년 8월 8일 죽어 저승에 가서
3神을 만나 한림道 천부금척(天符金尺)의 사용법을
전수받아 부활하였으니,
이것은 이사람으로 하여금 대환란을 맞이한
인류를 구하고자 하는
一神과 三神의 특별한 배려이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사람은 두 번째 인생살이를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는 상황이라서 먼저 신변의 정리부터 시작하였다.
그 당시 모 건설 회사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머지않은 장래에 이승에서 살아가는 속세 살이
를 청산해야 한다는 예감이 들어왔다.
속세에 살면서 속세와 인연을 끊고 어떻게 살아갈까!
돈이 없으면 못사는 세상인데 돈벌이 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갈까 !
그래서 벌은 것을 쓰지 않기로 결심하고
저축하기 시작했다.
몰론 술.담배는 내 형편에 사치이며,
외식은 말할 것도 없고,
차비는 전철이나 시내버스 이상을 이용할 수 없었다.
손님을 만날 때는 종이컵의 커피을 이용하고,
찻집에서 차 한 잔 마시는 것이 내게는
그렇게 부담이 되는 세월이었다.
내가 이러할진대 나의 가족들은 말하여 무얼할까!
86년 봄에 직장을 그만두고부터는
실지로 나와 나의 가족 앞에 예상했던
결과가 불어닥친 것이다. 처음은 당황했지만,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준비하고
연습했기 때문에 곧 달라졌다.
성장기에 들어선 아이들한테 옳게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한 것이 안타깝고
호강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살림 살아온
내 처에게 미안할 뿐이다.
먹고 입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목욕이나 이발등도
가정에서 해결하는 이러한 이야기를 누구한테
말할 수 있을까 !
옛날에 만났던 친구들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일체의 모임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그것은 첫째 재정 형편이요,
둘째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보니,자연히
수도(修道)하는 분들과 만남이 잦았으며,
그분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살림살이였다.
그러나 그분들도 역시 돈을 벌어야 살았다.
돈벌이와 수련(修鍊)이라는 갈림길에서
고통받는 세월을 살아가는 분들이다.
종교의 성직자라면 그 단체에서 모든 의식주가
해결되겠지만, 어떠한 종교에도 소속되지 않으면서
스스로 道를 찾거나 道를 찾아서 어렵게
수련하는 이러한 분들과 어울렸다.
이러한 만남에도 돈이 들었다.
첫째, 약속한 장소가 찾집이면 찻값이 부담되는 것이다.
하루에 천 원짜리 한 잔을 마셔도
한 달이면 3만원이요,차비를 포함하여
5,6만원이 들어가니 그 당시 정부미 한 가마 값인데 하는
이 생각이 들면 멀리서 찻집을 쳐다
보고 들어가기가 머뭇거려지며,
약속시간에 맞추어 찻집을 둘러보고 없으면
입구에서 10분 20분 기다리다가 만나면 공원에서
종이컵을 마시면서 수련한 내용을 주고받는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술 한잔 사겠다고 하면
그곳은 지하상가에 있는 부침게 집이다.
물론 이사람은 술 대신에 음료수 한잔을 마시면서 어울린다.
식사 초대는 떡복기에 라면을 넣어서 끓이는
분식집이 고작이니,
단돈 몇천 원에 초대하고 초대받은 세월이었다.
이렇게 살아온 일들을 누가 알기라도 할까!
이젠 그나마도 그런 만남들이 다 끊어졌으니 말이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을 종합하여
인류 앞에 펼쳐놓고, 앞으로 미지에 닥쳐올 불안한
세상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우리 인류의 앞길을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세월만 계속 하지는 않는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지금 지상과 지구를 둘러싼 대기권은 자신을 보호할
자연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다.
한계를 벗어났다면 변화가 있을 뿐이니,
이번에 찻아온 큰번화는 이미 오랜 옛날
부터 옛 사람들에게 예언되었던 일이다.
우리 인류는 예언되었던 운명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어쩌면 지금 이렇게 말하는 이사람도 받은 사명을
이 세상에 이루고져 하여 무대에서 연극하는
배우와 같은 운명이랄까!
그러나 이사람은 주저하지 않고 이 글을 써서,
인류가 감당할 7년 대 환란 중에 지혜롭게 살아남아서
인간의 종족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촌은
분명히 마냥 좋지마는 않다는 사실이다.
이서구 선생이 채지가를 통하여 '열석자로 오리라.' 하고
저승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양백下권 천부금척(징심록)의 마지막 단원에
金시습 선생이 추기한 내용을 징심록의 저자
박재상 선생의 후손인 박금 씨가 다시 설명한
내용을 살펴보면 "사람이 죽어서 가는 세상인
저승(명부)에서 분명히 천부금척(天符金尺)을 밝히는데
도움을 주리라"고 하였다.
이사람이 열석자의 맹서를 지키기 위하여
열석자로 오니,
부활하여서 12살이 되는 해에 양백을 썼으며,
만13살이 되는 1994년부터는 온 세계 인류에게
이 책이 읽혀질 것이다.
이 책은 오로지 인류를 위한 책이다.

이사람이 쓴 삼풍,양백은 글 잘 쓰는 문장가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출판은 나의 가족들의 힘으로
출판하였으니, 그 어려운 상황을 말로써 다 할 수 없다.
부활의 나이 13살이면,
이서구 선생과 증산 선생을 통하여 예언하게 하신
하느님의 뜻이 말씀(道)으로 이루어지는
실지의 시기가 될 것이다.
이제 모든 이야기는 다 끝났다.
우리 인류에게 더 이상할말은 없다.
오로지 이 큰 환란을 극복하여 부디
문명한 낙원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 밖에 더
이상 할 말이 없구나!

1993년 8월 23일 辰巳시에 쓰다.

한림도인 일월정사 금홍수

199. 장춘과 영생 (3)



199. 장춘과 영생 (3)


원래의 재목은
"1만년 만에 꾼꿈 장춘과 영생"이다.

석가모니와 예수는 영생의 길목을
자비와 사랑이라 말 했으며,
이것이 생노병사의 윤회를 벗어나고
부활하는 깨달음이라 하여
부처다 크리스트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 지구인들은 이제 깨달음의
단계를 벗어나서 깨달은 것을
실천으로 옮겨가는 단계를 원하고 있다.
영원한 깨달음은 깨달음으로 그쳐버렸기에...,
그것만으로는 현실의 윤회해탈을
할 방법을 찾기에는 택부족!
그러나 마루의 가르침이라 하여 종교(宗敎)라 하였다.
이게 사실일까?
예수크리스트의 사랑, 석가모니의 자비가,
지금 현대인들에게
현실적 생노병사의 윤회해탈 방법으로
타당한 가르침일까?

아마도 지구촌 민중들은,
영원한 오리무중의 미궁속에서 허우적거릴 뿐이다.
현대는 행동으로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야 한다.
그래서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구나.
그 당시의 성인들은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크리스트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랑과 자비 그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만일 사랑과 자비로
생노병사 윤회해탈의 영생이 된다면,
지금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생노병사의
윤회해탈이 현실적으로 영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비와 사랑만 가지고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을
납득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가르침이 되고만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가르침을 찾아야 한다.
바로 설날과 입춘과 장춘을 통해 생노병사를 끊어
윤회그길의 가르침을 얻고자 한다.
이승이 아닌
죽어서 가는 저승 명부나 선경 극낙을 말하지 마라.
우리는 살아서 숨쉬는
이승 세계에서 저승 명부, 선경 극낙과 같은
영원한 봄 영생의 지상낙원 마고성을 얻고자 하며,
그 영원한 세계 지상낙원 마고성에서
영생을 살고자 한다.
이것이 "1만년 만에 꾼 꿈 장춘과 영생"이다.

2008년 6월 3일 9시 15분

한림도 미륵금성 생불교 합동


198. 장춘(長春)과 영생 (2)

 

198. 장춘(長春)과 영생 (2)


그러나 그 한약이 영원한 장춘이 될까?

"장춘은 영생의 길목이라 했다.
영생으로 가는 길목은 설날이 아니면 올 수가 없고,
입춘이 아니면 도저히 장춘으로 들어갈 수 가 없고,
장춘이 아니면 영생으로 갈 수가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노병사의 윤회에서
벗어났다고 하여 부처님이란 칭호를 받지 않았을까?
석가모니의 생노병사의 윤회는 사실일까?
윤회를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석가모니는 70여세에 타계하고 남은 것은
설법과 불상만이 남았다.
무엇이 윤회를 벗어난단 말인가?
아리송한 말들만 무성한체 2500년이 지났다.

생노병사의 윤회를 벗어나는 방법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고성 지상낙원이 폐쇠된 이래
이 지구상에서 생노병사의 윤회를
벗어날 방법이 있었을까?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이승세계의 뿌리인
극낙 선경의 세계와 명부세계의 저승은
생노병사의 윤회가 없을까?

그래 그곳은 생노병사의 윤회가 분명 없는 곳이다.
우리 지구 인류가 이승 세계의 문을 닫고
극낙 선경세계나 명부 세계의 저승으로 가면
분명 그곳은 샌노병사의 윤회가 끊어진 곳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 윤회가 끊어진 곳이 있다면,
그곳은 선계, 명계, 이승계가 태어난
존재계일 것이다.

그래 이것을 깨달았다고 부처가 된 것일까?
지금 세상 사람들이 석가불의
깨달음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석가불은 부처(佛)를 깨달았기 때문에
부처(佛)라고 한 것이다.
부처는 분명 생노병사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것이 저승이던 선경이던, 이승을 떠난
그런 체험을 해 보았기 때문에
부처라고 하지 않았을까?
지금 석가모니는 저승에 있을까?
선경에 있을까?
존재계에 있을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곳에 있을까?

그나저나 석가모니는 부처가 된 것이다.

부처는 윤회를 벗어나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뜻이란다.
그래서 그 불상이 앉아있는 모습이
윤회를 벗어나는 모습일까?
윤회를 벗어나려면
그렇게 앉아있으면 윤회를 벗어날까?
그 깊고 깊은 내막은 오로지
부처 불(佛)자에 달려있다고 보자.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 속으로 들어가면
완전히 오리무중으로 빠져버려
미궁에서 해어날 방법이 없어져 버린다.

부처 불(佛)자와 장춘(長春)과의 연결성은 있을까?
불상의 자태에서 흐르는 자비,
예수 크리스트의 자태에서 흐르는 사랑,
이것은 장춘과 연결 되어야지 영생과 연결되고
지상인류가 지상에 살아가면서 생노병사의
윤회에서 벗어나는 영생으로 가지않을까?

2008년 5월 30일 22시 32분

한림도 미륵금성 생불교 합동

197. 장춘(長春)과 영생 (1)


197. 장춘(長春)과 영생 (1)


요즘 나는 여기서 장준(長春)을 가르친다.

가르치는 방법은 약(藥)과, 호흡과,
스트래칭으로 구분한다.
호흡법은 자동법과 인공법이 있다.
그래서 장춘은 영생의 길목이다.
입춘은 장춘의 시초이다.
입춘(立春)의 시작은 설날 즉
입일(入日=설입 날일)에서 시작 된다.
해가 서야 설날이 되며 그날이 입일(立日)이다.
이날을 기리며 차례(茶禮)를 지낸다.
"차(茶)"의 유래는 "해독(解毒)"을 시키기 위한
중요한 민간 약재로 전해 내려온다.
왜 하필 해독일까?

날이 서고 해가 서면 해독이 될까?
지금 세상에는 엄청난 공해 오염 독으로
인류는 절멸지경으로 치달아 가고 있는데,
인류는 독소의 해독법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을까?
차를 마시면 지금의 모든 공해 오염 독을 해독 할 수 있을까?
만일 이런 차(茶)가 있다면 마셔볼 용의가 있을까?
인체의 독을 해독, 해간 한다고 해서
간에서 독소를 해독 할 수 있을까?
해독의 한계를 벗어나면,
즉 간이 해독하는 한계를 벗어나면 사람은 사망한다.
지금 공해독이 인체에 들어와 인체 내부에 있는 간이
얼마나 해독을 할까?
간이 해독하는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에
이름모를 질병에 걸려 사망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설날(入日)의 차례 문화는 계속되고 있는 건가?
일만년을 내려온 해독 문화 차례를
입춘을 통해 장춘(長春)으로 내려오고 있다.
일반 사람들이 아무도 알지못하는 가운데,
장춘은 그렇게 이어져 오는데
이사람 필자가 4대를, 이사람의 장남이 5대를 이어받아
지금은 부자(父子)가 세습한 가업이다.
장춘은 실지로 한약을 짓고 있다.
그 한약을 먹은 환자가 쾌차하여 장춘(長春)이 되기를 바라면서...

2008년 5월 29일 22시 54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교 합동

196. 경혼정발 녹각수호 곤진피발 만궁부호 진진관하 계수방책(驚魂正發 鹿角守護 困眞被髮 彎弓符號 陳陳管下 桂樹方策)


196. 경혼정발 녹각수호 곤진피발 만궁부호 진진관하 계수방책(驚魂正發 鹿角守護 困眞被髮 彎弓符號 陳陳管下 桂樹方策)


본 화두는 본 도문의 수행자 중의 한 사람이
08년 2월 7일 받은 화두이다.

경혼(驚魂)이라,
몹시 놀라서 얼떨떨해진 정신이나
또는 죽은 사람의 넋이라 한다.
정발(正發)이라,
바르게 피어난다는 뜻이다.
녹각(鹿角)이라,
사슴의 뿔, 녹용이 자라서 그속의 피의 양이 줄고
털이 뻣뻣하게 굳어진것이라 한다.
곤진(困眞)이라,
곤고하게 수련을 하여 얻은 참이란 말이다.
참을 얻으려면 몸이 망가질 정도의 수련으로 얻는다.
피발(被髮)이라,
머리를 풀어 헤친다는 말이다.
옛날에는 부모님이 사망하면 머리를 풀어헤쳤다고 한다.
만궁(彎弓)이라,
활이 굽도록 당기는 것을 말한다.
부호(符號)이라,
어떤 뜻을 나타내는 기호나 문장을 말한다.
계수(桂樹)이라,
달 나라에 있다는 계수나무, 무엇에 비유한 것일까?
이제는 좀 알아야지?
방책(방策)이라,
방법과 꾀라 한다.
상기의 해석을 합하여 해석을 하면,

"놀란 정신이나 혼이 반듯하고 바르게 피어나게 할려면,
사슴의 뿔인 녹각과 같이 머리를 풀어헤쳐서,
머리카락을 돌볼겨를이 없이,
어렵게 참을 지키고, 활을 당기는 부호,
오래된 우리 민족만의 관할구역인,
계수나무가 방책이더라."

지금 세상은 엄청나게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물론 앞으로 오고 있는 지층의 변화와 지축의 변화로
민생들의 놀란 정신이나 혼이,
바른 정신을 되찾게 할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이 여기에 있다.
바른 정신을 차릴려고 한다면 참을 지켜야 하고,
참을 지키려고 한다면,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어도 돌볼겨를이 없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참을 지키기에 급급하다 보면
정신차릴 시간이 없다는 말이다.
어렵더라도 참을 반드시 지켜야 하고,
참을 지키려 한다면,
 활을 당기는 부호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고 하였으며,
계수나무가 방책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우리 민족의 태고 조상님이신 황궁님께서
마고성 복원을 위해 마고님 앞에 나아가서
백모의 띠풀로 결박하여 어떤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상낙원 마고성을 반드시 복원 하겠노라고
언약하여 굴레를 몸소 지신 것이 어찌하여
오늘날 이 후손에게 까지 왔으니 어찌 이런 일이!
용화회상 법회에 "한림도 미륵금성생불"이
설법을 자청하여 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혼란과 혼돈은 먼저 사람들로 부터 시작이 되었다.
바른 정신을 채려서 혼란을 극복하려 한다면
반드시 이 길이 필요할 것이다.
바른 정신을 채릴 상세한 방법이 적혀있는
"삼풍 양백" 도서 한정 본을 무료로 배부할 예정이다.

2008년 3월 7일 18시 55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 합동.


195. 무엇이 있다 없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195. 무엇이 있다 없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요즈음 무엇을 가지고 있느니 없느니 라고 말이 많다.
물론 그 무엇이란 것을 만드는 과정이
옳지 못한 것이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 옳지 못한 과정으로 만든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그르면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데,
어떻게 해 봤자지 그렇지 않을까?
세상은 이미 혼탁해 져 버렸서,
진실의 가늠을 상실해 버렸다.
진실을 가늠하는 잣대 조차도 이잰 재 구실을
하지못하는 실정이 되었지 않을까?
아니 이제 진실의 종도 울려봤자지,
왜냐면 진실의 잣대가 어떤건지도 몰라.
그렇게 되 버렸어,
그래 어디까지는 보아주고 어디까지는 안되는데,
어찌 그런 말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은 이렇게 변해 버린 것이다.
또한 그사람이 엄청난 무엇을 가졌다고 하자.
그래 그게 어떻게 된건지,
잘 되는 세상도 아니더라고?
많은 국민들이 그러한 예들을 보았어.
아무리 엄청난 그 무엇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그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가진것이 쥐뿔도 없지 만은 그사람은 열심히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훌륭한 것이다.
황 아무게 처럼 엄청난 그무엇을 만들어
가지고 있지만 현 단계에서
그 무엇을 하지 못하고 말았기 때문에
낭패를 보고 말았지 않았나 한다.
국가 지도자의 직위에 있어야 한다면
그사람이 그 직위에 있을 만한 최 적임자 임이
틀림없는가가 우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청렴도를 먼저 따진다고 하는데
그게 그만한 잣대가 있어서 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되.
그래서 이러나 저러나
엄청난 것이 있던 썩은 것을 가지고 있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고
지금 현 단계에서 국민을 위하여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2008년 2월 23일 23시 35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교.

194. 하상봉민 청여삼세(河床奉民 請與三稅)라.


 

194. 하상봉민 청여삼세(河床奉民 請與三稅)라.


오늘 아침에 들어온 아주 따끈따끈한 화두를?

봉민(奉民)이라
국민들을 잘 받드러 모시고자 한다면,
하상삼세(河床三稅)라
국민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을
아주 하천의 밑바닥과 같이 바닥으로 내려야한다 라고,
청여(請與)라
국정의 중심인 정부 여(與)당은
국회에 상정하여 요청 토록 하기를 바라노라.

다시 요약 한다면,
"백성들을 잘 받들고자 한다면,
백성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을 아주 바닥으로 내려야 한다고
정부 여당은 국회에 상정하여 요청토록 하기를 바라노라"
라고 하는 의미가 아닐까 한다.
독자 여러분들도 한번 해석해 보기를 바란다.

2008년 2월 22일 19시 24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교

193. 정월대보름과 일월합기덕과 일월정사란 무슨 의미인가?


193. 정월대보름과 일월합기덕과 일월정사란 무슨 의미인가?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라
정월이라 바를 정(正) 달 월(月)
바를 정(正)은, 한 일(一)에 그칠 지(止)를 하여
하나로 그치게 한 말이다.

어찌하여 하나로 그친 것이 바를까?
책상이나 걸상을 일열로 한줄로 나란히 세울때
바를 정(正)자 정돈이라 한다.

달도 정월이 되면 일지월(一止月)이 된다.
일월(一月)과 일지월(一止月)은 차이가 나는 말이다.
일월의 음양이 하나로 될려면
일월합기덕(一月合氣德)으로 이루어 진다.
일월(日月)이 합기덕(合氣德)되면 반드시 하나로 된다.
그래서 호명(互名)을 일월정사(日月正師)라 했다.
이뜻은 일월(日月)을 하나로 그치게 하는 스승인 샘이다.
그래서 일월합기덕(日月合氣德)으로
견성성불(見性成佛)하였구나!
그래서 호명(互名)이 일월정사(日月正師)이구나
이사람 필자의 이러한 뜻을 많은 민생들이 잘 활용한다면
자신들 만이 아니라 사회나 국가나 인류세계에
이바지한는 바가 있을것이다.

2008년 2월 21일 13시

한림도 미륵금성생불교

192. 56억 7천만세에 나실 미륵불은 절(卍)을 줄까?



192. 56억 7천만세에 나실 미륵불은 절(卍)을 줄까?


여기서 세(歲)란 말은 해 세(歲)자도 되지만,
이렇게 했을 경우 우리 인류가 미륵불을
만난다는 것은 절대 불가한 것이다.

그래서 곡식익을 세(歲)자로 해석 하였다.
곡식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먹는 곡식이 아닌
사람이 곡식에 비유하여 삼풍 곡식이라
한 말을 기억할 것이다.

지구상에 살아가는 인류의 숫자가
56억 7천 만명이 되는 해 즉 1994년을 말한다.
이때 미륵불은 출현 하였으며,
출현하여 민생들에게 절(拜)을 받고 절(卍)을 주었다.

그렇게 한 사람을 미륵(彌勒)이라 하는 것이다.
그래 지금도 미륵은 민생들에게 절(卍)을 주고 있나.
아마도 그럴 것이다.
미륵이 아니고서 미륵을 알까?
미륵이 나온다면 자칭하여 미륵이라 하더라도
누가 그를 인정하려 할 것인가?
이렇게 미륵은 조용한 동방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1994년 나온 것이다.

이때가 석가모니불이 예언한 56억 7천만 세(歲)이다.
이 글에 나오는 년대 "56억 7천만세"는 원효대사가
술(述)한 불설미륵삼부경에 있는 글이다.

2008년 2월 14일 18시 32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 교.

2016년 4월 24일 일요일

191. 대웅전의 금불상 부처님께 절(拜)하면 절(卍)을 주나?


                                          하느님 이몸과 이나라와 이민족을 구하소서.



191. 대웅전의 금불상 부처님께 절(拜)하면 절(卍)을 주나?


미륵금성 생불님 대중들이 절(拜)하면 절(卍)을 주세요?

본 용화회상 법회에 온 여러분들은
절(拜)을 하지 않고도 절(卍)을 받는 거나 마찬가지가~
그래서는 안되는데 그렇게 되었다고라.
절(卍)을 받게 되면 불사를 하게 되는 거지.

이세상에서 나의 절은 어디에 있을까?
나의 절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 꼭꼭 숨어서
수 천년을 지냈다네.
민생들이 그동안 얼마나 목이 타게 기다렸던가?
하마나 하마나 그 절이 오기를 기다린지가
4천년은 더 되었다네.

태고의 7대 7불 부처님이 가시고 계시지 않는 대웅전에
어느누가 잠시 자리를 잡고 앉으셨나?

그 순간이 2~3천년의 세월이 흘렀더란 말인가?

이제 다시 우리의 부처님이 오셨다네.
우리의 부처님께 절(拜)을 하면 절값으로
반드시 절(卍)을 준다지? 아마도.
그래 생불 부처님께 절(拜)하고 절(卍) 받아 보았남?
절(拜)하고 절(卍) 받아 보았다면 어쩔래 어쩔 것인디?
어쩌긴 뭐 나도 절(卍) 받으러 갈까 하고.
그런데 분명한 것은,
생불 부처님께 절(拜)하면 반드시 절(卍)을 주는데

지금 대웅전에 좌정한 금불상 부처님도
절(拜)하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오셔서 절(卍)을 주나?

절(卍) 받은 사람 있다면~ 아마도 있을까~? 없을까~?
없겠지 그지. 금불상이 살아있는 사람도 아닌데
어찌하여 줄수 있나 이말이지.
그래 절(卍)을 받았다면 그건 그건 아마도
착각 이~겠지~~~아마도 착각?

2008년 2월 13일 18시 2분

한림도 미륵금성 생불교

190. 절(卍) 받은 불상의 부처한테 절을 하면 절(卍) 받나?


                                        하느님 이몸과 이나라와 이민족을 구하소서


190. 절(卍) 받은 불상의 부처한테 절을 하면 절(卍) 받나?


절(卍)을 받아 가지고 있는 불상 부처에게 사람들이 절을 하면
절한 사람에게 절(卍)을 주나?
줄까 말까?
절(卍)을 받자고 절에 가서 절을 하는 건지.
어쨌던지 사람들은 절에가서 절을 한다.
그것도 3천배씩이나.
글세 만배 보살도 있단다.
절하는 운동이 요즘은 인기란다.
절(卍)에 가서 절(拜)하는데 절(寺)도
이런절 저런절 하여 많단다.
이절이던 저절이던 절에 가서 절(拜)하면 절(卍) 받나?
그래 공짜는 없다. 반드시 응답이 있을 것이다.
열심히 절 한다.
한 평생을 절 한다.
사람의 수명은 한계가 있는데, 절 하는 것은 끝이 없다.
부처가 절(卍)을 받아서 깔고 앉았으니
불상의 부처한테 절을 해야지 절(卍)을 받을게 아닐까?
그래 이재 뭔가 좀 알것 같은 느낌이 온다.
요는 절(卍)에 가는 이유는 절(卍) 받으러 가는데,
절(卍)에 가서 연등을 달고 왔는가? 절(拜)하고 왔는가?
"내가 절에 간다면 절(卍)을 달라 하겠다."
만일 절(卍)을 몰라서 못준다 하면 어쩔래?
그럼 절(卍)을 가르쳐 주어야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좋다면 어쩔건디
절(卍)이 절(卍)을 모르면 절(卍)을 말아야지.
안그려!
세상에 절(卍)이 절(卍)을 모르니까
절(卍)은 주지않고 절(拜)을 하라고 하지
그것도 3천배씩이나?
해도해도 너무해 허참!

2008년 2월 8일 15시 20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 ~교...

189. 절(卍)이 부처(佛) 한테 절(拜)을 하나, 부처가 절(卍)한테 절(拜)을 하나?

 

 

189. 절(卍)이 부처(佛) 한테 절(拜)을 하나, 부처가 절(卍)한테 절(拜)을 하나?


이 무시기 말씀이래,
사람이 절에 가서 부처 모습의 불상에 절을 하지
그런대 그것이 아니지라.
왜따매 그런 말씀을 하시겠지만 사실인디
시상에 절이 부처한테 절을 한다고,
부처가 절한테 절을 한다고라 이 무슨 말씀이.
원래 말이 안되는 것이 또 말이 되는 일이
있을 수도 있지 암 있고 말고지.
그래 사람들이 절에 가서 부처 모습의 불상에
절을 하지 왜 그렇게 할 까요?
대답은 아주 간단한 거래,
뭐 이런걸 가지고 라고 말할것 같지만
어디 그럼 한번 풀어 보더라고 말을 한다면
대중들은 쉽게 대답을 할까?
이 말이 이 세상에서 이제 처음 풀어져 열리는 것이리라.
계속...

2008년 2월 7일 17시 30분.

하림도 미륵금성생불.

188. 마소(馬牛)도 안다는 절(卍) 부처(佛) 사람들은 왜 몰라?



188. 마소(馬牛)도 안다는 절(卍) 부처(佛) 사람들은 왜 몰라?


이 말은 격암유록(삼풍 상권) 서문에 나와 있는 글

"양궁쌍을 지우마(兩弓雙乙 知牛馬)"를 직역하면

양궁은 사람 인(人)자를 생략한 부처 불(佛)자,
쌍을은 새 을(乙)가 하나는 앉고 한나는 새가 모이를 쪼듯이
굽힌 모양이 합하여 절 만(卍)자가 나온다.

지우마(知牛馬)라,
마소도 안다고 하는 이란 뜻이다.
합하면 마소도 안다고 하는 절부처라는 말이다.
사람들이 하도 모르기에
"사람들은 왜 몰라?" 라고 생략한 말이다.

양궁쌍을 지우마(兩弓雙乙 知牛馬)를 의역하면,
양궁(兩弓)은 두 활, 쌍을(雙乙)은 두 새라는 뜻인데,
절 부처라는 말로서 마소도 안다는
표현을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지.
이 말은 절이 무엇이며, 부처가 무엇인지?
그 자체부터 알기가 쉽지않다는 말인데,
종교라는 개념으로 그냥 받아드리면 아니될것도 없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유교를 숭상한 이씨조선 초엽에
이런 불교측의 언사가 왠 말이냐 이거지?
절 부처가 무엇인가를 일깨워 주기위한
글로 보면 해답이 솔솔..
격암유록은 먼 훗날에 살아갈 후손들이
큰 어려움에 닥첬을 때를 대비하여
바로 이것을 알아서 크게 유익하게 쓰라고
일러준 말일 것이다.
후손 가운데서 누군가가 절대절명의 바로 그 순간에
이법을 쓸것을 대비하여 마련한 것이라고 보면 어떨까?
그래서 사람 인(人)자를 생략한 부처 불(佛)자를,

절 사(寺)자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알리고자 하는 뜻을 절 만(卍)자로
끌어갔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 우마(知 牛馬)"라 했다.
이 말을 모르는 사람은 이래도 모르고
저래도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지 우마(知 牛馬)를 의역하면,
"아는 사람 열 말이다." 라고 하였다.
마소도 안다는 절 부처를 사람들은 왜 몰라?
부처는 두 활이요, 절은 두 새인데,
이것을 마소들은 벌써부터 알고 있데나?
그런데 사람들은 모른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에서,
격암 남사고 선생은
소시 적에 신인(神人)으로부터 이런 글을 전수 받았으며,
후손들에게 이 글을 알리고자 한것이 아닐까?

70억 인류가 사는 세상에,
"절 부처 두 활 두 새"를 모른다니 말이 될것인가?
안되지라 그래서 이사람이 이 뜻을 해설하고자 하여
"아는 사람 열말"이라고 했잖아여.
이사람도 사실은 이런 글을 전혀 알아볼 도리가
없었던 사람이구먼
그런데 선경과 명부세계를 다녀온 후부터
자연히 이런 글이 해석 되기 시작 했어라.
참말이지라,
여기는 용화회상 법회인디 어찌 거짓을 할까이.

2008년 2월 6일 15시 26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교.

187. 인류가 살아날 길(道)


187. 인류가 살아날 길(道)


대한민국에는 인류가 살아날 길이 있다.

그것은 단군 개천 개국 이래 72갑자
즉 4320년 만에 이루어지는 일이다.

단군 개천개국 원년이래 4320년 만이면
단기 4321년이요 서기 1988년이다.
1988년은 세계 사람들을 다 초빙하여 올림픽을 한
단군이래 가장 큰 행사가 있는 해 였다.
단군님 시절에는 전 세계인류가 모두
조선으로 모여 문물을 교환하고 마고성
복본의 진리를 구하여 갔다는 내용이 전하여 오고 있다.
단군 시대의 일이 단기 4321년에 실지로 일어났던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잘 모르고 지나온 세월이지만
이것을 다시 상기 시키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구인류를 구해야 하는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구인류를 구해야 한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금부터 20년 전인 그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이러한 고민을 하리라고는 상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지구 종말이 가까이 다가 온다는
드라마가 공공연하게 상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왜 이렇게 되어야만 했을까?

그것은 지구인류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몇몇 소수의 사람들은 20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그 당시에 표현 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조금 넘치게 말하면
그것이 종교계에서 사이비가 되었고.
조금 부족하면 그 말은 예언 과는 거리가 먼
예기가 되었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다가 가기가 너무나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1984 갑자년부터 오존층에 구멍이 나기 시작하였고
1984 갑자년부터 종말을 예언하는 사명자들의 모임이
대한민국 서울 종로 천계천 당시
청자 다방에서 거론이 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도인들의 모임은
서로 자신의 예언에 도취되어 있었기 때문에
미지에 일어날 암울할 일들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는
일에는 소홀하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러나 저러나 앞으로 있을 난관을 대처할
사람들을 사명자들이라 했고
사명자들은 진인대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좋은 세월도 이분들이 지고가야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세월이었다.
사명자들은 오직 이 일에만 전심전력 하다보니
집안을 돌볼 여가도 없었고 그래서
지금은 그렇게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건강을 해치거나
가정을 지키기 어려운 분들이 많아서
오늘날은 이제 만나기도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있다.

사명자들인 진인들은 이 시대를 어떻게 하면
지혜롭계 극복할 것인가가 그들의 큰 숙제였다.
날마다 다른 과제들을 가지고 경향각지에서
수도하는 도인들이 바리바리 봇짐을 싸들고 온다.
그것이 보름이고 한 달이고 계속 되다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다 전하면 돌아간다.
물론 필자 역시 이러한 총중의 한 사람이었다.
자신들의 예언이나 진리에 너무나 심취되다 보니
다른 이들의 말들은 잘 새겨듣지 못하는 것이
아주 큰 결점이 되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 그렇다는 말이다.

자 그 모든 일들은 지나간 일들이다.
그 지나간 일들 가운데서 이사람 필자는
1988년 입춘일 대명주(大命呪)를 받아들고
서울 홍대 정문앞 골목 안의 단층 고가를 전세 얻어
한림서원(桓林筮院)이라 현판하고
도(道)를 전수(傳授)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이몸과 이나라와 이민족을 구하소서"
라는 대명주를 써서 걸어놓고,

이렇게 하기위해서는 반드시 대중들에게
도(道)를 전해야 했다.

점을 찍는 집 한림서원은 도를 전한는 집이라 하여
곧 바로 "한림 전도관"이란 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나의 이러한 일들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오늘날인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 하기도 한다.
1988 무진년 입춘일 이래 스물한번째 마지하는
입춘일이기도 하는데
지구촌은 앞으로 상당히 어려운 고난의 세월을
마지해야 하는 시점인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이사람 필자를
오히려 더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이니까
그냥 안타까움만 한정없이 더할 뿐이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이러한 것을 하소연 할 상대도 없다.
그래서 만나는 상대가 경향 각지에서 올라온 도인들이었다.

이재는 그러한 분들과의 만남들도 다 끊어진지가 오래 되었다.
불안한 지구촌을 슬기롭게 마지하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이사람이 저술한 삼풍 양백을 읽거나
엠파스 용화회상 법회라도 자주 들락거리면서
도의 입지를 구쳐야 하고, 그래도 이해하기 어려운 분들은
직접 찾아와서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면
수도인들이나 이사람 필자가 기꺼이 도울 것이다.
앞으로 지구가 어떻게 된단다. 라고 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 하는 말에는 답이 없다.
여러분들이 이시대의 주인공들이다.
이사람이 말하는 것은 여러분들 주인공들을 위하여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20년 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역시 이사람 필자는
도를 전하여 지구촌 인류를 구하는 것이 사명인 사람이다.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한림도"에
"미륵금성생불교"라는 꼬리를 더 달은 것이다.
모든 것은 인류 여러분들을 구하고저 하는 바램으로
계속하여 진행하고 있다.
이사람 필자가 본 법회에서 전하는
"한림도 미륵금성생불교"의 가르침 "삼풍 양백"
바로 이것이 지구촌 인류가 살아날 길이 아닐까 한다.

2008년 2월 5일 01시 19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교.

186. "화공태세 천추지한 .(점)찍고 기리여화"라




186. "화공태세 천추지한 .(점)찍고 기리여화"라


"화공태세(化公態勢)"라, 이 말은 조화의 공
"조물주"께서 민생들을 구하고자 하여,
미지에 닥칠 위험을 대비시키려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라"고 하신 말씀이다.

"천추지한(千秋之恨)"이라,
이 말을 듣지않으면 천추의 한이 되리라,

"점(.)찍고"라, 사정이 이러하니
"점 찍고 도道를 전수하여",

"기리 여 화(和)"라,
"물속에 잠긴 바위 합하기와 같이
도道닦기를 쉬지말고 오래도록 .
쉬지말고 계속 하라"는 것을 일러준 말이다.

무언지 어떻게 다 알겠는가 마는 도,
가까운 장래 인데
그것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위험으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말이다.
이것은 분명히 자연적인 현상이며,
그것은 조물주의 뜻에 의하여 진행된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반드시 "점 찍고 물속에 잠긴 바위 합하기를
오래오래 지속적으로 계속하라"고 하였다.

이 말은 도道를 전수받고 도道 닦기를
오래도록 지속적으로 하여
민생들을 구하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또한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여
앞으로 올 지구촌의 큰변화를
대응함에 보탬이 되기를 희망한다.

2008년 2월 1일 15시 15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교.

185. 늬들이 하느님 맛을 알아?



185. 늬들이 하느님 맛을 알아?


늬들이 하느님을 보았니?
보고서도 먹어보지 않고는
하느님 맛을 모른다나 어쨌다나.

맛을 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냐고?
맛을 보지않고도 구분만 할 수 있다면야
이렇게 까지는 말하지 않지를
이건 도대체 해도해도 너무해.
툭하면 하느님이래 아 글씨,
물론 정중하게 의식을 갖춘 연후에
하느님을 찾는 경우라면
그건 그래도 이해가 가.
그런 경우가 어디에 있냐고라.
딱 한군데 있어 있지.

우리나라 애국가를 부를때지,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내가 알기로 이것 말고는 진정으로
부르는 하느님은 못 보았네, 그럼
하느님을 많이 부른다고 해서 결코
나쁘다는 말은 아니야.
그러나 아무렇게나 망녕되이 남용하는 것은
차라리 아니함만 못하지, 암만
그래서 말인데 제발하고 하느님을 쬐끔이라도
알라고 우선 노력을 해보더라구.
하느님을 알려면 쉬운일은 아니지라이.

하느님을 알문 지가 하느님이게,
그려 하느님이여 우쩔래.
그럴수도 있제이 그러나 그럴수록 겸손하게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하느님이 나오시는 거래.
하느님을 어떻게 하면 맛을 볼수있을까?
하느님이 오시는 모습을 볼수도,
하느님이 오시는 소리를 들을수도,
하느님이 이몸에 임하셔서 계심을 느낄수도,
하느님의 마음이 되어보아야 하느님을 맛볼수도 있을까?

아~ 인간의 굴래를 쓰고 있으니 어찌!
하느님아! 재발 이몸에 임하여 다오,
이렇게 부른다고 다 될것같으면
벌써하느님을 목이터져라 불렀던
머시기한 사람들은 벌써 하느님
맛을 다~ 보았겄네이~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느님 맛을 본 사람들이
수 억도 더 되는데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 하고는,
그래서 믿기질 않잖아.
그렇지 그렇지 아무턴 그래

이래서 뭔 일이던 할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냥 바쁘다고 핑계대고 제대로 못한 것은
너희들의 불찰이지.
지금 세상이 어떻게 됐는지 한번 돌아보기나 해.
어떻게 돌아가고 있지라?
세상이 이런데도 아직 잠에서 덜껜 거시기 사람들이
저 어린 백성들을 이리끌고 저리끌어가고 있으니
참말로 환장할 노릇이랑께.
이 일을 어쩜좋아~ 늦어도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어라우.

이젠 하늘 아버지와 땅어머니의
노여움만이 남았어라.
이것이 "성신애제 화북보응"의 가르침인 것을
이제야 알겠나이다.
하느님이시여!
이 어린 지구촌 인류백성들을 어찌하오리까?
굽어살펴 주소서...

2008년 2월 1일 11시 04분

한림도 미륵금성 생불교.

184. 하느님과 부처님은 우리민족이 원초 6.




184. 하느님과 부처님은 우리민족이 원초 6.


요즈음 세상에 하느님과 부처님을 따로따로 놓고
종교가 생기고 갈등이 생기고 그렇다네
그건 한치 앞을 모르는 종교인들이 해석을 잘못하여
대중들을 이끌고 가기 때문이 아닐까?
왠만하면 그냥 넘어갈려고 했는데 아무레도
그냥 넘어가면 뒷날 욕을 먹을 것 같아서
입에 쓴소리 한번은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군,
원래 입에 쓴약이 병을 고치는 법이거든,
한쪽에서는 하느님을 믿으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부처님을 믿으라 하고
대중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하느님을 따르자니 부처님이 섭섭하고,
부처님을 따르자니 하느님이 섭섭하시잖어,
하느님과 부처님은 도道의 입지에서는
두 분중에 어느 분이던 없어서는 않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과 부처님은 우리민족이
그 원초라는 말을 이 지면을 통해서 밝히고자 한다.
하느님이 없었다면 지구상에서 사라진
도道를 회복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하느님이 5봉(五峰)을 배려하였다면,
부처님의 원조이신 삼신제석 불사님께서는
5봉(五峰)이 어떤 방법으로 좌정을 할 것인가?

좌정하는 장소는 어는 물가가 될까?
이렇게 하여 전수된 도道는 어떻게 닦을 것인가?
오붕(五峰)은 두 새가 되어 내려앉으니,
절 만(卍)자가 되었나?
두 새가 내려앉아서 어떻게 한다고
절이라고 하는가? 하니
손마디로 토를 달아야 절(寺)이라나?
활로 새를 잡는게 아니라 새로 활을 잡아야지
손마디로 토를 단다나 어쨌다나?
그래 새가 활을 잡았다 어쩔래.
새가 활을 잡아야지 부처가 된되나 아마 그렇지
왜그럴까요?
두 활이 두 새한태 꼭 잡혔어? 꼭 잡혔어? 절에 가서 물어봐.
그절이 알까?
모르거든 이절로 와서 물어봐!
절에 가야 부처가 있다고 하여서 부처 불(佛)이라고 하는데,
가만히 앉은 불상의 부처는 이렇게 3천년을 내려왔어라.
부처 불(佛)은 사람의 두 활로서
열심히 잘 닦기만 하면,
'아 글씨!' 하느님이 나타난다나 아쨌다나?
하느님을 만나고자 열심히 도를 닦는 부처님,
뭐가 잘못 됬다고예,
잘못된거 하나도 없심니데이.

잘한건지 못한건지,
어찌 되었건 간에 종교적 갈등이 풀어지긴
풀어져야 하느님과 부처님은 편안한 마음으로
우리 대중들을 맞을 거인데...?

한림도 미륵금성생불교

183. 하느님과 부처님은 우리민족이 원초 5



183. 하느님과 부처님은 우리민족이 원초 5


하느님의 원류는 선경세계이며
道와 동좌하고 계시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원류는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을까?

부처 불(佛)은 도道를 닦는 것이기 때문에
도道를 전수받는 선경세계의
하느님과는 달라야 한다.

모든 것은 하나에서 시작이 된다.
하나란 한 일(一)로서 하느님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도가 있기에 불이 나왔다는 것이된다.

도道를 닦아야 할 불의 원초는 어디서 왔을까?
도道를 닦아야 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원초는 어디서 왔을까?
어떠한 물질이던 그 성분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성품 성(性)이 있으며,
인간에게는 근본이 된다.

그래 성품 성(性)은 어디서 보고 찾을 것인가?
불가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말을
견성(見性)이라 하였다.
성품을 본다고 하여서 견성이라 한 것이다.
견성이면 다 될까?

견성으로는 생사 해탈문의 존재계를
다 보지 못한다.
금색 월륜이 떳다고 생사 해탈이 다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한 걸음 나아간
금색 월륜의 일월 합기덕이라 할지라도
생사 해탈문은 보지 못한다.

생사 해탈문을 볼려면 수견성(水見性)을 해야 한다.

자신의 성품의 존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살아있는 생명이 완전히 죽었다가
인간의 성품이 만들어져서 나오는
존재계를 거치면서 시작이 된다.
그래 살아있던 생명과 성품이 존재계라는
불랙홀로 들어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오는 부활의 영광이 없이는
이 세상에 이러한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 부활이 되어서 어떻게 되었는지를
말을 해야 알것이 아니냐 이거지 그려,
부활은 원님 마음대로 되면 되고 말면 만다던가?
그건 아니지라.

모든 것은 자연의 뜻에 따라 연출이 되는 것이다.
자연의 뜻에 따라서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다시 부활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이 엄청난
존재인줄 착가들 하는 모양인데
그게 다 알고 나면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다시 살아서 돌아오는
노정으로 들어 올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있다.

그곳이 저승 명부 세계의
삼신제석 불(佛)사님이 계시는 곳이다.
옛말에 자식을 낳을려면
삼신의 공줄을 받아서 태어난다는 말이있다.

사람은 죽으면 태어났던 그 장소 즉
저승 명부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죽었다가 세상으로 다시 살아돌아나오는 노정에는
저승 명부세계의 삼신제석 불사님이 계신다.
환생하는 사람마다 그 사명이 다르겠지만
아마도 이사람 필자는 이러한 말씀을
세상에 전하라고 하였기에
오늘날 이러한 글을 쓸것이다.

바로 삼신제석불(佛)사님으로부터
부처 불(佛)자가
처음으로 시작이 되는 것이다.

삼신제석 불사님을 만나려 한다면 존재계를 통과 하면서
티끌이 하나도 남김없이 확실하게 닦인 후라야 한다.

그래서 도를 닦는 것은 부처가 제일 이라고 하는 구나 이거지.
그래서 부처 불(佛)은 삼신제석 불사님이 원초인 것이다.

이 세상의 부처는 바로 여기서 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고
하느님과 부처님은 확실히 구분이 된다는 말이다.

2008년 1월 26일 22시 30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

182. 하느님과 부처님은 우리민족이 원초 4


 

182. 하느님과 부처님은 우리민족이 원초 4


하느님과 부처님은 완벽하게 구분지어 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은 "도여 상제동좌"라고한 말과 같이
도와 같이 있었다.

부처님이 같이 있었다는 말은 없다.

도를 전수 받을 때는 신선 선(仙)을 찾아가야 하고,
도를 닦으려 한다면 부처 불(佛)을 찾아가야 하고,
도를 행하려 한다면 선비 유(儒)를 찾아가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도를 선(仙), 불(佛), 유(儒)
3가지로 구분 하였으며

도를 전수받는 선도라 하여 우리민족 고유의
고 신선도 또는 고신도가 있었다.

도를 닦는 불도라 하여 우리민족 고유의 태고불과
과거불과 가야불이 있었다.

물론 인도로부터 중국을 거처 우리나라로 들어온
인도불교도 있었다.
신라 천년, 고려 오백년 합이 천오백년이요,
이씨조선조 오백년 동안의 배불 정책에서도
그 전통의 맥을 계승하였다.
조선시대
도를 닦은 뒤에는 행을 함에는 선비 유(儒)가 있었다.

도道는 분해되어 이렇게 3가지 형태로
이 세상에 전해지게 된 것이다.
선, 불, 유 3교가 어느 것이 도가 아닐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제 도는 유불선 합일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노선을 밟아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대중들의 인식의 정도가 수승하여져서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수긍하려 들지않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이 신도들을 보는 관점이
어떠하냐에 따라 다 다르겠지만
몇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사용해 오던 고정관념으로는
어림없다는 상황이 아닐까?

하느님이란 실체는 도와 동좌하였으며,
도의 실체는 신선세계에 그 근본이 있었다.

신선세계에서 도를 전수하신 분이 하느님이란 실체이시다.
왜 이렇게 보야야 할까?
그것은 도와 동좌하였기 때문에
도를 전수 받고자 한다면
선경세계의 하느님으로 부터 전수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다음 도를 닦는 것은 부처 불(佛)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불교에 가면 수도 승들이
한평생을 수도 하고 있구나.
수도하는 자세라던지 수도하는 방법이라면
그이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도 하는 방법이 정말
현생 인류에 맞는 것일까?
그러하다 보니 수도하는 부처 불(佛)의 원류는
어디서 시작이 되었을까?
몇천년 지나오는 동안 그것이 변질 될 수도 있겠지만,
오늘날의 인류에게 적합한 방법이 아니라면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서 원형으로 다시
복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부처 불(佛)의
원류를 찾아가 보기로 하자.

2008년 1월 26일 20시 53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교.

181. 하느님과 부처님은 우리민족이 원초 3



181. 하느님과 부처님은 우리민족이 원초 3


대중들은 하느님과 부처님에 대한 구분이
어려우리라고 본다.
그러나 도道의 입지에서 보면 분명히 구분이 된다.
왜 그런가 하면,

부처란 도道를 닦는 행위를 거치는 가장 중요한
단계요 요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모양을 만들어 앉힌 불상을 보고
대중들은 부처님이라고 한다.
사람의 모양이니까 아닌것은 아니다.
왜 그렇게 앉아 있을까?
수도(修道)는 행,주,좌,와,어,묵,동,정 가운데서
어떠한 경우라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왜 앉아만 있는 것을 가장 근본으로 삼은 것일까?
그것도 또한 별도의 뜻이 있을려나?

왜 불상은 금물을 칠하였을까?

그것도 거의가 3존불로 앉아있다.
그렇게 하고서는 쌍촛대를 좌우로 켜고
정화수 한 잔을 받쳐 올려놓고
그 아래 향로에는 향불을 켠다.
왜 이렇게 했을까?

그러면서 사시(巳時)가 되면 공양이라 하여
흰 쌀밥을 지어서 올린다.
왜 이렇게 할까?
누구 좋으라고 그렇게 할까?
거기에는 깊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숨은 그림 찾기를 위하여
힌트를 준다고 준 것인데
대중들은 점점 더 알기 힘든
수수꺼끼를 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도 자그마치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불교에서는 이러한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있을란가?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알고도 말못할 사정이
있거나 뭐 그런거 겠지.
알고 있다면 이제는 말을 해야
대중들이 알 것이 아닌가?

허다히 많은 법문들을 한다고 하는데
정작 앉혀놓은 저 금불상에 대한
설명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기야 무슨무슨 부쳐님이라고 이름을 말한다.
그 이름 알아서 뭘 할 것인데 지금,

양측의 두 보살상은 금관(金冠)을 썼는데
중앙의 불상은 그냥 곱슬 머리잖아.
어찌그런데,

말이 많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 물음일 것이다.

2008년 1월 25일 15시 49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