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9일 토요일

152. "초창록"에서 밝힌 성인이 나올 행열자(行列字)는?

 

152. "초창록"에서 밝힌 성인이 나올 행열자(行列字)는?


"문왈 여차다수 장래자손중 혹유성인
(問曰 如此多數 將來子孫中 或有聖人)"
물어 가로대 이처럼 많은 숫자의 인물이 나온다면
장차 우리 겨래의 자손들 가운데서 혹시
성인이 나오겠습니까?

"호왈 3인지중 1사2존(乎曰 三人之中 一死二存)"
말슴하시기를 3사람 가운데서 1사람은 죽고
2사람은 살아남아 있다고 하였다.

"문왈 동종중 혹유(問曰 同宗中 或有)"
물어 가로대 같은 종친 가운데서 혹시 있겠는지요

"호왈 4인(乎曰 四人)"
말씀하시기를 4사람이 있다.

"이행열론즉하행(以行列論卽何行)"
행열을 논하여 보아 어느 행열인가 하니,

"호 2만 2진 1환 2순(乎 二萬, 二鎭, 一煥, 二淳)"
말씀하시기를 둘째 만, 둘째 진, 쳣째 환,
둘째 순이다 라고 하였다.
분명한 것은 4사람이 선택되었다고 하는 점이다.
이렇게 본다면 2만,2진,1환,2순은
형제간의 순서라고 본다.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 이렇게 3대로
그자손을 놓고 본다면,
계통이 6촌,4촌,2촌간에 1남인 장남과
2남인 차남의 경우가 있다.
순서가 어찌되었던지 간에 만,진,순은 차남인 2남이요,
환은 장남인 1남으로 본다면 어떨까?

먼저 성인은 3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런다음 왜 3사람의 차자손 자녀를 언급하고
1사람의 장자손 자녀를 언급했을까?
4자손의 행열 가운데서 3자손의 행열자를
가려내라는 것이다.
그래서 3자손이 서로 같은 공통분모가 되는 경우는
둘째인 차자손인 것이다.

고로 성인의 반열에 해당하는
행열은 2만, 2진, 2순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분들은 누구일까?

먼저 순(淳)자 행열에서는
증산 강일순(姜一淳) 선생이 순(淳)자 행열일 것이다.
강일순 선생의 기행이적은 말할것도 없다.
진주 강씨라고 한다. 부친의 함자가 흥주(興周)이며,
족보의 문헌에 기록이 보존된것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1871년 11월 1일 전라도 정읍군 이평면 두지리에서
출생하였다고 한다.
참고 문현: 대순정경에 나타나 있는 기행이적을 본다면
가히 성인의 반열에 있을 분으로 본다.
1909년 일제치하에서 작고 하였다고 한다.

다음 만(萬)자 행열에서는 의령 여씨(宜寧 余氏) 34세손
화엽(華燁)의 자녀 중 만(萬)자 행열에 오빠가 3사람 있었으나
모두 다 작고하고 원월(圓月) 인정상관이 살아 남았다.
인정상관은 1887 정해년 3월 19일,
경남 하동군 서상면(지금의 하동읍) 화심동 437번지에서
탄생하였다.
참고 문현: 박문기 저 본주 상,하권에 있다.
인정상관의 기행이적을 본다면 가히 성인의 반열에
있을 분으로 본다.
인정상관은 해방 후 1955 갑오년 음력 12월 23일
작고 하였다고 한다.
3사람 중 한사람은 죽고 두 사람은 살아남았다고 하는
그 시기는 어느 때를 기점으로 했을까 하니
절반의 불이 올라오는 시기인 8. 15 해방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증산의 "72 화둔"이 완벽하게 다 올라오는
1981년 이후 지금 이 시점에서 보면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은
진(鎭)자 행열에 있는 한 사람 만이 남아있다.

진압할 진(鎭)자 행열로 나온 그 성인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07년 3월 6일 15시 40분

 한림도

151. 천부경(天符經) 주해 (1)



151. 천부경(天符經) 주해 (1)


본 글은 삼풍 상권 343쪽~349쪽의 글이다.

천장
1) 일시무시(一始无始)
직역: 하나의 시작은 없을 무(无)에서 시작 하느니라.
의역: 본래 한 팔은 "말"이여 별의 이름이여,
두 별에 앉을 새도 나 라는 "말"이다.

2) 일석삼극(一析三極)
직역: 하나를 셋으로 쪼게기를 다한다 하여도
의역: 두 팔을 풀어서 일하는 사람 한림이 바로
나란 사람으로 두 말을 손으로 감싸게 되는데,

3) 무진본(无盡本)
직역: 근본은 다하기를 여전하니 변함이 없느니라.
의역: 바로 이사람이 한 일이 되며,

(역해)
(1) 하나가 시작하는 시점은 아무것도 없는
무(无)에서 시작한단다.
하나라고 하는 일(一)은 실지로 두 점을 연결한
선(線)이다.
인간에게서도 이러한 일이 실지로 일어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왜 이런일이 일어나야 할까?
라고 반문을 할 것이다.
그것이 도(道)와 연관되는 말이다.
세상에는 도(道)라고 하지만 자신들도 잘 모르는 것을?

모든 글자의 시작은 우선 빈 공간의 흰 여백이
바탕이 되고 그다음이 점( . )이다.
글자가 이러하듯이 역시 하나의 시작은
물론 점에서 시작이 된다.
검은 흑 점은 아주 작은 미립자에서 부터
흑암에 이르기까지 광대무변하다.
없다는 것 또한 존재는 한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는
없다고 하여 무(無)라고 표현 한다.

존재(存在)는 유존(有存)과 무존(無存)으로 구분하는데

유존은 일반적으로 수도인들이
경험하는 견성(見性)을 말한다.

그러나 무존(無存)은 일반적으로 수도인들이
경험할 수 없는 수견성(水見性)을 말한다.

하나의 시작이 되는 경우를 직접적으로 체험을 하는데도
이러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인간에 대입하여 실지로 일어나게 하는
방법으로 말을 한다면,
파자(破字)로 의역을 하니 "본래 비롯됨이 한 팔로서
시작이 되는데 그것이 "말"이여 라고,
그 "말" 이란 것은 별의 이름이라나.
두 별에 앉게될 새도 나라는 사람이지
뭐 엉뚱한 것이 아니란다.

(2) 하나를 셋으로 쪼갠데나, 왜 그래 라고 하니,
그건 수(數)의 기본을 이야기 한 것이란다.
수의 기본 단위로서 1~9 까지 가는 도중에 123 456 789 의
셋으로 묶어가는 단위가 우리민족의
천부수인 9수의 원리론이다.
중국의 요임검이 5수로서 5행의 수리를 펼쳤으나
이건 아주 불안한 수리이다.
왜 그러할까? 12345 678910 여기에는
1수가 한번 밖에 작용하지 않는다.
678910에서 5수를 빼면 다시 12345의 원형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123 456 에서는456이 다시
123의 원형으로 돌아가는데는 3을 빼면 되고
789는 3을 빼면 456으로 돌아가고 3의 배수인 6을 빼면
다시 123으로 돌아가는 훨씬더 정교한 수리의 공식이 성립된다.
3수로 나아감은 9수에서 1수를 더해야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변화의 원리를 불러온다.
5수로 나아감은 그냥 막연하게 끝이 나버리고 만다.
다시 1수의 변화 원리론을 말할 계제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실지로 두 팔을 풀어서 두 손으로 일을 하게 된다면
손가락이 12345 678910으로 모두 열개의 손가락 10수이다.
이렇게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 천지인(天地人) 가운데서
사람(人)인 것이다.
만일 5행으로 말한다면 목화토금수의 5가지로 설명을 해야한다.
도(道)의 입지를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5행에는 천지인(天地人)이 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역의 괘명도 보면 모두 3의 원리론이다. 5의 원리론으로 본다면
"두 팔을 풀어서 일하는 한림이 바로 나란 사람으로
두 말을 손으로 감싸게 되는데"라고 하는 말은
하나를 천,지,인 셋으로 쪼갤 때 사람에게 해당한느
부분을 설명한 말이다.
물론 사람에게서 하나가 출현하도록 설명한 것은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3) 1이라는 숫자는 천,지,인 3으로 나누었다고 해서
그 근본인 하나가 줄었다던지 늘어났다던지 전혀
그러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하나의 원리를 대입하여도 전혀 하나의 근본이
변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이사람의 일이되며 라고 했다.
사람에게 대입된 "하나"가 전혀 문제가 없음을 확인 시켜준 대목이 된다.
여기서 무(无)는 무(無)의 고(古)자 이다.
파자의 원리로 푼다면 无자와 無자는 서로 다르게 해석이 된다.

2007년 3월 4일 16시 50분

 한림도


150. 진경이란 뜻은 "참 말씀"이며 천부경이라 한다.



150. 진경이란 뜻은 "참 말씀"이며 천부경이라 한다.


진경인 천부경이 "참 말씀"이다.
말씀은 말의 존칭어 이다.
그냥 쉬운말로 하자면, 천부경을 진경이라고 한것은
참을 말한 것이다.
언제는 참이 없었느냐 라고 말을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요즘 처럼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에는
참말이라는 것이 아마도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참말을 하라고 하기위하여
진경인 천부경이 출현한 것이리라.
천부경은 일반인들이 알아보기 쉬운 글이 아니다.
그래서 천부경을 만나기 전에
격암유록이 참을 전하고저 한 것이리라.
참을 만나고 나서 참 이치인
삼풍과 양백을 확연히 알고 나면
당연히 천부경을 이해하게 된다.
어느 누구의 천부경 해석이
참을 제대로 전하고자 했을까?
입으로만 말로만 참이라 하여
그 참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을까?
미안한 말이지만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참은 그냥 막연한 참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은 사람에게 들어오면 참사람 "진인(眞人)이 된다.
참사람 진인이 되어야 참말과 거짓말을
확연하게 구분 할 수 있다.
그래서 천부경을 무어라고 해석들을 하고 있으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어떻게 하면 인간들에게 참을 전달하여 참인간
진인이 되게 할까 하는 것인데
천부경을 번역한 책들이 하나 같이
참의 뜻을 전하고자 하였는가?
잘못 해석한 책들은 어떻게 할까?
심판이란 말이 괜히 있는말이 아니군이라 할 것이다.
천부경이란 분명히 초창록이나
격암유록에서 진경이라 했고
진경이란 뜻은 참말 참말씀 즉 참을 말씀하신 글이다.
참을 말씀하신 글이면 해석하더라도
참에 대한 말로 해석이 되어있어야 한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들러서 천부경 해설서 들을
한번 읽어 보시면 알게 될 것입니다.
심판은 독자 여러분들의 몫입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천부경을 해석한 글을 소개 할까한다.

2007년 3월 2일 18시

 한림도

149. 진경이 어디 있는지를 밝힌 것은 격암유록이라고 "초창록"은 전한다.

 

149. 진경이 어디 있는지를 밝힌 것은 격암유록이라고 "초창록"은 전한다.


일부에서 격암유록의 진위를 놓고 왈가왈부 하고있다.
격암유록의 진본을 복사한 복사본이라면 현제
국림중앙 도서관에 비치된 것이 맞다.
복사한 과정이 어떻던 간에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450여년 전에 있었던 기록들을 지금
진위 논란을 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각 종교계에서 저작된 글들이 과연 얼마나 참된 글일까?
그러나 격암유록에 관한 내용 만큼은 진실한 것이라고 본다.
그렇게 보는 이유가 있다.
1622년 출생한 반계 유원형 선생의 말씀을
그의 아들 초창이 받아 써서
초창록으로 전하는 글의 내용을 보면
격암유록이 진서임이 확인된다.
반계의 아들 초창이 반계에게 묻기를,
진경(眞經)은 어디에 있다고 밝혀져 있습니까? 하니
옹(翁-반계)께서 가로되
격암유록(格庵有錄)이니라. 라고 하였다.
그렇다.

삼풍 하권 송가전 172쪽을 보면
"천부경(天符經)은 진경야(眞經也)며" 라고 하였다.

세상에 진경이 어디에 있는지를 격암유록은 밝혔다.
이러한 책을 진위 논란을 하다니 걱정이 된다.
물론 종교하는 이들이 적당히 때에 따라서
자기네들 편의에 맞게
수정할 수 도 있다 그러나 국립중앙도서관 본 만은
진본이 맞다고 본다.
국랍중앙도서관 본이 진본이라는 것은 필사본을 했지만
복사라고 했는 점이다.
글자의 전후좌우의 문맥을 흐트러 놓고 이것을
특이한 기호로서 찾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러한 "비밀스런 기호"가 있는 격암유록이 진서이다 라고 본다.

2007년 2월 27일 22시 13분

 한림도

148. 6자회담의 성공과 "원자화변 위식물"이란?



148. 6자회담의 성공과 "원자화변 위식물"이란?


삼풍 하권 348쪽을 보면 최 하단부에

"원자화변 위식물(原子化變 爲食物)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원자(原子)가 변하여 사람들이 먹는
음식물로 된다는 말이다.
북한의 원자 핵무기는 6자회담이 성사되면
반드시 폐기되고
그 대가로 우선 굶주리는 북한 백성들에게
곡물이 지원되고
경제 재건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실상계의 원자화변 위식물이 되는 것이다.
물론 원자라는 광의의 의미는 도(道)적 차원으로
더 많은 뜻이 있다.
1차 관문을 성공 시키고자 우방국들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점차적으로 한 단계씩 지구촌은 평화의
단계로 진행이 된다.
물론 이제 6자회담은 평화 단계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렇게 되지않으면 안되는 그것은 오로지
하늘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이날이 오기를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맡은 분야에서
소임을 다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급히 진행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 될것이다.
순리적으로 모든 것은 자연이 해결을 하도록
그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대 자연의 순환 원리는 2007년까지
그저 대3합만 하기를 바란다.
한반도가 이제 통일이 다 된양 널뛰는
졸속이 없었으면 한다.
우리민족의 숙원인 통일은, 이렇게 하나씩 그 분댠의
매듭을 실지로 풀고 있는 것이다.

2007년 2월 26일 11시 40분

 한림도

2016년 4월 8일 금요일

147. 6자회담은 반드시 성공 할 것인가?



147. 6자회담은 반드시 성공 할 것인가?


천부경으로 보면 대삼합육(大三合六)이란 말이 있다.
어떤일이던 성사가 될려면 3합이 들어야 한다는
말이있고 실지 그러하다.
3합이 들면 성사가 된다는데 대3합이 들면
반드시 성사가 된다는 말이다.
지금 이 시기는 진인의 임기년도 상에서 보면
대3합6에 해당하는 년도에 들어있다.
9궁도를 다시 한번더 확인해 보자.
1 2 3
4 5 6
7 8 9 로 되어있다. 이 가운데서 대3합6은 "6"의 자리에 있다.
6의 자리 년도는 다시 9년간 9궁도수로 진행된다.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년 이렇게 9년간의 9궁도수의
수리가 진행된다.
9의 배수로 나가기 때문에 진인의 현재 나이를
알고자 한다면,
9 x 6 은 54가 되어 1999년 진인의 나이는 54세이고
2007년이면 진인의 나이는 62세가 된다.
이 근거는 삼풍 중,하권 419쪽의 하단 "54궁"으로,
"6도3약" 중에 "3도2약"에 해당한다.
대 3합6의 논리는 1999년부터 시작되어 2007년에
모두 끝이 나게 되어있다.
이 지구상에서 천부의 수리를 도저히 거스려서
진행하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물론 예외없는 법이 없듯이 예외없는 자연현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예외를 앞세우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만들어진 각본에 인류는 충실해야 할 것이다.
우리민족은 인류무대에서 주연배우의 역할을 맡았다.
우리민족은 세계인류가족을 이끌어가야 할 책임을 지고 태어났다.
그것이 태고이래로 짊어져야 할 굴레 즉 "미륵"이다.
전세계의 인류를 이제는 평화의 낙원 "마고성"으로 이끌어 가야한다.
그래서 대3합6의 6자회담을 하는 것이다.
천지인의 대자연 순환의 원칙은 정해진 노선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어찌 이 천리를 거역할 것인가?

2007년 2월 26일 10시 58분

한림도

146. "일수이수 앵회지 계룡창업 시차지"란?



146. "일수이수 앵회지 계룡창업 시차지"란?


본 글은 삼풍 상권 세론시 66,67의 글이다.

일수이수 앵회지(一水二水 鶯回地)라,
한 물과 두 물이 꾀꼴이가 돌아보듯 하는
땅이라 한다.
꾀꼴이가 뒤를 돌아다 보듯이 두 물이 빙빙돌아,
서로 뒤를 돌아다 보아
서로 바라보는 꼴이되는 그러한 땅이라,
뭐 있을법 하기도 한 땅인데 당체 감이 잡히지 않아
어디 그런 땅이 있을까?
그런 땅은 이 세상에 없어 맞아,
어떻게 하여 두 땅이 꾀꼴이가 돌아다 보듯이 그런,
그것도 물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되는 물인데
물이 물로서 끝이 나는 것도 아니고
땅까지 같이 겸비했잖아,
그러니 그런 땅이 서로 뒤돌아 보듯이
서로 마주처다 보고 있는 꼬라지 하고는
참말로 힘든 표현의 말이지요,
물이 먼저 땅이 뒤에 생각들 해 보기요,
그래 그렇다면 그 땅위로는 물이 흐른다는
것인가 아마 그렇게 되겠구먼,
그래 그런 땅이 있다치자 그런데 그 땅이
움직거리지 않는가 이말이야,
꾀꼴이가 뒤돌아 보듯이 서로 뒤를 돌아다 보는
모습하고는 정말로 가관이야~
아무턴 물이 덮혀져 흐르는 두 땅이 서로
마주 처다보고 있다 이거군,
그런데 이거 가지고 계룡이 여기에 창업한다 고라,
하필이면 왜 이런 땅에 계룡이 창업한다고
호들갑인감,
여기 아니면 없남,
그렇다 여기 아니면 없었기에 이렇게
어려운 여건에다 선택 하게된 것이다.
우리의 계룡은 이렇게 시작이 된 것이다.
닭과 용이 서로 하나 이기에 서로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여
역사를 만든다. 이것이 계룡의 역사이다.
그러다 보니 군부에서 계룡대가 창설 되기도
하였구나!
세상이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2007년 2월 21일 21시 30분

 한림도

145. 설날(立日)이란 무슨 뜻이 있을까?


 

145. 설날(立日)이란 무슨 뜻이 있을까?


설날을 입일(立日)이라고 했는데
물론 이 말은 도(道)의 입지에서 말한 것이다
어떻게 해서 해가 서는 날이라고 설날(立日)이라 하는지?
한 해 일년의 시작은 절기 상으로 볼때는
봄을 세운다는 입춘(立春)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한 해 일년은 4계절로 되어있다.
음력으로,
1,2,3,의 3달이 봄(春)으로 인묘진(寅卯辰)월이 되며,
4,5,6,의 3달이 여름(夏)으로 사오미(巳午未)월이 되며,
7,8,9의 3달이 가을(秋)로 신유술(申酉戌)월이 되며,
10,11,12의 3달이 겨울(冬)로 해자축(亥子丑)월이 된다.
이러한 4계절의 시작은 한 해의 절기가 처음 시작하는
봄이 선다는 임춘(立春)일부터 시작이 된다.
봄이란 말은 상당히 중요한 말이다.
왜냐하면, "태양-년"이란 말은
해가 춘분점을 지나 다시 춘분점을 돌아오는 동안의 기간인
365.2422일에 해당 된다고 한다.
그래서 봄이 선다고 하는 입춘(立春),
해(日)가 선다고 하는 설날(立日)로 하여
확실한 봄을 맞이하고자 하는 것이다.
확실한 그 봄이 춘분(春分)이며,
춘분에서부터 한 해의 1 태양-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태양(太陽)이란 해(日)는 태양계의 중심이 됨으로
지구에 살아가는 지구 인류에게도 당연히 중요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설날이란 한 해 일년이란 태양이 지구를 비추는
기간을 말하기도 하겠지만
오늘날은 후천(後天) 인도문(人道門)에 들어와 있기에
하늘에 떠 있는 태양에 비유한
인체의 태양을 세울(立) 날(日)이라 하여서
설날(立日)이라 하는 것이다.

2007년 2월 18일 설날(立日) 19시 36분

 한림도

144. 오늘은 까치 설날이다.



144. 오늘은 까치 설날이다.


우리 민족의 설날은 대체 무슨 뜻이 있을까?
설날 전날을 작은 설이라고도 하고
동요와 같이 까치설날이 설날 하루 전날이니까
우리민족의 고유한 설날을 어떤 종교의 상식으로
해석이 가능 할까?
작은 설날인 까치 설날 밤에 잠을 자면
눈섶이 하얗게 된다고 하여
오는 잠을 참다가 잠들기도 하였다.
작은 설날은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까치 설날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것도 하루가 지난 어저께가 까치 설날이라 하니
더더욱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러한 이야기가 어떻게 이런 비약을....?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동요가 되어 수많은 세월동안
우리민족에게 불리어졌기에 규명도 할만하지않을까?
까치는 우리 민족의 새이다.
까치는 전달하는 심부름 꾼의 역할을 한다.
손님이 온다고 분명 알려준다.
그렇다면 까치설날의 까치는 우리민족의 설날에
무엇을 전달 하고자 하였을까?
까치의 깃털 색은 흑백으로 되어있다.
과연 흑백으로 되어있는 것이 사람들과 무슨 연관이라도?
사람으로 따진다면 백인종과 흑인종이 있다.
그러나 온 인류에게 공통이 되는 점이라야 한다면 그것은?
사람의 신체 가운데서 흑백이 있다라고나,
왜 이런 말을 해야 하냐 라고 한다면
까치에 접근 하기위한 수단이라고나 할까.
사람의 설날도 이해가 잘안되는데
까치 설날까지라 어려울 거여 암만. 암만.
까치 아니면 설날이 시작되기 어렵다고라
지까지께 뭔데 하겠지만 그게 아니여유~
까치 아니면 날(日)이 설(立)수 없으니께니
아마도 그런가봐유~~
증산 강일순 선생이 해(日)를 세웠다나 어쨌다나
대순전경에 그러한 구절이 있는걸로.....
그렇다고 까치 주제에 날을 세운다고 말같은 말을 해야지,
그런데 그게 사실이면 어쩔 건디,
설날(立日)은 분명 해를 세우는 것이 맞다.
우선은 사람에서부터 먼저 시작이 된다.
이것이 도(道)의 각본이다.
이것을 전하기 위하여 까치는 우리민족의 새가 되었다.
원래는 봉황(鳳凰)새 였다.
봉황은 군주주의 시대에 임금황(皇)자의 황제로 통했다.
민주주의 시대는 백성들이 위주이니 까치도 맞잖아~~?
어쨌던지 한림 도(道)와는 이런 사연이 있다.
삼풍 상,중,하 에는 백까치 그림이 있다.

2007년 2월 17일 까치설날 18시 38분

한림도

143. "귀여웁다 우리아기 수명복록 기도하자"란?


 

143. "귀여웁다 우리아기 수명복록 기도하자"란?


본 글은 삼풍 중권 108,109쪽의 글이다.

귀여웁다 우리아기(貴여웁다 우리아기)라
어떻게 했길래 귀여울까?
어느 종교 지도자가 잘 모르고서
손가락으로 후벼파서 뚫었다나 어쨌다나?
그렇게 한 것이 어찌하여 귀엽겠느냐
그렇게 하면 사람을 살상하게 하는 것인데,
"말(口)로 뚫어(뚫을 곤) 눈(目에 한 팔(八)"
이 말은 귀할 귀자를 파자한 것이다.
이렇게 해야 귀여웁다는 것이다.
이미지 그림 좀 보세요!
바로 이것이 도(道)를 전수하는 방법을 설명한 말이다
이승에서 도를 전수할 때는
선경의 일신(一神) 하느님과
저승 명부계의 삼신(三神)께서 함께 하신다.
선경세계와 명부세계의 명을 받아서 행하는 일이다.
이 세상에서는 오직 한 사람만이 이 일을 하고 있다.
우리 아기 우리 동자아기씨
우리 아기 우리 동자아기씨를
오래동안 두드리도록 하기위하여
"두드리는 한 사람의 목숨복록을 기도하자"라고 하였다.
여기서 "두드리는 한 사람은" 목숨 명(命)자를 파자한 것이다.
바다가의 모래와도 같이 많고 많은 사람들을

어느세월에 그 많은 사람들의 동자아기씨를
두드릴 수 있을까?
아이구 하느님~ 아이구 부처님~
어느세월에 우리 귀여운 동자아기씨들을 모두 다 두드릴 것인지?
휴~~~
사부대중 여러분네들 조금은 이해가 가시는지요?

2007년 2월 9일 19시 38분

 한림도

142. "구중유의 농궁가를 남여노소 심각하소"란?


142. "구중유의 농궁가를 남여노소 심각하소"란?


본 글은 삼풍 중권 108,109쪽의 글이다.

"구중유의 농궁가를(句中有意 弄弓歌)를 이라
글귀 구(句)자 가운데 들어있는 말 구(口)자에 뜻이 있다고 했다.
흔히들 입 구(口)자로 해석한다.
도(道)를 닦는데는 말이 필요없기 때문에 입은 아니다.
여기서 말이란 뜻은 입으로 말하는 말이란 뜻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눈으로 말해요 랄까? 아무턴 그러한 말을 뜻한다.
그러한 말(口)을 감싼다는 뜻으로 쌀 포자가 말 구자를 감싸고 있지 않는가?
농궁가의 노랫말을 해석할 수 있도록 이렇게 힌트를 주었다.
그러나 이 뜻을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석이 불가하다는 말을 감히 한다.
말을 감싸서 희롱하듯이 어루만지면서 활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 이렇게 하는 것이 농궁가 이다.
둥근 구슬을 희롱하듯이 아주 살짝살짝 어루만져야 하는 것인데
어느 서양종교의 지도자인가, 너무 눌러서 구슬을 터뜨렸다나 어쨌다나
세상에 별일도 다 많아!
성역의 장소에는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랬는데
죄많은 중생들이 함부러 범접하니 이 일을 어쩐담?

남녀노소 심각하소(男女老少 心覺하소)라
농궁가를 남녀노소 할것없이 모두다 불러야 한다
이러한 농궁가에서 마음 심(心)을 깨달아 보라카이!
마음이라 눈에 보이질 않잖아.
그런데 농궁가에서는 구슬을 만진다고 했으니까
이건 분명 형상이 있는 것이다.
마음(心)이란 원래 형상이 없는 것이다.
형상이 있는 마음도 있다나 어쨌다나,
마음이 모양이 잇어야 그때부터 다스릴 수 가있다.
무상체는 다스리기가 엄청나게 어려워라
그런의미에서 마음은 다스리기 어렵다고 했던가?
마음을 다스릴려면, 마음은 형상체로 일단은 나타나야 한다.
농궁가로서 남녀노소 모두 마음(心)을 깨달으라고 하였다.
이게 도무지 가능하기나 한 말일까?

2007년 2월 9일 18시 41분

 한림도


141. "허다중생 만은사람 농구가을 불러보소"란?


141. "허다중생 만은사람 농구가을 불러보소"란?


삼풍 중권 108,109쪽의 글이다.

허다중생 만은사람(許多衆生 만은四覽)이라
그냥 허다히 많은 중생들이란 표현은 다 들 아는 말이고
뭇 중생들 가운데서도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파자를 하면,
"사람의 말(口) 가운데 점을 열면 두 새를 보는 말"이 되고
두 새를 보는 말이 되지않으면 감싸두를 일이 없기때문에
두 손으로 구슬을 희롱하듯이 만질일이 없다는 것이다.
전장에서 농궁가를 해석할려면 신인이라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격암유록 원문 자체가 신인으로부터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구슬을 희롱하듯 만지면서 활 노래를 불러야 하나
활과 구슬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때문이 아닐까?

2007년 2월 9일 16시 57분

한림도

140. "농궁가(弄弓歌)"란 어떤 뜻일까? 신인(神人)만이 해석이 가능?

 

140. "농궁가(弄弓歌)"란 어떤 뜻일까? 신인(神人)만이 해석이 가능?


        본 글은 삼풍 중권 107~131쪽의 글이다.

        농궁가(弄弓歌)란 활(弓)을 희롱한 노래가 맞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활(弓)을 희롱한다니?
        보통으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어느정도 이해를 하지

        활이란 것이 실지로 궁수들이 쏘는 활,
        요즘 주몽의 다물 활이 인기가 절정인건 아는데
        활을 어찌해야 희롱을 하는 것인지

        아무턴 알다가도 모를 말만하니까 조금 이해가 가는듯
        하더니
        도로 제자리로 돌아간 느낌이 들지는 않았을까?

       분명히 희롱을 한것은 틀림이 없느데
       어찌해야 희롱을 하는지 "농궁가"에게 물어나 보자.

       농자를 파자하면 임금 왕(王)자와 스믈 입(卄)자로 되어있다.
       임금 왕자는 구슬 옥(玉)으로, 스믈 입자는 손 수(手)자 두개로 푼다.
       왜냐하면,
       한자전에 농(弄)자의 회의문자를 이렇게 표기하고 있다.
       "두 손으로 구슬을 어루만짐을 뜻한다"라고 되어있다.
     
       두 손으로 구슬을 만지작 거리면 그게 활을 희롱하는 걸까?

       그렇다. 활의 입장에서 본다면
       활을 희롱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행동이 된다랄까?
       그래서 "삼풍"에서는
       "두 손으로 만질 구슬 활노래나 불러보소"라고 하였군.
       도(道)의 입지에서도 전도(傳道)하는 기본 상황의 설명이다.

       어떠한 도서(道書)가 세상에 이런 글을 남길 수 있담.
       격암유록은 예언서이기 이전에 도서(道書)이기 때문에
       해석을 잘못하면 도(道)를 찾는 대중들을 삼천포로 빠지게 하니

       잘못 해석한 서적들을 어찌할까?
       또한 격암유록을 오용하여 혹세무민하는 사람들 또한
       어찌 할까 정말 안타깝다.

       예언이야 연도가 이렇거니 저렇거니 한다하여
       다 그러한 이유가 성립된다고 하더라도

       그본적으로 사부대중들에게 전수해야 할 입장의 도(道)를
       설명해야 하는데 ~

       신인으로부터 전수 받은 글은 신인 만이 다시 해석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2007년   2월   6일  18시  28분


                                        한림도.

      
      
  

2016년 4월 7일 목요일

139. "무운우진 감로비(無雲雨眞 甘露飛)~"란?



139. "무운우진 감로비(無雲雨眞 甘露飛)~"란?


본 글은 삼풍 상권 28, 29쪽의 글이다.

무운우진 감로비(無雲雨眞 甘露飛)라
직역 한다면, 구릅과 비가 없는 진짜 달콤한 안개가 날아.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나 되어야지,
그래서 파자로 의역을 해 보면,
구름 운(雲)자를 파자하면 비 우(雨), 말 운(云)이 된다.
진짜로 하늘에서 오는 두 비란 말은 아니여.
비가 떨어지듯 하는 곳이 두 곳이 있다는 것이여,
그런데 이제는 또 더 헷갈리는 감로비(甘露飛)여.
감로비(甘露飛)를 도(道)의 입지에서 파자도 하고
소리글로도 만들고 하는 과정을 거처보자
그러면 이슬 로자에서 비우자의 비와, 날 비자의 비를 합하면
두 비가 되고, 이슬로자에서 길로자가 있으니 합하면 두 빗길이 된다.
그 다음 달 감(甘)자를 파자로 풀면 스물입자와 한 일자로 푼다.
이 글자는 '숨을 하나'로 푼다.
다시 모두 합하면, "두 빗길에 숨을 하나"이다.
"진짜아닌 두 빗말은 두 빗길에 숨을 하나"이다.
고 시를 아무나 번역 하나 물론 이사람도
이사람의 뜻으로 된것이 아니다.
감로(甘露)에 대해서 좀 상세하게 알아보자.
많은 사람들이 감로에 현혹이 되어서 실지로
그러한 수련을 했을 것이다.
선천 법으로 수련하면 분명하게 입 천정에서
침이 흘러 나온다 이것을 옥액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참을 만드는 단계하고는 전혀 거리가 멀다.
그러면 이슬 성신이라고도 하는 이슬과 같이 내리는 것은
그러면 이슬 성신이라고도 하는 이슬과 같이
내리는 것은 어떤 것이냐 이거지,
이이구나 다 까발리네 그려!
수련 도중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어느 특정인에게만 있는 것으로 알고서
많은 사람들이 현혹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누구나 수련을 하면 모두 그러한 현상이 다 일어난다.
양백 하권 27쪽~38쪽까지 "한림도 수행 경험담" 편을
참조하면 시원하게 의문이 풀릴것이다.
'이슬성신'이라 어느 누구 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람은 만인이 평등하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않되는 법은 없다.
단지 쌓은 업장이 두터운 사람은 성불의 기간이 늦어질 뿐이다.
그러나 실지로 이러한 경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빗길에 숨은 하나"를 찾아내어야지 가능 하게된다.
말이 너무 많아졌다. 쓸말만 한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많은 말을 했다.
이 뜻을 해아리는 사부대중들은 지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분들을 위하여 좀 꾹참고 읽기 바란다.

천향득수 전전리(天香得數 田田理)라
"하늘향기 얻은 수는 두 말을 풀을 구슬마을"이라고
해석이 우째 더 어렵냐 라고 할 것이다.
옳은 말이다.
번역을 하는데도 주역의 역수에 맞게 해야하고
원래의 글이 가사체로 되었기 때문에
해석 역시 노래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늘의 향기를 진짜로 맡아 보고서 하늘의 향기를 논하느냐 하면,
진짜로 하늘의 향기를 맡아 보았다. 이다. 그래 하늘 향기가 뭐 어떻더냐?
그걸 어찌 말로 표현이 안된다. 라고나,
수련 중에 하늘의 향기를 맡아보고 하늘의 음악을 들어보고
그래 봤자 뭐 사람이지 그래 별거 아니야
그런데 여기 이런 구절이 있으니까
서울 안가보고 서울 이야기 하는 것보다야
서울 가보고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실감이 나잖아 그렇지!
그와 같이 이사람이 이런 글을 이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수 많은 경험들을 하게 하였다.
그래 그러한 하늘의 향기가 있었기에 수를 얻게 되었구나
사실이다. 그러한 과정이 없었다면
절대 이러한 법회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인 주(主)자의 주인님이 되어야 이 뜻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너무 길어 다음에 또 하기로 하고,
그렇게 얻은 수가 글씨 둘이라는 숫자여 둘 즉 두개 말이여,
아니 별것이 아닌데 이걸 야기 할려고
이리도 수선을 떤담 하면 할말이 없고,
다음에 나오는 말이 전전(田田)이여, 밭이 하나라면
앞에서 말한 두개와 연결이 안되지
그런데 그게 두 개를 말하고자 밭도 두 개여,
밭이 하나라면 모를까 두 개는 정말 헷깔려,
전전리를 파자하면, 두 말(口口) 풀(艸초두)을
구슬(玉) 마을(里)로 풀었다.
세상 사람들이 도(道)를 모르기 때문에 도(道)를 설명한
이 글을 해석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 한것이다.
도를 알기 때문에 이해를 하고 받아쓴 글인데,
이사람 필자 본인도 어려운 글인데,
신인(神人)의 글을 해석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 한 것이다.
사부대중 여러분들 이해가 좀 되었으면 한다.

2007년 2월 3일 18시 28분
한림도

138. "운무장천 혼구중"~"백일승천 비비유"란? (2)




138. "운무장천 혼구중"~"백일승천 비비유"란? (2)


본 글은 삼풍 상권 28~29쪽의 글이다.

앞장에서 보면, 전무후무하게 처음으로 즐거운 도(道)가
1988 무진년 입춘 양력 2월 4일에 있었으니
이 세상에 어느누가 이 일을 알았을 것인가?
이 도(道)가 출현한 1988 무진년 입춘 양력 2월 4일은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로서
그 날을 진정으로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 이날을 알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이 일은 선경 세계와 저승 명부 세계가 주선하는
이 세상의 이승 판도가 아닌,
판 밖 선경이나 저승 명부의 일이기 때문이다.
판 밖의 일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도(道)는 이승의 속세에서 전하는 도가 아닌
이승의 판 밖인 선경과 명부의 판에서
전수받아 온 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뭐가 달라도 달라야지 말이될것이 아닐까 하니

천근월굴 한왕래(天根月窟 寒往來)라
"하늘뿌리 달밭으로 떨면서 왕래하니"이다.
이사람의 뿌리는 하늘 즉 얼굴에 있다.
그 하늘의 뿌리가 월굴을 추워서 벌벌 떨면서 지나간다고 하였다.
판 밖에서 온 도(道)는 이렇게 확실히 구분이 된다고 하였다.
달이 뜬 곳의 굴이라. 이곳을 찾으려면
월전(月田)을 알아야 한다.
월전이 형성되는 원리는 견성 성불이요,
견성성불은 두 달의 합기로 이루어 지기때문이다.
그러나 수도의 입지에서 본다면
두 달을 일월로 보아야 이게 맞아떨어진다.
해석은 이렇게 하지만 아마 알아듣기가 무척 난해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지를 가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게 한 술에 배 부를 수 없으니 차차 가보면 될것이다.
그래 그 달밭이 형성이 되면 반드시
달이 떠 있는 월전의 굴로 추워서 벌벌 떨듯이 왕래하게 된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이사람 필자는 충청도 옥쳔 월전리에서
수년간 농사일을 하면서 수련 생활을 한 일이있다.
계보가 있는 어느 수도인의 도움으로
그러나 그건 이사람 필자가 가는 길을 더욱더 확신을 시켜주기위한
자연의 배려이다라고 생각할 뿐이다.

삼십육궁 도춘(三十六宮 都春)이라
선경의 도(道)를 전수 받으니
그 사람의 나이가 36세 때의 일이다.
삼풍 중하권 공히 418쪽 부록의
하단 우측의 팔괘도를 보면 알게 된다.
6도3약이라 하여 싸움하는 병서만 있다고 생각 하는데
선경의 도를 전수받아 지상에 선경의 봄을 도읍시키는
이런 일을 여기에 숨겼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인데 육도삼약을 자신들이 임의로 변경시켜 오용할 경우에
이 세상에 어떠한 상황이 일어날지 감히 염려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기점으로 전 36년은 절반의 불이 들어와서
선경의 봄을 전수 받아 지상에 도읍시킬 봉황 미륵을 잉태 시켰다면
해방 후 36년 만인 1981년은 봉황미륵의 나이가 36세가 되어 한반도에
72화둔의 불이 드러나는 시기이다.
증산 강일순 선생이 불을 묻는 화둔공사를 하고
1909년에 타계하였다.
그 후 72년 만인 1981년에 묻었던 불이 다시 일어나니
이것이 1981년의 36궁에 해당되는 것이다.
하늘에서 진행하는 일은 절대 잘못됨이 없이 흘러 간다.
우리 인류는 그저 무대에서 연기하는 연기자요
관람하는 관람객이라 할까?
이렇게 하늘의 법칙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진행되고 있다.
"36궁 도춘"이 있어야지 "기두무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1981년에 선경으로 들어가서 도(道)를 전수 받았기에
7년 후인 1988 무진년 입춘 양력 2월 4일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2007년 2월 3일 16시 57분

 한림도

137. "운무장천 혼구중"~"백일승천 비비유"란? (1)

 

137. "운무장천 혼구중"~"백일승천 비비유"란? (1)


본 글은 삼풍 상권 28~29쪽의 글이다.

운무장천 혼구중(雲霧漲天 昏衢中)이라
구름과 안개를 불러드린 하늘은 어두운
네거리 가운데서 뭘 어떻게 했다고?
앞장에서는 돈을 쫓아다니느라 눈알이 시뻘걷게 되었다고 했던가
그런데 그렇게 해석해서는 곤란혀,
"구름안개 덮힌하늘 어둔두눈 다닐새중"이라고 책에는 써졌거든,
구름과 안개가 덮힌 하늘을 보면 어둡잖아,
사람의 하늘이 어두우면 두 눈도 어두워지나,
어쨌던 어두운 두 눈에 다닐 새가 가운데래,

욕사사주 영부득(欲死死走 永不得)이라
어두운 두 눈에 새가 가운데로 다니는 대도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어쨌다고
죽기를 바라고 죽도록 뛰었다면
한마디로 죽자사자 뛴 것이네 뭐
그런데 그렇게 얻고자 노력을 해도
영원히 얻지 못한다나, 그렇지!
왜냐고? 라고 물을 것이다.

전무후무 초락도(前無後無 初樂道)이라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처음으로
나온 도(道)라 고라,
정말로 그려, 아~ 정말로 그렇당 깨
사람 말 어찌그리 고지듣지 않으려고 한담?
시상에 지가 아무렴 처음이라고라.
시상에 지가 아무렴 처음이라고라.
아무리 이빨을 갈아도 처음이구만 그려 우짤겨,
처음이면 뭐 상이나 줄려나?
누구는 뭘 퍼주고 뭘 받았다나 우쨌다나
들리는 소문이 그리 요상히여이!
우쨌던지 간에 처음인것 마는 분명하여이,
누구껄 컨닝 했다고 그러들 말랑깽.
또 뭣이당가 줄기가 가짜라나 어매 무선거이,
이러면 글 쓸 맛이 딱이여,

불가사이 불망춘(不可思義 不忘春)이라
어쨌던지 그렇다면 그건 불가사의 한 일이 일어난 것이지
그래서 잊지못할 봄이라!
그런 봄이 언재 있었던가?
그러한 도(道)가 출현한 봄이 언재 였던가

삼풍 상권 44~45쪽에

함양삼월 가안재(咸陽三月 家安在)이라 했다
이 말은 뒤에 다시 해석 하겠지만
파자하면 함(咸)자는 무(戊) 일(一) 구(口),
삼(三)은 달로 3번째인 진(辰)에 해당된다.
합하면 무진(戊辰)년에 한 말이 일월인 달에 들어나기 때문에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지 말고
집에 편안히 있으면 된다고 한 말이다.
그 봄은 1988 무진년 봄을 말한다.
증산이 개벽경에서 이르기를
"무진기사(戊辰己巳)에 진인(眞人)이
출어해도중지설(出於海島中之說)하니
가신호(可信乎)잇가"라고 물었더니
"왈포아덕자 기두무진(曰布我德者 起頭戊辰)하노라"
라고 하였다.
"1988,1989년인 무진 기사년에 진인(眞人)이
한반도 중앙 경기도나 서울에서( 또는 십승지의 양백 섬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는데 옳게 믿을 수 있는 말입니까
하고 제자들이 물으니까,
나 자신의 덕을 펴는 자가 무진년 기두인
입춘일 양력 2월 4일에 일어나 나온다고 하였다."
절대로 1988 무진년 입춘 양력 2월 4일을 잊지마라고 한 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가사의 물망춘이기 때문이 아닐까?
사부대중 여러분들 이제는 의심일랑 않해도 될끼요이

2007년 2월 1일 18시 42분

 한림도

136. "세인부지 조소시"~"십승양백 시구인"이란?




136. "세인부지 조소시"~"십승양백 시구인"이란?


본 글은 삼풍 상권 42~43쪽까지의 글이다.

세인부지 조소시(世人不知 嘲笑時)란,
세상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체하고
가소롭다고 조롱하면서 비웃을 때에,
이 사람의 블로그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무어라고 자신의 말을 늘어놓기도 한다.
다 좋다 그러나 진정으로 알면서
그러한 말을 한다면 오죽이나 좋겠나
분명하게 이사람이 말을 했었다.
이 땅에 도(道)의 맥이 끊어진지 오래 되었다고,
그런데도 그러한 말들이 필요할까?
그러다가는 자신이 쓴 글을 지우는 사람들도 혹 있다.
그러한 경우는 이사람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된 것이 아닐까?

전무천심 하처생(專無天心 何處生)이라
천심이 전무하여 하나도 없으니 어느곳으로 가야 살아날 곳일지?
그렇다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그러한 것으로는 어림없다.
참을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서 찾아서 살려내느냐 하는 것인데
엉뚱한 말들을 계속하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다.
이사람 필자의 용화회상 법회에 와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참(眞)이다.
이사람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참이 우리 국민들과
지구촌 인류가족들에게서 살아나기를 바랄뿐이다.

우명십승 심길지(牛鳴十勝 尋吉地)라
엄마라고 울든 십승 길지라하고 찾을 것이다.
소 울음 소리가 음매하고 들리니까소울음
소리에 비유한 말은 엄마가 아닐까?
그래서 찾아야 할 십승지는 엄마 하고 울던 곳이,
바로 그곳이?

선각지인 예언세(先覺之人 預言世)라
이와같이 엄마 하고 울던 십승 길지를
먼저 알아서 예언하는 세상인데
뭐그리 쫑을 달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지

혼구장야 안적화(昏衢長夜 眼赤貨)라
어두운 두 눈에 다닐 새이나 긴밤 사거리를
쏘다니면서 돈 독에 올라 시뻘건 눈
네거리 구(衢)자는 다닐 행(行)자 속에
놀라서 볼 구(瞿)자가 들어 있다.
눈 목자가 두개면 두리번 거릴 또는 매 같은 새가
먹이 감을 사냥할때 노려보듯 노려볼 구자로,

인개불사 진불진(人皆不思 眞不眞)이라
돈에 눈이 멀어 돈독이 올라 시뻐겋게 변한 눈에
참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하겠느냐고?
돈을 벌어야 살고 돈을 벌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데
참이 무슨 ~ 얼어죽을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연히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돈과 결부 아니된 것이 어디 있느냐고
한번 물어들 봅시다.

호사다마 차시일(好事多魔 此是日)이라
좋은 일에 나쁜일인 마가 끼기 마련이니
이날이 와 보면 안다고 하였다.
그렇다 뭐 일 좀 할려고 하면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막아서 못하고
저런 사람들이 나서서 저렇게 막아서
옳게 일을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불로그 까지 들어와서 횡설수설하는
사람들도 있어 마가끼니 어쩔까이?

쌍견언쟁 초십구(雙犬言爭 艸十口)라
두 새란 사람의 손에서 지장찍는 엄지손가락 모지로
점을 찍으라는 말씀을 풀어서 열은 말이다.
점을 찍으라는 말씀을 풀어서 열은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하는데 마가끼어 별난 일들도
일어날 수 있으니 주의를 하라고 한 것이다.
쌍견언쟁(雙犬言爭)은 파자된 글자를 다시 합하게 되면,
감옥 옥(獄)자가 되고
초십구(艸十口)는 초 두에 옛 고(古)자를 하면
당연히 괴로울 고(苦)자가 나온다.
소송이나 감방에 들어갈 일도 일어날 정도로
마가 낀다는 말도된다.
그러나 감옥이나 소송이란 뜻으로 해석한다면
도(道)의 해석은 삼천포로 빠져버린다.
격암유록의 많은 해설서들이 이 함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왜냐하면, 도서(道書)는 도(道)의 입지에서
해석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사람 필자가 잘나서 이러한 글을 쓴 것은 절대 아니다.
오로지 선경세계의 일신(一神)과 저승 명부세계
삼신(三神)의 도움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해설서와는 그 뜻이 전혀 다를 것이여이~
잠시잠시 불면액(暫時暫時 不免厄)
낡은 수래를 잠시잠간 동안 감싸더니
그게 바로 언덕에 있는 절이요 부처인데
그 사람은 팔(八)자의 토를 달아서 날 사람이다.
이러한 내용인데
책에서는 "날근수래 잠시날사 언덕절불 팔날사람"이라고
요약한 말씀으로 내려받았으니 사실 이사람도
다 모르는 구절들이 아직 있다오!
잠시잠시는 잠시를 거듭했기 때문에 아주 잠간 동안임을 말한다.
아주 잠간 동안이지만 감싸두르고 석 점을 찍지 않고는
액을 면할 방법은 없기 때문에
불면액이란 말을 쓰게 된 것이다.
말씀 언(言)자를 파자하면 감싸두르고 석점을 찍는다는 뜻이다.

구지가일 선무형(九之加一 線無形)이라
9에 1을 더하면 10(十)이 된다.
여기에 나온 십(十)이란 글자의 줄(線)이 모양이 없다나 어쨌다나?
이렇게 해석하면 도의 입지에서는 오리무중이 된다.
"구로 가거라" 라고 별새가 한 말이래 글세,
점이 날 실물에는 모양이 있다나 없다나 그렇지 아마도,
십승양백 시구인(十勝兩白 矢口人)이라
양백으로 십승이 됨을 사람들은 알아나 볼까?
양백이 되는 시기는 이미 수도의 단계로 넘어간 상황이 된다.
너무 길게 나왔지요이~

2007년 1월 31일 17시 20분

 한림도

2016년 4월 5일 화요일

135. "진인진인 하진인~여광여취 우명성"이란?


 

135. "진인진인 하진인~여광여취 우명성"이란?


본 글은 삼풍 상권 40쪽,41쪽의 글이다.

진인진인 하진인(眞人眞人 何眞人)이란,
참사람이 진인인가? 어떠한 것이 참사람 진인인가?

진목화생 시진인(眞木化生 是眞人)이란?
참(眞)이 나무(木)에 홀연히 화생한 것이 진인 이라.
왜 하필 참이 나무에 화생 하였을까 하면,
이번에 오는 운은 임(林)으로 온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임장군 출운야"등의 말이 있다고 앞장에서 소개 하였다.
나무 목(木)자 하나면 되는데 왜 둘이되어 임(林)지로
반드시 해야 하냐 하겠지만,
그 이유를 말한다면
선천의 전수법에서는 홀수를 썼으나
후천 인도문에서는 전수법을 반드시 쌍수를 써야하기때문이다.

천하일기 재생인(天下一氣 再生人)이란?
하늘 아래 한 기운이 사람에게 다시 살아난 것이다.
태고적 마고성 복본의 도맥을 유호씨가
서방으로 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7대 7천년간 천부로 전한 복본의 맥이 동방에서는 끊어지고
서방으로 건너간 마고성 복본의 도맥이 그 시한을 다 하고
서방을 떠나올때를 파티마 제 3의 비밀은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1916년 5월 중순,1917년5월 13일 동년 6월 13일
동년 7월 13일 동년 8월 13일 동년 9월 13일로 모두 6차례이다.
서양 사람들이 13일을 아주 싫어하나
우리 동양 사람들은 13일을 좋아한다.
그 이유가 여기에 있어서 일까?
마지막 날에는 하늘에 청적황의 3색 노을이 있었다고 한다.
(삼풍 상권 350쪽,351쪽 참조)
1916년에 서양을 떠날 채비를 하자면
1910년 한일합방의 마지막 36년간의 시련이
되었기에 가능했을까?
3태극의 기운이 한반도의 하늘 상공에서 맴돌다가
일제 36년 시련의 세월이 다한 연후에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니,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동시에 72화의 절반 불이
어머니 배 속으로 내려온 것이다.
이때 잉태된 1946년 병술생이 해당되며,
나머지 36궁 도시춘의 불이 해방 후 36년 만인
1981년에 72화의 온전한 불을 모두 다 받게 된다.
해인용사 시진인(海印用使 是眞人)이란?
해인이란 바다 도장을 쓰는 사람이 옳은 진인이다.
바다 도장을 "모지로 점수하는 도장"이라 하였다.
해인이라 하여 이것을 가지고 혹세무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잘못된 것이니 이제는 그만 두어야 할 때이다.
진목화생 변화인(眞木化生 變化人)이란?
참이 나무에 홀연히 화생하여 변화한 사람이다.
"일월오봉"에서 일월은 둥근 것에 비유한 것이고
오봉은 나무에 비유한 것이다. 바로 진목이란 것이다.
오봉인 진목이 아니고는 일월에 함부러 가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다
그래서 일월오봉은 아무나 마구잡이로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옥체에 티가없는 성역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옥무하체 불변리(玉無瑕體 不變理)란?
옥체에 티 없으니 구슬마을 불변이라.
구슬이 들어있는 몸 속에는 티가 있을 수 없다.
만일 티가 들어 있다면 야단 버꾸통이 나기때문이다.
사람의 몸가운데 구슬보다 더 동그란 곳이 있지요?
어디에 있는지 이제는 아시겠지요?

동방춘생 금화발(東方春生 金化發)이란?
동방의 극낙인 마고성 봄은 금(金)씨 성씨로
일어나게 되리라.

열방호접 가무래(列邦蝴蝶 歌舞來)란?
열국우방들의 백성들이 벌 나비가 춤을 추며
날아오듯이 찾아오네.

집형안찰 변심령(執衡按察 變心靈)이란?
잡고 살펴 바로 누르니 심령에 변화가 일어나는가 이다.
이것은 도(道)를 전수하는 모습을 설명한 말이다.

천하인민 대호성(天下人民 大呼聲)이란?
하늘아래 백성들이 큰 소리로 부르짓어
불가에서 성불 성도하기란 하늘에 별따기에 비유할까?
진정한 도를 전수하여 성불의 길이 열렸는데
어찌 환호성이 나오지 않을까?

여광여취 우명성(如狂如醉 牛鳴聲)이란?
미친건지 취한건지 엄마라고 소리치네!
성도 성불의 입지에 들어서면 환희심이 대발하는데,
그걸 말로 어찌 표현을 다 할 까?
환희심이 대발하여 일어날때는 "엄마~" 하고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환희심으로 일어나는 울음 소리를
소 울음 소리에 비유하여,
엄마라는 소리의 근원이 되는 장소를 일러주고자 한 말이다.
엄마라고 울던 십승이라고도 한다.
엄마의 나라 이곳이 인류의 마고성을 복본할 장소이다.
삼풍에서는 파자로 해석된 것을 쉽게 풀어서 썼다.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사정이 생겨서 몇일 쉬었다.)

2007년 1월 30일 17시 19분

 한림도

134. 꿈을 그려라~, 꿈을 그려라~




134. 꿈을 그려라~, 꿈을 그려라~


이 글은 이사람이 실지로 꾼 꿈을 기록한 글이다.
나는 고등학교 학창시절 여행을 갔다.
그림 그리기, 글쓰기 등 여러가지 대회로
시상을 받는데 내것은 없었다.
내것은 쓰래기 더미와 같이 있었다.
그런데 그 쓰레기 더미속에 내가 쓴 글이
'대상'이라 표지에 써져있고,
글 쓴 표지 위에 부상으로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하얀 알약이 한 판에 10정 정도 박혀있는
하얀 알약 이었다.
나는 이 알약을 직장암으로 고생하셨던
엄마에게 갔다 드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부상이 또 있었다.
그것은 검은 비닐에 쌓인 돈 다발이었다.
그런데 그 대상받은 표지의 책에는 헬리콥터가
막 뜨고 있고,
아이들은 좋아라고 뛰고 있는 그림이었다.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울엄마는 1946년 음력 5월 25일 20살 나이에
나를 낳으시고
그해 음력 12월 9일에 19살 울아빠를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다.
일본의 36년 학정으로 빚어진 민족의 비극이다.
울엄마는 평생을 혼자 나를 바라보고 살았다.
지금 같으면 결혼시켜드렸을 것이다.
울엄마 너무도 가엾은 울엄마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계시는 울엄마에 대한
나의 소망을 이루어 드리고자 노래를 불렀다.
"꿈을 그려라." "꿈을 그려라."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음력 12월 9일이다.
아버지의 영상에 이글을 올린다.

2007년 1월 26일 21시 40분

 한림도

133. "세론시(世論視)"(3)



133. "세론시(世論視)"(3)


"횡이위주좌우쌍삼 물한기수물상추의"란?

본 글은 삼풍 상권 52쪽~53쪽의 글이다.

구음불청 하필모상(久陰不晴 下必謨上)이라
오랜세월동안 더러워져서 상하가 작당하여 모의하는
이러한 세월이 되었는데,

수의부모 갈효수작(誰爲父母 竭孝誰作)이라
누가 그러한 자식의 부모가 되려고 하며
어느누가 그러한 부모를 받들어 효도할 것인가?
그래 신문이나 TV 뉴스를 보면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죽인다는 보도가 끊이질 않잖아?
그래 작금의 세상 꼬라지가
이러한데 어찌하면 좋다는 말인가"
라고 하였더니

생사판단 비룡롱주(生死判端 飛龍弄珠)라
죽고 사는 또는 죽이고 살리는 판단은
날으는 용이 여의주를 굴리듯 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
날으는 용이 여의주를 굴리듯해야
죽을 사람을 살린다는 말이 아닐까?

세유기인 공찰만물(世有其人 公察萬物)이라
이렇게 혼잡한 세상에 출세한 그사람은
만물을 옳게 살피고 있으니 라고 하였다.

기성위수 부지야(其姓爲誰 不知也)라
날으는용이 여의주를 굴리듯이 하여
죽을 사람을 살린다는 그사람의
성(姓)이 누군지는 알 수 없어서 모른다고 하지만

횡이위주 좌우쌍삼(橫二爲柱 左右雙三)이라
성은 잘 모르지만 어쨌던지 알기는 알아야 하겠기에
하는말이, 가로로 한 두 이(二)자를 기둥을 세우듯이
세로로 세운 뒤에 좌우로 삼(三) 삼(三)을 붙이게 되면
아닐 비(非)자가 된다고 하였다.

물한기수 물상추의(勿恨其數 勿上追衣)라 하였다.
이말은 아닐 비(非)자라는
글자 자체에 한정도 짓지말고
또한 아닐 비(非)자에 옷 의(衣)자를 더하여
성 배(裵)자를 만들어, 그 성(姓)이 배(裵)씨라고
착각해서도  않된다는 말이다.
우위기수 여단여장(又爲其數 如短如長)이라
그 수가 또한 될런지 짧은 것 같기도 하고
긴 것 같기도 한데

종덕반백(種德半伯)이라,
절반은 흰점으로 된 씨를 얻었다 라고나 할까?
이 말을 도를 전수하는 입지로 너무 빨리
설명을 하다 보니 "자축거려서 뚫을 두 팔
열망한마음이 날점을 한 씨"라고 해석 했다.
알아듣기가 어려울듯 하여
"절반은 흰점으로 된 씨를 얻었다 라고 할까?로
풀어보자.

구장궁취마(久粧弓취磨)라, 취자는 헤아릴 취자.
(엠파스 한자전에 글자가 없어서 미안하다.)
오랜 세월동안 헤아리고 단장하며 활을 갈아 왔다.
그래 그 아닐 비(非)자와 깉이 생긴 그 장소를
분단장을 하더래도 오랫동안 해 왔으며,
활을 쏘기위하여
오랜세월동안 갈고 또 갈아 왔다는 것이다.
헤아리는 수로 따진다면 어찌그 수를 다 헤아리 겠는가?
사부대중 여러분들 이재는 이해가 좀 될 것이리라...
이해가 아직도 안된다면 조금더 지나가 보면 되지.

2007년 1월 22일 13시 51분

 한림도

132. "세상을 논해 보자는" 세론시 -(2)-

132. "세상을 논해 보자는" 세론시 -(2)-


삼풍 상권 52쪽~53쪽의 글이다.

"백이채미 유부세이(伯夷採薇 由父洗耳)"란
"고사리켈 백이숙재 귀를씻는 허유"
백이숙재(伯夷淑齋)는 상(商)나라 말기
고죽국(孤竹國)의 군왕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로서
서로 부친의 왕위를 계승하지 않으려고 하였다고 한다.
주나라 무(武)왕이 상나라를 침략할때 형제가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음에 주나라의 녹을 받지 않고
수양산에 들어가서 고사리(薇)를 케어먹고 숨어서 살다가
굶어죽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유부(由父)란 말은 허유(許由)와 소부(巢父)의
이름자 한자씩을 따서 이른 말이다.
소부(巢父)는, 중국의 요(堯) 시절 숨어사는 은둔자로
산 속에 살면서 세속의 명리를 탐하지 않았다고 한다.
새가 나무 위의 새집(巢)에서 살듯이
늙어서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기거함으로 당시 사람들이
부르기를 소부(巢父)라고 불렀다고 한다.
허유와 소부의 일화를 소개 하면,
허유가 중악으로 가 영수(潁水)의 남쪽
기산(箕山) 아래서 농사를 짓는데 요(堯)가
구주(九州)의 장관으로 부르자 허유가 듣기 싫다며
영수 가에서 귀를 씻는데
그의 벗인 소부가 송아지를 영수가로 몰고나와서
물을 먹이려던 차에,
귀를 씻는 허유를 보고 까닭을 물었더니
허유가 이르기를, "요가 나를 불러 구주의 장을 삼으려는
더러운 소리를 들었기에 귀를 씻는다 하기에"
소부가 이르기를 자네가 사람들이 없는 벼랑이나
깊은 골짜기에 숨어 산다면 누가 자네를 보게 되겠는가?
그것은 자네가 돌아 다니면서 명예를 구하러
했기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면서, 우리 송아지 입이 더러워지겠네 하고
송아지를 데리고 상류로 올라가서
물을 먹였다는 일설이 있다.

막탐부귀 비명횡사(莫貪富貴 非命橫死)라
부귀를 탐하지 마라 비명횡사 한다더라.
요즘 세상에 백이숙재나 허유와 소부 같은
사람들이 있을랴고
국회의원 대통령을 서로 하고자 서로서로
비방 선전에 인신공격에
눈뜨고 보지못할 가관인 세상이 전개되고
있지 않는가?
어러한 상황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삼풍 양백을
만나지도 못하고 도를 닦아서 인간이 살아가는
바른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고
경계하여 이른 말이 아닐까?

2007년 1월 21일 16시 0분

 한림도


131. 세상을 논해 보자는 "세론시(世論視)" -(1)-




131. 세상을 논해 보자는 "세론시(世論視)" -(1)-


본 글은 삼풍 상권 41쪽에서 73쪽까지의 글이다.

서학대치 천운야(西學大熾 天運也0라,
오늘날 이 시대에 서양 학문이 번성하는 것이
하늘의 운수란 말인가?
그래서
천도자생 무도자사(天道者生 無道者死)라,
하늘 길을 가진자는 살아날 사람이요
하늘 길을 가지지 못한자는 죽을 사람이다 라고
하는 말인가?

량자수 청자수(量者誰 聽者誰)라
이러한 뜻을 헤아리는 자는 누구이며
이러한 뜻을 이야기 하면 들을 자는 누구란 말인가?

세인하지 지자능지의(世人何知 智者能知 矣)라
세상 사람들이 다들 모른다고 하더라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이말이여,

적덕지인 활인여차(積德之人 活人如此)라
덕을 쌓는 사람이 되면,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고,
그러한 사람은

자생정도 불원적곡(自生正道 不願積穀)이라
스스로 옳게 살기 때문에 돈이나 곡식이나
재물을 쌓기위해 아파트 투기나 부동산 투기등을 하여
돈을 벌려고 하지않는다는 것이다.

차아후생 불망혈유(嗟我後生 不忘血遺)
야~~ 내가 다음생에 다시 태어난다 하면,
아마도 피를 흘리면서 죽을 일은 없으리라.

지묵천운 조모변화(智默天運 朝暮變化)라
지혜라 하더라도 하늘의 천운에는 할말이 없느니라
새벽이 지나면 날이 저물듯이 자연스럽게 변화하리라.

신외자문 국외법관(信外刺文 國外法官)이라,
외국의 외래어인 일본어 영어 중국어등을 믿어
우리말 한글을 천대하고 외국나라의 법에 벼슬을 하게 되고

가이매관 소인능대(假夷賣官 小人能大)라
우리 동이의 백성이 아닌것이 동이의 벼슬을 만들어 팔고
(우리 국민들에게 가짜 외국 자격증,
가짜박사학위증 등을 팔아먹는것),
천손의 후손이 어디 할짓이 없어서
미개한 나라에서 발급하는
가짜 자격증이나 가짜 학위증을 사서
돈에 눈이 어두워진
소인배들이 들끓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량왕운 유양래운(無量旺運 有量來運)이라
헤아릴수 없는 한없는 운에도 오는 운수는 한이 있으므로

물념유서 의외 출진(物念儒書 意外出盡)
(이 글을 쓴 년대는 이조 초엽 선조 때이므로 유교 학문이
근간이 되었었기에 유교의 글 사서삼경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광의의 해석을 하자면,학문하는 선비의 글도 되지만),
유도의 글을 생각하지 말아라 다하게 될날은 뜻밖이 될것이다.

2007년 1월 20일 13시 6분

 한림도

130. "약불해득 무량육안 속리지세(若不解得 無量肉眼 俗離之世)"란?

 

130. "약불해득 무량육안 속리지세(若不解得 無量肉眼 俗離之世)"란?


본 글은 삼풍 상권 56 ~ 57쪽까지의 글이다.

"무량육안"이라는 이뜻을 만약 모르거던
속세를 떠나거라"라고 한 말이다.
속세를 떠나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인데,
이 말이 너무한 말이 아닐까 라고 할 것이다.
왜 이런 말까지 하면서 도의 입지로 따라
들어올 것을 안타까이 여겼을까?
그 당시 격암 남사고 선생 역시
이루지 못한 마고성 복본에 대한 꿈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본다.
무량육안(無量肉眼)이란 말은
고기눈을 해아리지 못하는가
라고 한 말이다.
그 당시에도 도를 쫗아서
이산 저산을 다니면서 도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던지, 아니면 후세 사람들이
도를 찾아서 이산 저산을 찾아다닐 것을 알고서
도를 닦아야 할 산은속리산 지리산 가야산이 아니고
도를 닦아야 할 산을 찾으려면,
고기 눈이나 헤아려 보아라 고 힌트를 준 말이 아닐까?

2007년 1월 19일 10시 3분

 한림도

129.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卵生說)이란?



129.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卵生說)이란?


본 글은 양백 상권 41쪽에서 42쪽까지의 글이다.

6가야의 임금들이 모두 새의 알에서 탄생하였으며,
신라의 박혁거세와 金알지나, 구구려의 고주몽도
알에서 탄생하였다고 되어있다.
과연 새의 알에서 사람이 태어났다면
자연계의 대 이변일 것이다.
(아니, 지금 드라마 "주몽"에서 보면,
해모수의 아들임이 밝혔졌잖아!)
그러면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우리가 여기서 한번쯤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일반 서민들은 절대로 알에서
태어났다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위대한 선각자나 제왕들만이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화들이 있을 따름이다.
이것을 오늘날까지 시원하게 풀어서
정리하지 못하였으나,
오늘 이사람을 찾아서 한림도를 전수 받은
팔순의 노씨 할아버지 수행자의
난생설에 관한 옛날 설화를 들으면서
내가 이르기를
"한림도를 받아서 수행하면 분명 새알에서
사람이 태어났다는 난생설을 깨닫게 되리라" 고
일러주면서 열심히 수도하라고 하였다.

본서 양백의 집필을 마무리하던 그 당시에
무엇인가 빠뜨렸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떠오르지 않았었는데,
오늘 이렇게 도를 전수받은 노(盧)수행자를 통하여
그때 난(卵)생설을 쓰려다 잊어버렸던 생각이 나서
이 글을 다시 쓰게 되었다.
새란 이사람의 손이요,
알이란 구도자(求道者)의 두 눈이다.
새알은 이사람의 두 손이
구도자의 두 눈망울에 앉을 때 새 알이 된다.
알을 깨고 태어나는 것은 두 눈을 감았다가
두 눈동자를 뜨게 된다는 말이다.
눈을 감았다가 뜨는 순간 새알을 깨고 태어나는
새로운 탄생,
그것은 참인간으로 태어나는 깨달음이다.
참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이치를
새알에 비유한 난생 설화로
이제 우리들은 확실하게 바로 알았다.
분명히 새는 새를 낳고 사람은 사람을 낳는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설화는 바로 후손들을 깨우치기 위한
우리 조상님들의 슬기로움이 여기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난생설화 역시 마고성 복본을 위한 조상님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한 부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크게 박수치면서
본서 양백 상권에서
두 눈에 앉은 모지 손톱의 두 새를 보기 바란다.

(16초동영상 한림도 이미지 그림의 손톱에는 새 그림을
넣지못해 미안하게 생각한다 차후로 기술이 있는 분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면 가능할 날도 있을 것이다.)

바로 두 새는 두 손이며,
지문이 있는 모지 손가락에 비유하였다.
다른 짐승의 알이 아니고 새의 알에 비유하였으니
이사람 한림이 전하는 이것 밖에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사람이 전하는 한림도는 분명히 틀림 없으니 믿고 수련하면
누구나 다 그 옛날 난생설화의 주인공들처럼
우리들도 알에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2007년 1월 19일 12시 49분

한림도

128. "사주팔자"와 오행의 화(禍)"란?




128. "사주팔자"와 오행의 화(禍)"란?


오미의 화로 인하여
지상낙원 마고성은 폐쇠되고
오늘날과 같은 생사윤회의 세계로 들어왔다.
지상낙원 마고성을 복원만 하면
자연히 생사윤회는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고님 앞에서 백모의 띠를 묶어
마고성 복본을 반드시 이루겠노라던 황궁씨도
유명을 달리하고
자손 대대로 7대 7천년간
마고성 복본을 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와같이 되자
지상에는 마고성 복본의 사상이 점점 멀어지고

중국의 요임검은
복본에 반하는 오행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유호씨의 아들 유순이 요임검의 사위가 되어
오행을 받아드리니 이것이 지상에 오행의 시초가 된것이다.

오행이 출현 하면서 마고성 복본의 길은 점점 멀어만 갔다

그러다가 신라의 박혁거세가 금척으로 이씨조선의 이성계가
금척을 현몽으로 받아 마고성을 복본 하려는가 하였으나
이 역시 복본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박혁거세의 후손이자
영해 박씨의 시조인 박제상공이 징심록을 써서
오늘날까지 그 후손들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으니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이 태고의 마고성을
더듬어서, 복원하고자 하는 발심을 하게 된 것으로 본다.
물론 자연한 법은 종교로도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전해오고 있으나 실상으로 받아드리기는 어렵다.

오미(五味)의 화로 잃어버린 지상낙원을
오행(五行)의 화로 지상낙원을
복본하기 더욱더 어렵게 만들어 버렸다.
왜냐하면,복잡하고 변화가 작심한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 사회인들은
자신의 운명을 사주팔자에 의존하는
문화권으로 쫓아가고 있어서,
운명을 극복하겠다는 입장보다는
운명을 받아드려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어 가고 있기때문에 더욱더 심각하게 보인다.
마고성을 복본하자면,
운명의 윤회에서 벗어나야 하고
운명의 윤회를 극복해나가야
마고성 복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운명을 사주팔자 속에 넣어서
생사윤회와 같이 운명의 윤회도 자연스럽게
받아드려야하는 입장으로 계속해서 간다면,
언젠가 오늘날의 인류는 반드시
오행의 화를 면치 못할것이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란 말이 있다.
인십승(人十勝)의 정신일도를 닦아서
오미의 화와 오행의 화를 극복하여
인체의 마고성부터 복본을 하지 않으려는가?

2007년 월 18일 16시 44분

 한림도

127. "생사윤회와 오미(五味)의 화(禍)란?


 

127. "생사윤회와 오미(五味)의 화(禍)란?


생사윤회(生死輪回)란 말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생사윤회를 벗어났다고
하는데서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고성(麻姑城) 지상낙원에서는
생사윤회가 원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백소씨 계열의 지소씨가
마고성의 유일한 식사법인
지유(地乳)를 먹지않고 오미(五味)에 속한는
소(巢)의 난간에 올라온 도실(萄實)을 따먹음으로
지상낙원 마고성은 폐쇠되고
생사윤회를 격으면서 살아가는
오늘날의 인류세계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독자 여러분들의 판단에 달렸다.
그러나 지금 상고사에 관한
역사 드라마가 계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시세는 자연한 흐름을 타고 흘러가게 마련이다.
박제상 공이 쓴 징심록(양백 하권에 수록)을
우리민족의 상고사로
받아드리고 있는 실정이다.
완벽한 생사윤회를 벗어난다는 말은
생사윤회가 없었던
마고성 지상낙원의 시절로 돌아가거나
마고성 지상낙원을 다시 복본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생사윤회를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인신에 마고성 지상낙원을 먼저 회복하는 길이 우선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마음이 먼저 지상낙원에
사는 것 처럼 편안해야지 만물들도 따라서 편안하게 되니
지상에도 다시 낙원인 마고성이 복원하게 될 것이다.
생사윤회를 벗어날 인신에 마고성을 세우는 방법은
인십승人十勝)으로 들어가면 될것이다.
오미의 화로 생겨난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방법이 될 것이다.

2007년 1월 18일 15시 49분

 한림도

126. "약이 색견아 이 음성구아 시인 행사도 불능견 여래"란?




126. "약이 색견아 이 음성구아 시인 행사도 불능견 여래"란?


어제 저녁에 "일본 종교"를 믿는 50대 남자가 왔다.

자신의 종교 교조의 맥락은 석가모니로 부터 전수 받았으며
목소리 음성으로 "자신들이 부르는 주문을 외우면"
"피부의 세포가 바뀌고 질병이 물러가며"
"도통하고 성불 할 수 있다고 햇다."

필자가 그 말에 답하여 이르기를
목소리 음성으로는 축원을 한다던지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도통 성불은 불가능 하다.
왜 그러한지 그 이유를 알고자 한다면 일러주겠다
했더니 말해달라고 하여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해 주었다.
귀하가 다니는 종교의 교조가 분명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음성으로 귀하의 종교에서 부르는 주문을 부르면
성불하여 부처가 되고 도통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피부 세포가 완전히 변화하여 질병이 치유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조금 있다니까 하는 말이,
아이구 내가 약 먹을 시간이 지나 버렸내 하면서
약을 꺼내는데 위괴양에 관한 약과 기관지에 관한 약인듯
위장과 기관지가 좋지않아서 이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며
내가 따루어준 음료수로 병원에서 처방한듯한
가루약을 입으로 털어넣고 물을 마셨다.
이 종교를 얼마나 다녔냐고 하니까 약 30년전부터
다녔다고한다.
30년 정도 닦았으면
세포까지 완전히 바꿔져서 병이 물러갔어야 하는데
아직 나이 50대에 쇠를 삼켜도 괸찮을 나이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하고 의아해 물었다.
묵묵 부답이었고 오히려 내가 묻는 말에
조금은 계면쩍어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말을 바꾸어 다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왜 음성으로는 성불도 할 수 없고 도통도 할 수 없는지를
설명할테니까 잘들어보라 하고 말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금강경 사구게에서 이렇게 말했다.
"약이 색견아 이 음성구아 시인 행사도 불능견 여래
(若 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라고
말 하였다.
그대로 직역하면,
"만약 색으로 나를 보고
이 음성(音聲)으로 나(我)를 구(求)한다면,
정도(正道)가 아닌 올바르지 못한 사도(邪道)를
행하는 사람으로 되어 여래(如來)를 보지도 못하는 것은
말 할 수도 없거니와 어찌 감히
부처를 이루고 도통을 할 것인가?"
하였더니 꿀먹은 벙어리와 같이 아무 말을 못한다.
여기서 색이던 무색이던 그정도 상황은 제쳐두고 라도
이 음성구아~불능견여래까지만 해석해도
음성으로 구한다는 것은 도저히 안될말이라고 했다.
이 세상에서 무색으로 자신을 본다면 그다음은
더 이상 사구게를 논의 할 하등의필요가 없어진다.
이 세상의 중생들은 무색으로 보지못하기 때문에
음성으로 구하면 아니되느니라 하고 못박아 분명히
설명을 한 것이다.
비단 이사람 뿐일랴구, 세상에 거의 많은 종교가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 음성으로 도통을 한다하고
성불을 한다 하니 이 세상 언제나 철이 들라는지?

2007년 1월 18일 10시 52분

한림도.

125. "상제예언 성경설 호리불차 진진경"이란?


125. "상제예언 성경설 호리불차 진진경"이란?


       본 글은 삼풍 상권 38쪽~ 39쪽까지의 글이다.

       상제예언 성경설(上帝預言 聖經說)이란,
       점한 임검을 상제 또는 하느님이라고 한다.
       상제(上帝)를 파자하면,
       점 복(卜), 한 일(一), 임금 제(帝)이다.
       그래서 상제 하느님을 "점한 임금"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점한 임검 상제하느님께서 예언 하신
       성스러운 성경의 말씀에는
       (여기서 기독교의 성경과 혼동하지 말기를
       바란다.)
       호리불차 진진경(豪釐不差 眞眞經)경이라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참된 진경은
       털끝만한 어긋남이나 오차가 없기때문에
       호리불차 진진경이라고 한 것이다.

       우리민족의 성경은 진경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진경이라야 성경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진정한 하느님이 예언으로 하신 말씀,
       그것은 말없이 전수하는 도(道)의 법임을...


                      2007년   1월   17일   15시  10분.


                                한림도.


124. "진경진경 하진경 요마불침 시경주"란?


124. "진경진경 하진경 요마불침 시경주"란?


본 글은 삼풍 상권 38쪽 ~ 39쪽까지의 글이다.

진경진경 하진경(眞經眞經 何眞經)이란,
참 말씀, 참 말씀, 어떻한것이 참 말씀인가?
그런데 여기서 말씀은 말씀인데
"참 말씀"이라고 했다.
천부경, 불경, 성경 등의 경이 있다.
경은 경인데 진경을 말했으니까
참을 알려면 참 진(眞)자를 파자해보면,
사람의 눈에 새점한 팔로 푼다.
이유는 숫가락 비(匕)자는 새 을자와 점 주자로,
그 아래 눈 목, 사람 인자를 젖혀놓고,
그 아래 여덟 팔자가
이것을 도를 표현할 말로 만들면
"사람눈에 새점한 팔"이 된다.
사부대중 여러분들
한림도 이미지 그림을 유심히 처다보면
잠시 잠간 지나가는
여덟 팔(八)자의 모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참이 나타나는 제1의 표현은 붉어진 얼굴이었고,
다음은 참을 말씀으로 표현 하고자 하니
팔(八)자의 형상을 만들었다.
말씀은 절대로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 경(經)은 입으로 하는 말씀이 아니다.
그래서 진경이라 한 것

아 ~ 그래서 참 진자 중앙에는 눈 목(目)자가
들어 있었구나.
그런 의미에서 경(經)자를 파자하면,
바깥이 아닌 '실내에 있는 한 공'이라나,
실 사, 내 천, 한 일, 과학기초 공자로 되어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러한 진경이기 때문에
가히 요망한 마귀들이 침범하지 못한다고 하여
요마불침 시경주(妖魔不侵 是經 . )라고 했다.
점 주( . )자가 없어서 맞침표를 찍었으니 양해 바란다.
실내에 들어있는 한 공에는 점이 딱 찍혀 있데나.
요괴나 마귀가 함부러 절대 침범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거지!
사부대중 여러분들 조금 이해가 가는 건지,
한자가 어렵다는 분들도 있으나
사실 이사람 필자도 한문자는 정말 잘 모른다오,

2007년 1월 17일 14시 42분

 한림도

123. "길지 길지 하길지 다회선중 시길지"란?


 

123. "길지 길지 하길지 다회선중 시길지"란?


본 글은 삼풍 상권 38쪽 ~ 39쪽에 있는 글이다.

길지길지 하길지(吉地吉地 何吉地)란,
길한 땅이 길지인데 어찌하여 길지라고 하는 것인가?
하고 물었다.
길지(吉地)를 십승지지 또는 십승지지
천십승 지십승 인십승 이라고도 한다.
앞에서도 거론 하였지만
선천을 지나 후천을 지난지도
4300여년이 지나고 있다.
이번에 오는 운도는 후천에서
중천 인도문으로 들어야 한다.
중천 인도문으로 들 때는
후천의 불랙 홀로 들어가야
중천 인도문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려있다.
이정도는 도계에 있는 분들은 기본이다.
일반 사부대중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나중에 별도로 시간을 내도록 하겠다.
그래서 길지란 "인 십승"을 말하는 것이다.
뒤따라 오는 문장이 그래서,
다회선중 시길지(多會仙中 是吉地)이다.
왜 그랬을까? 를 의문 하였더니,
"두 달 모을 산중이 길지"라고 할 수 있다나.
많을 다(多)자를 파자 하면,
달 월(月)자가 절반밖에 안된 반달이 두 개가 있다.
뒤따라 나오는 글이 모을 회(會)자 이기 때문에
두 반달을 모은 형상의 글이 된다.
어떻게 하여 어디로 두 반달을 모을 것인가 하니
뒤따라 나오는 글이 신선 선(仙)자와 가운데 중(中)자로
신선 가운데로 와야 한다는 말이다.
혹 자들은 신선들이 많이 모여서
다니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말들도 한다.
물론 우리가 사는 이승은 선계와 명계가
같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그렇게 들어가야지 하니까,
만년전부터 짜놓은 각본에 의하여
그리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
그러나 사부대중 여러분들이 들어가는
선경세계는 이사람 필자가 마련해놓은
인십승의 선경세계를 말하는 것이니
안심을 해도 된다.
신선이 사는 선경세계로 들어가지 않고는
신선 선(仙)자를 사람 산으로
해석이 불가능 하다.
사람의 산으로 들면
신선세계로 들어가는 것에 견주어 말했으니
사실 그러하다.
사람 산의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 길지인
 인십승이 있는 장소가 맞다.
이 글을 읽게 되는 독자 여러분들은
사실 행운입니다.
왜냐고요 죽지않고 살아서 극낙 선경으로
들어가는 문을 찾았으니 말입니다.

2007년 1월 17일 13시

 한림도

122. "불로불사 감우로(不老不死 甘雨露)"란?


122. "불로불사 감우로(不老不死 甘雨露)"란?


본 글은 삼풍 24쪽 ~ 25쪽까지의 글이다.

불로불사(不老不死)란 말은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말들을 자칭 정도령 구세진인 제림주라고
칭하는 사람들의 구호로 쓰여 왔었다.
그러나 그런 말들을 하던 사람들이
결국은 노쇠하여 병들어 세상을 떠났다.
이 일을 어쩜 좋아?
이렇게 말하는 이사람 역시 이팔정춘 시절과는 이제 다르니
이 일을 어쩔까이!
열심히 수련하는 수도인들 가운데서
팔구십대나 백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일이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차이가 없어 보이는 분들이 종종 있다.
어떻게 수련을 하길래 그러할까?
라고 본문에 물었더니 하는 대답이
감우로(甘雨露)라고 하였다.
감우로(甘雨露)를 파자로 풀어보면,
달 감(甘)자는 스믈 입(卄)자 속에 한일(一)자가 들은것,
그런데 스믈 입자 아래를 막아야 하는데
본 한자전에는 터져있어 해석상 좀 그렇지만 이해를 하고 풀면,
스믈 입자 속에 한 일자가 숨어 있으니까
스믈을 '숨을'로 하면

입일(卄一)은 "숨을일로"로 풀고
우로(雨露)는 '雨 雨 路'로 풀면 "두 빗길"이 된다.
상하를 다시 합하면,
"두 빗길(雨雨路)에 숨을(卄) 일(一)로 로 푼다.
아이구나 힘든다.어휴~
성신의 말씀으로 도움을 받아서 쓰는데도 힘들어!
그런줄이나 알아들 하시구랴.
이 말은 어떻게 하던지 열심히 도를 닦으라는 말이지!
그래 두 빗길에 하나가 숨었어 바로 그거야.
비가 오는 가운데로 길(路) 하나가 나 있데나 어쨌다나.
길도 높다랗게 잘 놓였어.
근래 와선 그 길을 더욱더 높인다나.
어쨌던지 좋은 세상이여 그렇지 않아?
그런데 글세 그 길에 하필이면 하나가 거기 숨었드래~
이게 도대채 어찌그려~알다고도 모를 일이랑껭
하무하무 아무나 다 알문 안된데이 니도 그렇제이
사바세계에서 잘못알아 혹세무민 할까봐서
이리도 꼭꼭 숭겨 놓았던 거라예 알겠십니껴?
누가 일부러 이래놓을 라고예 그건 절대로 아입니더예.
두 빗길에 숨어 계시는 하나의 님을 찾아서
한림도에 흠뻑 젖어 볼라능교 혹시나 아능교
하나의 님을 찾을란동,
그리되야 감히 불로불사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2007년 1월 16일 13시 13분

한림도

121. "수승화강 병각리(水昇火降)"이란?


121. "수승화강 병각리(水昇火降)"이란?


본 글은 삼풍 상권 24쪽 ~ 25쪽까지의 글이다.

수승화강(水昇火降)이란 말은

수련에 입문한 분들이라면 많이 들어본 말이라고?
그렇다 그러나 말처럼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선천 수련의 복식호흡을 할 때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야 제대로 된 수련에 들었다고도 한다.
그것이 숙련이 되면

1호 1흡에 찬기운이 오르고 더운 기운이 내려간다나.

그렇다. 그러면 병이 확실이 물러 가는가?
선천법의 소주천 운행법은 자연법으로 보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응집된 기(氣)를 운행 시키기 위해서는
삶고 쩌야하고 그런다음 임독맥을 통해 순환유주 시켜야하기 때문에
그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다.
거기다가 여성은 선천법으로는 수련 자체가 불가능 하다.
단전 진기를 데우는 데는 남성의 양정진기라야
축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살님들은 다음생에 남자로 태어나야
수련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다음생에 남자로 태어나야 부처가 된다고 하였구나.
남녀 동권 시대에 이게 어디 될법한 말이냐고?
그래서 선천법은 이제 개임이 끝난 것이다.
천산(千山)에 9녀(九女)요,만산(萬山)에 1남(一男)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여자 : 남자의 성불 확율이
여자 90에 남자 1이라고 했다.
후천에는 여자가 남자보다 성불 확율이 90배나 높다.
그렇다고 한다면, 선천법으로는 이제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대도 아직까지 무슨 수련한다고 하는곳을 보면
여전히 기해혈에 응기한 임독맥을 통한 소주천 운행법을 고수하고 있다.
미안한 말씀이지만 그건 이제 아니다.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도 미륵불이 와서 해결할것을 예언 했잖아.
석가세존의 바루가 "통도사 봉발탑"에 봉치하여 있는 것은,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할 미륵존불의 출세를 기다린다는 뜻이라나?
물이 오르고 불이 내리면 병이 물러 간다고 하였다.
물이 오르고 불이 내리듯이 수화를 하듯이 도를 전수 해야 하며,
이렇게 수화를 하듯이 도를 전수 해야지
질병이 퇴치되는 도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수화를 하듯이 도를 전해야지 수승화강 자연순환의
법칙이 일어난다나 어쨌다나.
그렇게 자연 순환의 수승화강이 일어나면
병이 물러 가겠지 뭐!

한림도

2007년 1월 15일 20시 48분

2016년 4월 4일 월요일

120. '사중구생(死中求생) 완연각(完然覺)'이란?


120. '사중구생(死中求생) 완연각(完然覺)'이란?


본 글은 삼풍 상권 24쪽 ~ 25쪽의 글이다.

사중구생(死中求生)이란 말은,
그냥 직역하면 죽음 가운데서 삶을 구한다는 말인데
죽을 순간에도 살아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뒤따라 오는 문장이 '완연한 깨달음'이라니
죽을 순간에 살아돌아온다고 다 완연한 깨달음을 얻을까?
물론 사람이 죽음을 체험하고
살아돌아온다던지 하는 예도 있지만
그렇다고 깨달음과 무슨 연관을 짔는다는 것은
어찌 좀 어폐(語弊)가?
그래서 그 완연한 깨달음이 어떻게 해서 오는지를
죽을 사(死)자를 파자로 풀어 보았더니
죽을 사변에 새 을(乙)자와 점 주( . )자로 되어있다.
엠파스 한자전에 글자가 모두 다 없어서
한글로 설명하는 것을 양해 바란다.
어쨋던 새 을(乙)자가 죽을 사(死)자의 중앙에 들어있다.
물론 새 을자도 낙시 바늘과 같은 모양의 새 을자를
본 한자전에서는 찾을 수 없다 양해 바란다.
흔히들 하기 좋은 말로
죽는 가운데서도 살아돌아온다 라고 말을 했다.
그래 실지로 죽을 사자 가운데 있는
새 을자는 죽음 가운데서 살아돌아오게 한다라고
그렇게 문장은 설명을 하고 있다.
새가 무엇이길래
솟대 위에 새가 있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벽화에도 봉황 '새'가 있다.
'양궁쌍을'에서 볼때도 역시 두새가 있다.
쌍을(雙乙) 두새는 절 만(卍)자에 들어있다.
아 ~ 그래서 절에들 가는 구나.
죽지않고 살려고 절에 가는 구나!
완연한 깨달음과의 상관관계는?
새 을자가 죽을 사자 가운데 들어있어서 그런가?
그런데 그게 완연한 깨달음과 어쨌다고 글쎄,
그 새가 나를 구했으니까 내가 죽지 않잖아?
이렇게 본다면
사중(死中)은 새 을자가 있으니 "새"이다.
다음 문장과 연결하면 '을구생(乙求生)'이다.
'새가 구해서 살았다'라고 풀지말고
나 자신을 구한 새라는 뜻에서,
날 생자의 '날'은 나라고 하는 뜻의
'날 구할 새'로 풀면 이게 완연한 깨달음과 연결이 될것이다.
죽음의 관문에서도 깨달음이 있다.
그러나 그건 지극히 드문 예이기 때문에 다음에 거론키로 하고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깨달음을 위해
죽음을 마다않고 수련하는 수련자들을 위하여
죽을 사(死)자 한자로 화두를 만들어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스스로 깨닫게 할것인가로 본 것이다.

완연한 깨달음을 얻고자 그 새는 어디로 가야 할까?
사부대중 여러분들 다 함께 풀어보자.

한림도

2007년 1월 15일 17시 30분

119. 한림 포고문(桓林 布告文) -(6)-



119. 한림 포고문(桓林 布告文) -(6)-


본 글은 삼풍 상권 325쪽 ~ 337쪽까지의 글이다.

그 쳣째 본불(本 人天)의 진경(眞經)은
진천개벽(眞天開闢) 일(一)이니,
이는 나를 지칭(指稱)하여
만유(萬有)를 알게 함이니
그의 명(名)인 즉 진천천부경(眞天天符經)이라.
진천천부경(眞天天符經)은
하나(一)에서 둘(二)을 셋(三)을 잇는 경(經)이라.
그 다음 진천음부경(眞天陰符經)이라.
이는 내 뜻을 세상(世上)에 내릴때
자연(自然)의 본(本) 모습인 나를 보고 들라 함이라.
그 다음 세째로 진천인부경(眞天人符經)의 명(名)을
삼일신고(三一神告)로 함인즉
나임을 밝힌 경(經)이라.
그중 제일 본(本) 말은
천부경(天符經)이 진경(眞經)이라 전(傳)해 온 것이고,
다른 두 경중(經中) 하나는 중화(中華)의 인(人)이
하나는 너희 조상(祖上) 대대(代代)로
종교(宗敎)하는 이들이 인용(引用) 함이라.
이런 근본(根本) 성품(性品)을 받아온 겨래요
민족(民族)이기에
이제 다시 일어나라.
세상(世上)의 멍에를 메고
진실(眞實)한 인간성(人間性) 회복(回復)에
매진(邁進)하여 나아가라.
내 여기서 정초정분(正礎正分) 삼한천하(三桓天下)를
열어 통일(統一) 하려하니
통일국명(統一國名)은 한국조선(桓國朝鮮)이요
통일한국조선(統一桓國朝鮮)을 맞으니
개벽건곤(開闢乾坤)이로다.
하늘은 순환천개(循環天開)하고
인물(人物)은 신인합기(神人合氣)하여
진충진성(眞忠眞聖)하니
백읍처(白邑處) 망(望) 전단(傳丹)이로다.
이것이 영원(永遠) 낙(樂)이라.

일천구백 팔십칠년 정묘 윤칠월
一千九百 八十七年 丁卯 閏七月

한림도인 일월정사 금홍수 대필
桓林道人 日月正師 金洪秀 代筆

2007년 1월 15일 12시

한림도

118. 한림 포고문(桓林 布告文) -(5)-



118. 한림 포고문(桓林 布告文) -(5)-


본 글은 삼풍 상권 325쪽 ~ 337쪽까지의 글이다.

내 뜻을 받는자 영생(永生)이요
이땅에 내 뜻을 거역 하는자 영멸(永滅)이라.
내 뜻을 받아사니 영원(永遠)히 인간(人間)으로 살것이요
인간이 인간짓을 못 하는자 금수(禽獸)같은 인간은
내 뜻을 거역(拒逆)하여 사니
영원(永遠)히 인간(人間)으로 나지 못하리라.
나는 자연(自然)이요 하나이니 본디부터 있음이라.
이는 모두다 나의 말이라.
그후(後) 내 말은 무수(無數)히 변천(變遷)되어
오늘에 이름이니 그 진실(眞實)함 이루 말로 다 못하나,
그 잘못된것 또한 말로 다 하기 어려워라.
이제 내 여기 인간(人間)의 소원(所願)이
내 뜻과 합일(合一)되어
그의 뜻을 내가 받고 내 뜻을 그에 심어
영원(永遠)한 세계(世界)의 문(門)을 여니
진천 개벽문(眞天 開闢門)이라.
개벽문(開闢門)을 열어 백진경(白眞經)을 설(說)하노니
부디 본경(本經)은 영원(永遠) 세계(世界)의 혼심(渾心)이라.
천지만물(天地萬物) 우주(宇宙) 삼라만상(森羅萬象)이
하나로 이루어 졌거니와
이 나를 아는자 멀고멀어본불(本 人天)의
삼경(三經)을 여니
이가 곧 진천개벽경(眞天開闢經)이라.

2007년 1월 15일 11시 3분

 한림도

117. 한림 포고문(桓林 布告文) -(4)-



117. 한림 포고문(桓林 布告文) -(4)-


본 글은 삼풍 상권 325쪽 ~ 337쪽까지의 글이다.

내 여기 한 인간(人間)에게
그 비답(秘答)을 내리노라.
비답왈(秘答曰)
내가 인정(認定)하는 삼한(三桓)을 세워
다시 그 통일(統一)의 장(章)을 열게 하리라.
다음 나라를 세울 때는
첯째가 남한(南桓)이요
둘째가 북한(北桓)이요
세째가 남북(南北)을 통일(統一)하는
나라를 세우니 한국조선(桓國朝鮮)이라.
한국조선(桓國朝鮮)은 지금의 남한(南韓)에 세우며
수도(首都) 서울은 한강(漢江) 이남(以南)에 둔다.
그 백성(百姓)은
진인(眞人)을 따르는 자(者)로 하며
그 내각(內閣) 각료(閣僚)는
진인회(眞人會)에서 결정(決定)하며
진인회(眞人會)는 내 뜻에 따라 다스린다.
이로써 이땅에 평화통일(平和統一)을 정착(定着)하고
통일국(統一國)을 이루니
한국조선(桓國朝鮮)이라 하며
한국조선(桓國朝鮮)의 원로(元老) 진인(眞人)들은
내 뜻에 따라 민족(民族)의 재회(再會)와

본토(本土) 회복(回復)과
조상영신(祖上靈神)의 뜻을
다시 회복(回復)하게 될 것이다.
이로써 세계는
문명국(文明國)인 한국조선(桓國朝鮮)의 도움을 받아
다시 진실(眞實)한 인간(人間)을 되찾고
진실한 인간(人間)만이 살게 되는
문명세계(文明世界)로 재생(再生)하게 된다.

2007년 1월 14일 15시 20분

 한림도

116. 한림 포고문(桓林 布告文) -(3)-



116. 한림 포고문(桓林 布告文) -(3)-


본 글은 삼풍 상권 325쪽 ~ 337쪽까지의 글이다.

이에 오늘 이래로
내가 한 말을 종합(綜合) 함이니
앞으로 올 중대사(重大事)에
각(各) 분야(分野)를 맡아 참여(參與)할 인(人)들은
지극(至極)한 마음으로 받아 들이라.
우선(于先) 국가(國家)의 통일(統一)이요
이산(離散) 민족(民族)의 재회(再會)요
내 민족(民族) 내 조상(祖上)
영신(靈神)의 뜻을 다시 회복(回復)해야 할 일이라.
이로서 첮째 국가의 통일은
삼한(三桓) 삼국(三國)을 건립(建立)하여
통일국(統一國)을 세움이라.
지금의 삼한(三韓)은
남한(南韓) 북한(北韓) 김일성(金日成) 체제로
약 40년(四十年)의 세월이 지났건만
40년(四十年)의 역사 속에서도 통일(統一)은 커녕
북한(北韓)은 그야말로 동토(凍土)로 변모(變貌)했고
김일성(金一成) 체제(體制)는 전쟁(戰爭)과 위기(危機)를 몰고 왔으며
여기에 뒤질세라
남한(南韓)은 내부(內部) 민심(民心)의 갈등(葛藤)이
점점(漸漸) 심화(深化)되어 가니
어찌하여 삼국통일(三國統一)을 달성(達成) 할 수 있으랴!
2007년 1월 14일 14시 14분

 한림도

115. 한림 포고문(桓林 布告文) -(2)-


 

115. 한림 포고문(桓林 布告文) -(2)-



본 글은 삼풍 상권 325쪽 ~ 337쪽까지의 글이다.

첫째 우선 인간이 되어야 한다.
인간이 되려면 인간의 도리(道理)를 다 해야 하니
도리팔리(道理八理)
성신애제 화복보응(誠信愛濟 禍福報應)
배워서 닦고 지켜야 한다.
인간(人間) 같은 인간(人間)이 되면
참(眞) 인간(人間)들이 모여사는 세상(世上)이 되니
이것이 인간(人間) 세상(世上)이라.
인간(人間)이 모여서 부락(部落)과 국가(國家)를 이루니
문명(文明) 세계(世界)라.
문명(文明)이란
머리 두 별 일월을 밝힘으로
성품(性品)을 잘 지켜 인간의 도리(道理)를 바로하고
남과 다투는 일 없이
제땅 제나라에서 편히 생업을 다 하면서
태평(太平)스레 잘 사는 인간의 바른 길이라.
문명인(文明人)이 문명국(文明國)을
문명국(文明國)이 문명세계(文明世界)를
문명세계(文明世界)가 문명우주(文明宇宙)를
창조(創造) 하나니라.
그런데 너희들은 내 뜻과 상관(相關)없이
역천(逆天)하는 비자연(非自然)을
진도(眞道)이라 착각(錯覺)하여 줄달음 치니
더 이상 묵과(默過) 할 수 없음이라.


2007년 1월 14일 12시 8분

한림도

114. 한림 포고문(桓林 布告文) -(1)-



114. 한림 포고문(桓林 布告文) -(1)-



본 글은, 삼풍 상권 325쪽~337쪽의 글이다.

나는 이렇게 세상(世上)에 고(告)하노라.
진실(眞實)한 백성(百姓)들은
진실(眞實)한 도리(道理)를 이어받아
그들의 일생(一生)을 진실(眞實)되게 살므로
그들의 역사는 진실(眞實)되게 흘러 가리라.
그러나, 거짓된 백성(百姓)들은
거짓된 도리를 이어받아
그들의 일생을 거짓되게 살므로
그들의 역사는 거짓되게 흘러가리라.
나는 너희들의 진실(眞實)과 거짓의 양분(兩分)에 따라
너희들 향방(向方)이 분명(分明)해 짐으로
너희들이 뿌린 과(果)를
너희들이 거두리라는
엄연(嚴然)한 진리(眞理)를
다시 한번 재언(再言) 하노라.
그래서 나는 여기에 너희들의 진심(眞心)을 재생(再生)시켜
진정(眞正) 대한국(大桓國) 백성(百姓)으로
통일국(統一國)을 성취하고,
진심국(眞心國)의 대한조선(大桓朝鮮) 백성(百姓)으로
세계(世界)를 평화통일(平和統一)하여
단군시대(檀君時代) 문명(文明) 세계(世界)를
다시 한번 재론(再論)코자 하니
부족(不足)한 자(者), 각성(覺醒)하고
각성(覺醒)한 자(者), 내 말을 심색(深索)하여
촌각(寸刻)을 지체(遲滯) 말고
이 뜻을 시행(施行) 하라.

(계속)

한림도

113. "궁시궁시 죽시래 구사일생 여자불"이란?



113. "궁시궁시 죽시래 구사일생 여자불"이란?


본 글은 삼풍 하권 312,313쪽의 글이다.

궁시궁시 죽시래(弓矢弓矢 竹矢來)란,
직역하면, '두 활과 두 화살과 대나무 화살로 온다' 이다.
대나무 화살은 국궁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나오는 뒷글이 구사일생 여자 부처이다.
이말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을까?
그런데 우리나라 양궁에서 여자 선수가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그렇다고 여자 부처와 연관이라니 이해가 안가?
아니다. 부처란 두 활이니까,
여자 양궁 선수들이 "여자 불(女子 佛)" 맞잖아?
실지로 대나무로 만든 활과 화살이라니까,
어딘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을까?
분명한건 사람의 몸 가운데서 활과 화살을
찾아야 하는데
실지로 쏘는 화살이라니
그건 여기서 말하는 것이 아니지?

파자하여 보면,

활인데(弓人大) 활인대(弓人大) 쫓아올 도 인대
(人人은쫓을 종자이다, 올 래來, 도刀를 부수로 씀, 인人, 대大 )
말을 만들면, "쫓아 올 도 인데"로 풀이한 것이다.

사실 이사람 필자의 저서 삼풍은 허공 신인 한림의
말씀을 받아서 쓴 글이다.
이 가운데 격암유록의 해설본 분량이 많이 차지한다.
구사일생 여자불(九死一生 女子佛)이란,
그러나 이건 역시 아니다.
도를 전수하는 법이 지천태괘라 하여
하늘 위에 땅 법을 쓰고는 있다.
그렇다고 여자 부처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남자남자 비남자 여자여자 비여자'라고 했다.
분명한 것은 남자나 여자이기 이전에,
중요한 것은 도를 전수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설명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구사일생 여자불'을 파자하여 풀면,
'구한 새점 없어진날 사람 두 활 여자(열어보자)이니'로 푼다.
오히려 여러말을 하는 것이 아니함만 못할까봐 우려되기도,

2007년 1월 113일 12시 22분

 한림도

112. "여자여자 비여자 남자남자 비남자라"란?




112. "여자여자 비여자 남자남자 비남자라"란?


본 글은 역시 삼풍 하권 312쪽~313쪽의 글이다.

대한민국 도의 판도에서
진인으로 온 봉황미륵 불이
여자이냐 또는 남자이냐라고 말이 많다.
불교 쪽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여자는 남자로 다시 태어나야지
부처가 된다는 말을 한다.
그래서 어쨌던지 여자냐 남자냐에
상당한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사오백년 전에도
여자냐 남자냐에 대해서 문제가 되었는지는
확연히 알기는 어려우나 이씨 조선시대이니까
남권주의 시대이므로 당연히 남자 중심 사회였다.
그러므로 남자를 중심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직역하여 보면 여자 여자라고 하나
여자가 결코 아니고,
남자 남자라고 하나 남자가 결코 아니다.
이런 직역가지고는 사태파악을 하기는
매우 곤란 하므로 하여,
여자여자를 열어보자 열어보자의
여자여자로 소리글로 해석 하였다.
여는데 뭘 어떻게 열거냐 하니까?
아닐 비(非)란 글자 비(非)자로
열어 보자고 하였다.
아닐 비(非)자를 옆으로 눕혀놓고
보면 글자의 형상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제는 알아야 할 시기가 아닐까 한다.
남자남자 자력으로 열을 말이 아닐 비(非)라.
남자 여자라고 하는 남자가 아니고
남자를 파자하면, "자력으로 열을 말"이 된다.
자력으로 열을 말이 아닐 비(非)자 이다.
이것 역시 여자의 아닐 비자나 그 뜻도 같으며
수도하는 경우에서도 똑 같은 원리로 다가가야 한다.
도를 닦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도의 말을
열어 가야 하는 것이다.
아닐 비자를 열어 보고
그것도 남의 힘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반드시 애써서 열어야지 곤곤립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신령한 가야집안의 가야라는 절터에서
사부대중 여러분들을 곤고하게 닦는
곤이지지 수신수도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2007년 1월 11일 16시 9분

한림도

111. '영실가야 곤곤립에 곤이지지 여자운을'이란?


 

111. '영실가야 곤곤립에 곤이지지 여자운을'이란?


본 글은 삼풍 하권 312~313쪽의 글이다.

영실가야 곤곤립(靈室伽倻 困困立에)이란,
신령한 집 절터인 가야를 쫓아가야지
두 팔을 풀어서 두 말을 세움으로,
힘들고 고생하여서 얻게 되는
수신 수도의 좋은 운을 맞게 된다고 했다.
곤이지지(困而知之)란,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 3관문의 과정중 하나로
아주 곤고하게 수련하는 고통의 세월을 격어야
얻을 수 있는 관문이다.
곤이지지의 관문을 들어가려면,
수런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곤이지지(困而知之)란 아주 힘들어야 알아진데나?
그래서 곤곤립(困困立)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해야 그리 들어가려나 하니,
곤곤립을 통해야 한다나 그러하니
곤곤립을 파자로 알아보니,
구구(口口) 십십(十十) 팔팔(八八) 립(立)이다.
두 팔(八 八)을, 풀(열십자 두개면 초艸두)어,
물론 두 팔의 끝에 달린 손이 닿게 되는 곳은
풀과 같은 두 풀이 나 있는 장소로 가게 된다.
그곳은 두 말이 있는 장소 이니,
입 구口자를, 말 구口자로 하면, 두 말로 푼다.
두 말이 무슨 뜻인지는 이제 알아야 할 것이다.
두 말을 반드시 세우는(立) 수련이라야
곤곤립이 된다.
이것이 가야영실에서 말하는 곤곤립의
곤이지지로 도(道)를 닦는 수련 법이다.

여자운이라 했는데 이말은 여자(女子)의 女자와 子자를 합하면
좋을 호자가 되어 좋은 운으로도 해석한다.
물론 지천태괘의 법으로 도법이 열려지기 때문에
"여자의 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랫말은 번역해도 노래로 흘러가야 제대로 번역이 되기에
여기서는 그냥 좋은 운으로 푼다.
"신령한집 쫓아가야 두 팔풀어 두 말섬에"
두 팔을 풀어야 하는 이유라면,
도를 전수해야 하는 것이고,
두 말을서게해야 하는것은
도를 닦는 근본이 되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2007년 1월 11일 12시 29분

 한림도 불교 미륵금성생불

110. "가야가야 조씨가야,계룡가야 성실가야"란?



110. "가야가야 조씨가야,계룡가야 성실가야"란?


이 글은 삼풍 하권 312쪽~313쪽의 글이다.

가야가야 조씨가야(伽倻伽倻 趙氏伽倻)란,
가야국 수로왕이 세운나라의 후손 김해 김씨를
쫓아가야지 된다.

왜 그럴까?
조(趙)자를 파자하면,
'작은 달(小月)로 달리(走)는' 이다.
이러한 작은 달로 달리는 성씨(氏)가
나라이름을 둘(한국,조선)로 하여 나온 사람이다.
나라이름 씨, 나라이름 조로도 풀이된다.
"가야를 쫓아가야 작은 달로 달리는 나라이름
한국과 조선 둘이 가야" 가야(伽倻)가 된다는 말이다.
절 가(伽)자와 땅이름 야(倻)의 가야란 말은
절 땅 즉 절 터란 말이다.
이 절터는 인신(人身)에 있는 절터이다.
바로 나라이름 둘을 한, 한국과 조선이 나오는
그 자리가 절터 가야라는 말이다.
이곳이 본래 우리민족 태고로부터 내려오는 절 터이다.
계룡가야 성실가야(鷄龍伽倻 聖室伽倻)
아무리 작은 달을 쫓아간다 하더라도
반드시 계룡을 쫓아가야지 엉뚱한 것을 쫓아가면 아니된다고 했다.
나라이름 둘을 작은 달에 새겨서 쫓아가는 가야인은
반드시 계룡으로 가는 가야라야 한다는 말이다.
계룡이란 도를 전수하러 올라 가는 두 팔과 두 손에 비유한 말이다.
계룡과 용봉은 "속 대순전경"에서 다시 밝히기로 한다.
도를 전수하러 올라가는 계룡의 가야라야
진정으로 거룩한 집 가야인 성실 가야인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은 약 일만년 전부터 짜여진 각본에 의하여
진행되어 온 것을 사오백년 전 격암 남사고 선생에 의하여
격암유록으로 세상에 밝히게 되었다는 것 뿐이다.
격암유록의 해설이 삼풍 상 중 하권에 실려있다.

2007년 1월 10일 17시 24분

 한림도

109. 옴 무량대만합 주(唵 無量大萬合 呪)란? (3)


 

109. 옴 무량대만합 주(唵 無量大萬合 呪)란? (3)


옴 무량대 만합주(唵 無量大萬合 呪)란,

참말로 *42세에 불점을 찍고 헤아리면,
눈동자 사이 산근혈에
비어 없어질 허무, 적멸, 이소가 생기도록
한 점으로 합하는 일만하게 한 주문이다.

대세존 용화미륵 대불 대세계(大世尊 龍華彌勒 大佛 大世界)란,

손마디로 흰 눈동자 위에 팔점을 찍어 일神(하느님)이 내리도록 점한 인간인
대세존(大世尊)이, 점한 인간세계의 용화미륵 대불이다.

무량무극 만사통(無量無極 萬事通)이란,

'눈동자 사이 산근혈에 비어 없어질
허무, 적멸, 이소가 생기는 불점을 42세에 찍어 헤아리고,
42세에 불 점 찍기를 다하면 만사가 형통하리라.'이다.

금바금바(金婆金婆)란,

금해(김해)허씨 할머니,
즉 가야국 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 할머니가 이르기를
물가죽 "눈꺼풀"에 두 엄지손가락으로 석 점 찍는 금(金)을 볼려면
양백(金金)을 보고 또 보아라.'이다.

금성생불(金姓生佛)이란,

'두 엄지손가락을 붙여 두 눈동자를 여는데
눈동자의 흰 자위가 많이 보이도록 할 금(金)씨 성씨가
두 눈시울 위에 점을 붙이고 두 눈을 열게하니 생불(生佛)이니라.

제 다라니(諸 陀羅尼)란,

'눈 위에 석 점을 찍어야 모두 찍은 새점이
죽은 사람의 시신처럼 움직이지 않으리라.
정말로 눈 위에 찍는 석 점을 잊어버려 망실하면
새 "손"이 앉을(붙을) 언덕을 보아라!' 이다.

보리사바하(普提娑婆訶)란,

'눈 위에 꼿꼿하게 서 있는 풀언덕에 손을 붙이고
적은 물옷인 물가죽"눈꺼풀"에
두 엄지손가락으로 석 점을 찍도록 싸 봐!
그러면 정말로 눈망울에 석 점을 찍어
'하시며 꾸짖어 가르치시니라.

2007년 1월 10일 12시 2분

 한림도

108. 옴 무량대만합 주(唵 無量大萬合 呪)란? (2)


108. 옴 무량대만합 주(唵 無量大萬合 呪)란? (2)


옴 무량대만합 주
唵 無量大萬合 呪

대세존 용화미륵
大世尊 龍華彌勒
대불 대세계
大佛 大世界
무량무극 만사통
無量無極 萬事通
금바금바
金婆金婆
금성생불
金姓生佛
제다라니
諸陀羅尼
제니하라제
諸尼訶羅提
보리사바하
普提娑婆訶
(* 唵암을 진언 옴자로 씀.)

2007년 1월 10일 11시 6분

 한림도

107. 옴 무량대만합 주(唵 無量大萬合 呪)란? (1)



107. 옴 무량대만합 주(唵 無量大萬合 呪)란? (1)


양백 중권 141쪽~145쪽까지의 글이다.

어느날 선불승(仙佛僧)이 나타나서
계룡산(鷄龍山) 용화교주(龍華敎主)
용화당(龍華堂) 이옥분(李玉分)님에게
전수하신 주문이다.
(선불승은 이 주문을 전수하고는 순간적으로 살아졋다고 한다.)
용화교주(龍華敎主) 용화당(龍華堂)
이옥분(李玉分)님 평생동안 당신옆에
허許 황후(가야국 시조 김수로金首露王왕의 부인)께서
후손을 출세 시키시고자 오셔 계신다고 하시면서,
이사람에게 모두다 이루어 짐을 확인 하시고,
이제야 당신의 사명을 모두다 이루었다고 하셨다.
이 때가 1984년 12월 말 경이며,
계룡산에 3군 사령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민족 토속종교단체들과 같이 해산되면서
그당시계신 장소는 서울 구로구 고척동이었다.
그후 몇 년 뒤에 작고 하셨지만,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이사람 필자를 알아보시고 이해해 주신 분이었다.

2007년 1월10일 10시 34분

 한림도

106. "보신자 을을,보명자 강인거처"란?


106. "보신자 을을,보명자 강인거처"란?


이 말은 삼풍 상권 170쪽 성산심로에 있는 말로서,

보신자 을을(保身者 乙乙)이란 말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보존한는 것이 무엇인가 하니
을을 즉 "두 새"라고 말했다.
두 새에 대해서는 쌍을(雙乙)로 표현을 했었다.
도(道)를 전수하는 두 새,
도와의 인연은 바로 두 새에 기인된다고 한다.
삼풍 상권 서문 서두에서 말한 두 새는
그냥 하기좋은 말로 한 것은 절대 아닐것이다.
왜냐하면 도와의 인연은 현세에서도 잘하면 이루어 질 수도 있겠지만
수 많은 세월동안 쌓은 덕이 모이고 모여서 도를 만나게 됨이라고 하는데
도와의 인연이 그렇게도 어렵게 만나지는게 사실이라면,
또는 본 용화회상 법회가 도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 사실이라면
여기에 오신 사부대중 여러분들은 정말 행운이라고 보여집니다.
온전하게 믿고 믿어 보고 또 보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게 소록소록 눈이 싸이듯이 도의 본모습이 쌓여질 것입니다.
보명자 강인거처(保命者 활궁자 두개한 강,人去處)란,
목숨을 보호하고 보존하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니
두 활 궁궁이라고 하였다.
두 새만 있어도 안되고 두 활만 있어도 안된다.
반드시 두 새가 있으면 두 활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몸도 또한 보호해야 한다는 말이다.
두 새로서 도(道)를 전수 받은 뒤에
도(道)를 닦기 위해 두 활(弓弓)에 거처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이러함에도 불고하고 엉뚱한 곳에서 거처한다면
몸과 목숨을 부지하기가 힘든다는 말이겠지요?

2006년 1월 8일 14시 54분

한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