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1일 토요일

251. 구세주; (2) 구원의 문은 "너"가 아닌 "나"에게서 찾아라.


251. 구세주; (2) 구원의 문은 "너"가 아닌 "나"에게서 찾아라.

       지금까지 현생인류가 찾아온 구세주는
       '나"가 아닌 "너"에게서 찾았다.

       왜냐하면, 많은 성인들의 말이 그러했다.
       성인들의 말들은 모두가 비유법으로 되었으며,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성인들의 글을 많이 주석을 달아서 풀어썼지만,
       오히려 건더더기가 더 어려웠다.

       그것은 성인들도 제대로 모르고 쓴 글들을
       종교로 만들어 쓴 글이라고 온전할리 없지.
       성인들을 무시한다고 하겠지만,
      구원의 문을 찾는데 성인의 말이
      전혀 도움이 되지않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것은 "나"가 아닌 "너"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종교의 신도들이 왜치는 소리,
      "예수 믿고 구원"이라고 말한다.
      예수란 사람은, "나"가 아닌 "너"이기 때문에
      절대로 구원의 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금불상에 "석가모니 불"이라고
      수천 수만번을 절을 하며 독송한다.
      그렇지만, 석가모니도 금강경 사구게에서 이르기를,
      "약이색견아(若以色見我)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라고 하였다.
      이말을 다시 해석한다면,

      "만약 나(我)란 자기자신을 찾는데 육신의 형상으로
      찾거나 음성으로 찾거나 한다면,
      사도(邪道)를 하는 사람이 되어,
      여래를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나"를 찾는데,
      자기자신의 나(我)가 아닌
      석가모니 금불상인 너를 앉혀놓고,
      "석가모니불"을 천번만번 음성(音聲)으로 불러봐도
      그건 사도라서 여래를 볼수 없다고 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여래(如來)"란 말은, 여래란 말의 앞에 생략된 말인
      참(眞)과 "같이 온다"라는 말이다.

      원래는 진여래(眞如來)라야 확실하게 이해가 될 것이다.
      석가모니 자신도 참이 아닌 참과 같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일반 불교신도들은 석가모니를 엄청난 차원으로
      신격화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것이다.

      성인도 모르는 참을 어떻게 성인이 가르칠수 있었으며,
      그나마도, 그러한 것이 수천년을 내려왔는데,
      구원의 문이 어떻게 온전하게 전수될 수 있었겠는가?

      세상의 종교문이 이러할진데 어디다가 구원을 한단 말인가?

      그래서 이사람 한림은 감히 말한다.
      수천년의 세월동안, 성인의 형상을 조성하고
      목놓아 불렀지만 구원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너란 성인이 아닌,
      바로 자기자신인 "나"에게서 구원의 문을
     두드려라"라고 말하고자 한다.

      구원의 문은 자신에게있으며, 구세주도 바로 자기 자신이다.

                  2015년   11월   19일   오전  11시  04분.

                           한림도 미륵금성생불 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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