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천부경(天符經) 주해 (1)
본 글은 삼풍 상권 343쪽~349쪽의 글이다.
천장
1) 일시무시(一始无始)
직역: 하나의 시작은 없을 무(无)에서 시작 하느니라.
의역: 본래 한 팔은 "말"이여 별의 이름이여,
두 별에 앉을 새도 나 라는 "말"이다.
2) 일석삼극(一析三極)
직역: 하나를 셋으로 쪼게기를 다한다 하여도
의역: 두 팔을 풀어서 일하는 사람 한림이 바로
나란 사람으로 두 말을 손으로 감싸게 되는데,
3) 무진본(无盡本)
직역: 근본은 다하기를 여전하니 변함이 없느니라.
의역: 바로 이사람이 한 일이 되며,
(역해)
(1) 하나가 시작하는 시점은 아무것도 없는
무(无)에서 시작한단다.
하나라고 하는 일(一)은 실지로 두 점을 연결한
선(線)이다.
인간에게서도 이러한 일이 실지로 일어난다고 한다.
왜 그럴까? 왜 이런일이 일어나야 할까?
라고 반문을 할 것이다.
그것이 도(道)와 연관되는 말이다.
세상에는 도(道)라고 하지만 자신들도 잘 모르는 것을?
모든 글자의 시작은 우선 빈 공간의 흰 여백이
바탕이 되고 그다음이 점( . )이다.
글자가 이러하듯이 역시 하나의 시작은
물론 점에서 시작이 된다.
검은 흑 점은 아주 작은 미립자에서 부터
흑암에 이르기까지 광대무변하다.
없다는 것 또한 존재는 한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는
없다고 하여 무(無)라고 표현 한다.
존재(存在)는 유존(有存)과 무존(無存)으로 구분하는데
유존은 일반적으로 수도인들이
경험하는 견성(見性)을 말한다.
그러나 무존(無存)은 일반적으로 수도인들이
경험할 수 없는 수견성(水見性)을 말한다.
하나의 시작이 되는 경우를 직접적으로 체험을 하는데도
이러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인간에 대입하여 실지로 일어나게 하는
방법으로 말을 한다면,
파자(破字)로 의역을 하니 "본래 비롯됨이 한 팔로서
시작이 되는데 그것이 "말"이여 라고,
그 "말" 이란 것은 별의 이름이라나.
두 별에 앉게될 새도 나라는 사람이지
뭐 엉뚱한 것이 아니란다.
(2) 하나를 셋으로 쪼갠데나, 왜 그래 라고 하니,
그건 수(數)의 기본을 이야기 한 것이란다.
수의 기본 단위로서 1~9 까지 가는 도중에 123 456 789 의
셋으로 묶어가는 단위가 우리민족의
천부수인 9수의 원리론이다.
중국의 요임검이 5수로서 5행의 수리를 펼쳤으나
이건 아주 불안한 수리이다.
왜 그러할까? 12345 678910 여기에는
1수가 한번 밖에 작용하지 않는다.
678910에서 5수를 빼면 다시 12345의 원형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123 456 에서는456이 다시
123의 원형으로 돌아가는데는 3을 빼면 되고
789는 3을 빼면 456으로 돌아가고 3의 배수인 6을 빼면
다시 123으로 돌아가는 훨씬더 정교한 수리의 공식이 성립된다.
3수로 나아감은 9수에서 1수를 더해야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변화의 원리를 불러온다.
5수로 나아감은 그냥 막연하게 끝이 나버리고 만다.
다시 1수의 변화 원리론을 말할 계제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실지로 두 팔을 풀어서 두 손으로 일을 하게 된다면
손가락이 12345 678910으로 모두 열개의 손가락 10수이다.
이렇게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 천지인(天地人) 가운데서
사람(人)인 것이다.
만일 5행으로 말한다면 목화토금수의 5가지로 설명을 해야한다.
도(道)의 입지를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5행에는 천지인(天地人)이 바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역의 괘명도 보면 모두 3의 원리론이다. 5의 원리론으로 본다면
"두 팔을 풀어서 일하는 한림이 바로 나란 사람으로
두 말을 손으로 감싸게 되는데"라고 하는 말은
하나를 천,지,인 셋으로 쪼갤 때 사람에게 해당한느
부분을 설명한 말이다.
물론 사람에게서 하나가 출현하도록 설명한 것은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3) 1이라는 숫자는 천,지,인 3으로 나누었다고 해서
그 근본인 하나가 줄었다던지 늘어났다던지 전혀
그러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하나의 원리를 대입하여도 전혀 하나의 근본이
변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이사람의 일이되며 라고 했다.
사람에게 대입된 "하나"가 전혀 문제가 없음을 확인 시켜준 대목이 된다.
여기서 무(无)는 무(無)의 고(古)자 이다.
파자의 원리로 푼다면 无자와 無자는 서로 다르게 해석이 된다.
2007년 3월 4일 16시 50분
한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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