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8일 토요일

291. 무용출세지장(無用出世智將) 1


291. 무용출세지장(無用出世智將) 1


        직역하면 "무(無)를 쓰면서 세상에 나온 지혜로운 장군이란 뜻이다."
        어떻게 해야 무(無)를 쓰면서 나온 것일까?

        무(無)자를 쓰는 말 중에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말이 있다.
        일반적인 해석은 "대도는 문이 없다"라고 한다.
        작은 길도 문이 있는데 왜 큰 길은 문이 없단 말인가?
        그래서 없을 무(無)자는 수도인들의 화두가 되기도 한다.

        본문의 제명에서, 지혜로운 장군이 될려면,
        무(無)를 써야 하는데, 없을 무자를 알아야 쓸 수 있지않을까?

        있다 없다는 삼척동들도 다 아는 말이다.
        그러나 있는 것을 쓰는 것은 쉬워도
        없는 것을 쓴다는 것은 쉽지않다.
        없다는 그 자체를 어떻게 만들어서 가져와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사람 필자는 원래 없는 것에서 시작을 했기때문에 잘~ 알고있다.
        그래서 이 글을 해석해서 쓰게 된 것이다.
        있다 없다의 정의는 이승세계에서는 형상적인 물질을 가지고 논하기에,
        더욱더 무(無)의 존재를 풀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사람 필자는 세상사람들이 전혀 알지못하는
        선경과 저승을 왕래하면서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도(道)를 세상에
        내어놓게 되었으며, 인정을 받기위하여 증거로 채택한 것이
        "격암유록"이었다.
        격암유록의 해설본 이름을 "삼풍(三豊)"이라 한 것이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삼풍상권 307쪽을 보면  "무용출세지장"을 해설하여 이르기를
        "두몸을 뚫지않고 두말지장 세상에와"라고 하였다.
        여기에 무(無)를 사용하는 방법이 나온다.
        이말은 도(道)를 전수하는 표현이 된다.

        길 도(道)자 가운데 눈 목(目)자가 들어있어서
        도(道)는 입으로 전하는 말이 아닌
        눈으로 전하는 말로 풀어야 한다.
        눈에다 전하는 방법은 소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서양종교인들이 "전도하러 왔읍니다"라고 입으로 말하여
        성경책을 펴면서 예수를 믿으라고 한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

        길 도(道)자를 "말씀 도(道)"자로 해석하니
        눈으로 하는 말이 아닌,
        입으로 하는 말로 잘못 해석이 되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세상에 이런일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도를 두 눈의 몸에 어떻게 전한다는
        표현까지 적나나 하게 잘~ 소개하였건만,
        "중입"으로 들어가는 운때가 맞지않아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되었을까 하면
        참으로 가슴이 저린다.

        단군께서 무진년 개천개국하고 72갑자 4320년 만에
        이사람 필자가 왔으니까 그 이전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제대로 된 도(道)를 전수 받아야 할 것이다.

        없는 것을 이 세상에 내어놓으려면,
        도(道)로서 나오는데 세상에 내어놓는 방법은
        절대로 구멍을 뚫듯이 상처를 내어 뚫지않고
        손도장을 찍듯이  (아주 살짝) 지장을 찍는다고 했다.

       이것은 도를 전수하는 방법을 말한 것이다.


                   2017년  3월  18일  22시


                   한림도 미륵금성생불교 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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