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4일 목요일

798. 한림도(桓林道) 금홍수(金洪秀)의 재확인의 인연들 2 ; 견성(見性)을 판정한 용화교주(1)

798. 한림도(桓林道) 금홍수(金洪秀)의 재확인의 인연들 2 ; 견성(見性)을 판정한 용화교주(1). (1). 견성(見性)을 판정한 용화교주 ; (양백 하권 42쪽, 43쪽) (42쪽) 이리하다가 주역과 사주 신통이라는 묘한 연관성 속에서 일 반적으로 세상에서 철학관이라는 분야로 내가 방향을 틀어서 가지나 않는가 할 때였다. 그것은 1984년 어는 늦은 가을이었던가? 아무튼 11월경이 었으니, 그때 당시 나는 종로3가에 있는 청자라는 다방에 오 후가 되면 곧잘 나가곤 하였다. 왜냐하면, 나를 이쪽으로 안 내하여준 사람은 해왜 도덕이란 단체에 적을 둔 사람으로서 나를 전도하기 위햐여 그리 갔다가 별로 큰 반응이 업자 다른 사람들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소개받은 그 사람이 만나자고 한 장소가 바로 청자 다방이었으며, 그곳은 도를 닦는다는 사 람들이 모이는 장소였고, 우리나라 경향각지에서 많은 분들 이 종교를 초월하여 허심 탄회하게 자신이 그 동안 갈고 닦은 바를 설명하여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기를 바라기도 하며, 길 흉사에 서로서로 도우면서 때로는 헤어졋다가도 때로는 모여 서 격식없이 도담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러한 장소에서 이사람이 찾고 있었던 재확인의 인연 중에 서 가장 강격한 인연을 만들어 주신 분이 있었으니, 그 당시 칠순이 다 되었으며 한약업에 조예가 깊으신 분으로서 수도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자주 나온다고 하였다. 만나서 안 지가 몇 달이 지났을까 하였을 때쯤, 그러던 어는날 바로 11월 말 경일까? 어떤 할머니를 한 분 소개 시키겠다고 하였다. 나는 쾌히 승낙하여 고맙게 인사를 하고서 그 집을 찾아 갔다. 고척 동에 있는 산비탈의 작고 아주 낡은 고가의 문간방 옆에 달아 낸 조그만 방에 살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너덜너덜한 덧문을 열고서 머리를 굽혀 들어가니 바로 부엌이었으며, 부엌 바닥 에 두둑을 시멘트로 발라 부뚜막을 만들어 그 위에 연탄 아궁 (43쪽) 이가 있었고, 부뚜막의 일부가 방문을 들어간는 섬돌이 되기 도 하였다. 인기척을 느끼셨는지 방문을 열고서 일행을 반갑 게 맞이하시는데, 얼굴 모습은 갸름하시고 육색은 희고 맑았 으며 눈은 용의 눈으로 神氣가 가득히 넘쳐흐로고 있었다. 손 은 거칠었으나 내 손을 잡았을 때는 20대 젊은이의 펄펄 끓는 체온을 느끼게 했다. 과연 이러한 神氣의 기운이 어디서 날까 생각하며 7자 남짓한 방안의 이모저모를 살피기 시작했다. 천 정은 군데군데 찢어져 겹겹이 신문지로 발랐으며 비가 샛는지 쥐가 오줌을 쌌는지 얼룩얼국 하였고, 벽은 흙째로 갈라져서 금방이라고 앉아 있는 우리들을 덥칠 것같이 남루하게 일그러 진 집이었다. 그러나 방바닥은 아주 뜨거웠다. 뒤에 안 사실이 지만 이 할머니를 일명 거지 할머니라고 하여서 아무도 더럽 다고 상대하지 아니하고 괄시와 멸시와 천대의 눈초리를 받으 시다가 결국 요즈음은 두문불출 하시고서 늘 집에 계시는 모 양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러했듯이 그때 만나뵌 할아버지 말씀과 금속 활자와 강필의 예기를 하고서 지금까지 지나온 과거사를 잠시 소개하였다. 그랬더니 대뜸 천지부모님께 제사를 올리고 서 수도를 하게 되면 모든 것을 확실히 알게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천지부모님깨 제물을 올릴 준비를 하는데 필요한 비용 을 모두 바치고 날짜를 잡아서 제사를 올렸다. 제사는 이러했다. 몇 가지 과일을 장만하고, 백미 한 말과 창호지 한 권, 그리 고 양초와 양초를 감은 무명실 한타래였다. 제사는 시작 되었다. 불을 붙이고, 절은 4배를 하였으며 절하고 난 뒤에 조용히 앉아서 허공으로부터 천지 부모님의 말씀을 받으시어 직접 그 대로 말씀하여 주셨다. 자문 자답의 형식과 비슷하나 꼭 그러 (44쪽에서 계속된다.) 2025년 8월 14일 21시 47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교 합동. 작성자 ; 한림도(금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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