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3일 일요일

80. 종교(宗敎)란 마루(宗)의 가르침(敎)이다.(2)




80. 종교(宗敎)란 마루(宗)의 가르침(敎)이다.(2)


무(無)의 체험을 진정한 해탈(解脫)이나
열반(涅槃)이랄까, 아니면 입적(入寂)이랄까?
해탈이란, 번뇌 속박에서 벗어나
속세간의 근심이 없는 편안한 심경에 이른 것이란다.
열반이란, 도를 완전히 이루어
모든 중생의 괴로움과 번뇌가 끊어진
해탈의 경지. 또는 입적(入寂)이라 한다.
입적(入寂)이란, 중의 죽음, 이라고 한다.
입적하여 죽게되면,
확실하게 없어지는체험을 할까?
알 수 없잖아.
죽는다고 완전히 없어진다면,
무(無)의 체험이 가능 할 것이다.
만일 쌓은 업장이 두터워
무로 돌아가지 못하고 9천을 떠돈다면
무의 체험을 하려다가
생목숨만 날리고 마는 꼴이 되잖아.
여기서는 그야말로 마루의 가르침을
선물해야 겠는데,
워낙이 글줄이 짧아서
재주가 메주라서 이러쿵 저러쿵 이군.
그나 저나, 무(無)의 체험만이
"일시무시"를 설명하는 말이 되겠군,
어느 승도인이
이러한 체험기를 듣더니 하는 말이
허허 "수견성(水見性)"을 하였구만 했다.
물 속에서 견성을 한다.
물재주가 있으면 할 수 도있겠지.
공기가 있는 상태에서의 견성이란
무(無)의 상태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 아닐까?
그래서 수견성을 높이 평가 하는가 보다.
수견성을 하는데 죽어서
완전한 입적의 상황에 가지 않았다면,
이것 또한 아니잖아.
그렇다. 생과 사의 완전한 체험
그런다음 그 소중한 체험을 만 인 앞에 밝히려면
살아돌아오는
부활의 영광이 있어야만이 가능할 것이다.
의식이 완전히 없어진 무(無)를 체험해야 만이
종교를 설명할 자격이 있을까?
어떠한 형상체의 하느님,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어느것이 더 깊고 얕은지는,
도(道)를 닦는 수련 가운데서
"수련 체험"으로도
가능 할 것이다.
왜냐하면, 태초유도(太初有道)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하나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게 될까?
체험과 이론으로 가능하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증빙은 사실 불가능 하다.
진리(眞理)라는 그 자체가,
참을 다스리는 것이지만,
이치의 입장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그냥 설명으로 믿게 하는 것은아니되,
도저히 불가사이한 체험을 통하여
믿을 수 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란
진리의 체험을 통하여 믿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마루가 되는 가르침이라고,
각 종교마다 여러가지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하도록 하는
과정들이 있는 것으로 들어 아는바가 있다.
그 과정들이 지나치면,
광신적인 상태가 되고
모자라면 수 억겁을 다시 태어나야하는
고가 따를 뿐이다.
그래서 구원불로 온 봉황미륵이라면,
어떻게 할건데,
그렇다. 구원불은 참(眞)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닐까?
왜 하필 참(眞)일까?
하고 많은 것을 다 두고서 뭣땜에 싸서 고생이람.
너무나 많은 종교가 다 제가 제일이라고 하니까.
참(眞)을 가지고
종교의 시시비비를 가려볼까 했나봐.
지금 지구촌의 제일큰 대병(大病)은
"거짓 병"이 들은 것이다.
참이 아닌 거짓병을 고치지 못할 경우
지구촌은 그냥 구제불능의 순간을 맞을 것이다.
종교는 오늘날이 당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어떻게 해야 인류세계의
거짓된 치유불가능의 병을
고칠 것인가를 궁구해야 할 때일 것이다.
인류의 거짓된 치유불가능의 대병을 고치려고,
참사람(眞人)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
오늘 날, 마루의 가르침 종교(宗敎)가 아닐까?

2006녕 12월 26일 18시 16분

 한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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