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세인부지 조소시"~"십승양백 시구인"이란?
본 글은 삼풍 상권 42~43쪽까지의 글이다.
세인부지 조소시(世人不知 嘲笑時)란,
세상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체하고
가소롭다고 조롱하면서 비웃을 때에,
이 사람의 블로그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무어라고 자신의 말을 늘어놓기도 한다.
다 좋다 그러나 진정으로 알면서
그러한 말을 한다면 오죽이나 좋겠나
분명하게 이사람이 말을 했었다.
이 땅에 도(道)의 맥이 끊어진지 오래 되었다고,
그런데도 그러한 말들이 필요할까?
그러다가는 자신이 쓴 글을 지우는 사람들도 혹 있다.
그러한 경우는 이사람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된 것이 아닐까?
전무천심 하처생(專無天心 何處生)이라
천심이 전무하여 하나도 없으니 어느곳으로 가야 살아날 곳일지?
그렇다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그러한 것으로는 어림없다.
참을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서 찾아서 살려내느냐 하는 것인데
엉뚱한 말들을 계속하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다.
이사람 필자의 용화회상 법회에 와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참(眞)이다.
이사람이 바라는 것은 오로지 참이 우리 국민들과
지구촌 인류가족들에게서 살아나기를 바랄뿐이다.
우명십승 심길지(牛鳴十勝 尋吉地)라
엄마라고 울든 십승 길지라하고 찾을 것이다.
소 울음 소리가 음매하고 들리니까소울음
소리에 비유한 말은 엄마가 아닐까?
그래서 찾아야 할 십승지는 엄마 하고 울던 곳이,
바로 그곳이?
선각지인 예언세(先覺之人 預言世)라
이와같이 엄마 하고 울던 십승 길지를
먼저 알아서 예언하는 세상인데
뭐그리 쫑을 달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지
혼구장야 안적화(昏衢長夜 眼赤貨)라
어두운 두 눈에 다닐 새이나 긴밤 사거리를
쏘다니면서 돈 독에 올라 시뻘건 눈
네거리 구(衢)자는 다닐 행(行)자 속에
놀라서 볼 구(瞿)자가 들어 있다.
눈 목자가 두개면 두리번 거릴 또는 매 같은 새가
먹이 감을 사냥할때 노려보듯 노려볼 구자로,
인개불사 진불진(人皆不思 眞不眞)이라
돈에 눈이 멀어 돈독이 올라 시뻐겋게 변한 눈에
참이라는 말이 가당키나 하겠느냐고?
돈을 벌어야 살고 돈을 벌기 위해서 발버둥을 치는데
참이 무슨 ~ 얼어죽을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당연히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요즘 세상에 돈과 결부 아니된 것이 어디 있느냐고
한번 물어들 봅시다.
호사다마 차시일(好事多魔 此是日)이라
좋은 일에 나쁜일인 마가 끼기 마련이니
이날이 와 보면 안다고 하였다.
그렇다 뭐 일 좀 할려고 하면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막아서 못하고
저런 사람들이 나서서 저렇게 막아서
옳게 일을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불로그 까지 들어와서 횡설수설하는
사람들도 있어 마가끼니 어쩔까이?
쌍견언쟁 초십구(雙犬言爭 艸十口)라
두 새란 사람의 손에서 지장찍는 엄지손가락 모지로
점을 찍으라는 말씀을 풀어서 열은 말이다.
점을 찍으라는 말씀을 풀어서 열은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하는데 마가끼어 별난 일들도
일어날 수 있으니 주의를 하라고 한 것이다.
쌍견언쟁(雙犬言爭)은 파자된 글자를 다시 합하게 되면,
감옥 옥(獄)자가 되고
초십구(艸十口)는 초 두에 옛 고(古)자를 하면
당연히 괴로울 고(苦)자가 나온다.
소송이나 감방에 들어갈 일도 일어날 정도로
마가 낀다는 말도된다.
그러나 감옥이나 소송이란 뜻으로 해석한다면
도(道)의 해석은 삼천포로 빠져버린다.
격암유록의 많은 해설서들이 이 함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왜냐하면, 도서(道書)는 도(道)의 입지에서
해석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사람 필자가 잘나서 이러한 글을 쓴 것은 절대 아니다.
오로지 선경세계의 일신(一神)과 저승 명부세계
삼신(三神)의 도움으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해설서와는 그 뜻이 전혀 다를 것이여이~
잠시잠시 불면액(暫時暫時 不免厄)
낡은 수래를 잠시잠간 동안 감싸더니
그게 바로 언덕에 있는 절이요 부처인데
그 사람은 팔(八)자의 토를 달아서 날 사람이다.
이러한 내용인데
책에서는 "날근수래 잠시날사 언덕절불 팔날사람"이라고
요약한 말씀으로 내려받았으니 사실 이사람도
다 모르는 구절들이 아직 있다오!
잠시잠시는 잠시를 거듭했기 때문에 아주 잠간 동안임을 말한다.
아주 잠간 동안이지만 감싸두르고 석 점을 찍지 않고는
액을 면할 방법은 없기 때문에
불면액이란 말을 쓰게 된 것이다.
말씀 언(言)자를 파자하면 감싸두르고 석점을 찍는다는 뜻이다.
구지가일 선무형(九之加一 線無形)이라
9에 1을 더하면 10(十)이 된다.
여기에 나온 십(十)이란 글자의 줄(線)이 모양이 없다나 어쨌다나?
이렇게 해석하면 도의 입지에서는 오리무중이 된다.
"구로 가거라" 라고 별새가 한 말이래 글세,
점이 날 실물에는 모양이 있다나 없다나 그렇지 아마도,
십승양백 시구인(十勝兩白 矢口人)이라
양백으로 십승이 됨을 사람들은 알아나 볼까?
양백이 되는 시기는 이미 수도의 단계로 넘어간 상황이 된다.
너무 길게 나왔지요이~
2007년 1월 31일 17시 20분
한림도
댓글 없음:
댓글 쓰기